반복되는 것, 반복되지 않는 것. @하늘공원.
해가 뜨는 것은 보기 어렵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다만 요즘은 밤잠을 자주 설쳐서 눈을 뜨는 것 자체는 어렵지는 않다), 일출 시점의 날씨를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그런가, 1만일 넘게 살았고 1만 번이 넘는 일출이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일출 광경을 본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은 그보다는 쉽다. 낮 동안에 보는 게 있으니 날씨가 어떨지도 대충 가늠이 되고. 물론 해 질 녘에 사무실에 앉아 있느라 못 보는 경우가 있겠지만, 평일에 지는 해는 주말에도 진다. 날씨만 좋으면야 오후 늦게 싸드락싸드락 산책 나가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된다.
해가 지평선 위로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면 정수리를 꿍, 하고 찧을 것 같은(주: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싸구려 커피’ 가사 中) 높이로 내려온다. 푸르던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주황으로 바뀐다. 건물의 유리창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원경은 실루엣으로 변한다. 조금 더 지나면, 하늘은 다시 보라색이 된다. 이즈음 되면, 땅에 붙어 있는 모든 것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다가 이내 시야의 전부를 뒤덮는다.
모처럼 날씨 좋은 주말이었다.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을 찾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조성된 ‘월드컵공원’의 한 부분인데, ‘쓰레기장’의 대명사였던 ‘난지도’가 바로 이 자리였다. 쓰레기가 쌓여 해발 98m의 산을 이루던 것을 되살려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하늘공원은 그 쓰레기 산의 꼭대기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생태계 보호를 위해 야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웹사이트에 게시된 내용에 따르면 2월에는 오후 8시 30분에 통제가 이뤄진다고 한다.
‘맹꽁이전기차’가 산 아래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운행하는데, 이것을 타도 좋고 300개가 조금 못 되는 계단과 약간의 비탈길을 밟고 올라가도 좋다. 하늘공원은 핑크뮬리와 억새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날은, 가득 넘실대던 억새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베어져 있었다.
한강에 길게 누운 윤슬을 보다가, 지평선을 향해 착륙을 시도하는 태양으로 시선을 옮겼다. 똑바로 보기가 힘들다. 가지고 간 망원렌즈를 겨누었다. 태양과 가까운 곳을 기준으로 노출을 맞추고, 몇 컷을 찍었다. ‘뇌출계’에 익숙하지 않으니, 노출계가 밝기를 적절하게 잘 계산했는지는 찍어봐야 안다. 노출보정값을 -0.7 정도로 맞춰보고 다시 찍는다. 디지털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해가 진다. 실시간으로 바람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올라올 때 탔던 ‘맹꽁이전기차’는 막차가 끊겼다. 비탈과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길고양이 두어 마리가 무심히 스쳐갔다. 오늘 이렇게 진 해는 다시 뜬다. 내일이 오기만 한다면야.
그러나 내일이 오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