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조] 등잔 밑은 늘 어둡다 @신사근린공원 (딱따구리 편)
한 번 동네 탐조에 맛을 들이니까, 그간 내가 놓쳤을지 모를 기회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산책 좀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가던 곳만 가서 보던 것만 보고 잠깐 어슬렁거리는 것을 내가 산책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사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근린공원이 있다. 봉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산자락 한쪽 귀퉁이에 조성된 곳이다. 그래선지 ‘비단산’이라는 이름의 야트막한 봉우리로 향하는 등산로(?)를 끼고 있다. ‘근린공원’이라고 하면 나는 평탄한 잔디밭과 나무 몇 그루, 놀이기구, 운동기구, 벤치… 등으로 구성되는 그런 느낌의 공원을 생각했는데, 여긴 ‘근린공원’이라기에는 규모도 좀 크고 고저차도 상당하다. 다양한 새가 늘 재잘거리고 있는 데에는 이런 환경의 영향도 분명 있을 테지.
시나브로 마실 나가듯 찾아가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정도의 오르막이 이곳저곳 펼쳐져 있어서 약간의 각오는 필요하다. 그런데 필요한 건 그게 전부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새절역에서 아주 가깝고, 불광천과도 지척이다. 바로 옆에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기도 하다. 그냥 털레털레 올라가서 가만히 서서, 혹은 벤치에 앉아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된다. 평소에 좀 들어본 소리와 생소한 소리와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와 큰 소리와 작은 소리와… 하여간 정말 많은 새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등잔 밑이 이렇게 어두운 것이다.
오색딱따구리
나무를 딱딱 두드리는 소리는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딱딱딱딱-‘ 하는, 8분 음표 몇 개를 걸고 스타카토를 찍어놓은 듯한 소리. 다른 하나는 ‘뚜르르-‘ 하는, 마치 공사장 중장비가 내는 듯한, 혹은 트레몰로로 북을 연타하는 듯한, 그런 ‘드러밍’ 소리. 둘 다 딱따구리가 내는 소리 맞다.
이 공원에서 처음 딱따구리를 만난 것은 1월의 마지막 날. 기력 없는 몸을 이끌고 비실비실 불광천을 걷다가, 지도에 표시돼 있는 이 근린공원이라는 게 궁금해져서 무작정 찾아갔을 때였다. 들어서자마자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고, 이어 쇠박새 한 마리가 나무에 착 붙어서 뭔가를 열심히 찾는 모습을 봤다. 박새류 특유의 청아한 고음과 직박구리들의 째지는 고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뭔가 ‘힉- 힉-‘ 하는, 다시 생각해보니 ‘츳- 츳-‘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한, 그런 낯선 소리가 들렸다.
신사근린공원의 한복판에는 놀이기구와 ‘곤충호텔’, 그리고 연못(지금은 겨울이라 물을 빼놓았다)이 있는 ‘유아숲체험장’이 자리한다. 직박구리들이 좌우로 나무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직박구리가 앉은 나무 바로 옆, 붉은 열매들이 떨어져 있는 나무 데크를 걷다가 들은 소리가 앞의 그것이다.
오색딱따구리는 대충 직박구리와 비슷한 크기의 몸을 가진 새다. 검은 바탕에 흰 반점이 박힌 무늬를 입었다. 배 끝, 아래꼬리덮깃 부분은 진홍색에 가깝다. 수컷은 머리 뒷부분이 붉고, 암컷은 까맣다. 배와 얼굴은 옅은 갈색을 머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검정, 하양, 빨강, 연한 갈색까지 사색이다. 찾아보니 아래꼬리덮깃과 머리의 붉은색을 다른 색으로 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오색’이 아주 억지는 아니게 되는데… 내 감각으로는 두 붉은색을 구별할 자신이 없다. 마비노기 고인물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배 쪽은 Y값이 조금 더 섞인 것 같고, 머리 쪽은 Y값은 덜하고 K값이 더 들어간 것 같다.
몸집이 작은 편이지만 붉은 부분 때문에 눈에는 비교적 잘 띄는 편이다. 쉬지 않고 나무를 두드리며 그 속의 작은 벌레를 잡아먹곤 한다. 긴 부리로 나무를 쪼며 혀를 내밀어 흡입하기 때문에 무슨 벌레를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는 사람이 보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내가 개인 트레이너도 아닌데 식단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다.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를 눈으로 좇다가 잠깐 놓친 뒤 다시 찾았더니 아까 그 오색이가 아닌 큰오색딱따구리인 일도 종종 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오색이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오색이와 달리 배에 줄무늬가 있다. 또 수컷의 경우 오색이는 뒤통수만 빨갛고 큰오색이는 머리 전체가 빨갛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머리 전체가 빨간 것이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느낌이냐면, 머리에 페인트칠을 한 것 같다고 할까? 이게 또 빨간 게 균일하지 않고 군데군데 까진 부분도 있다 보니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 공원에 사는 큰오색딱따구리는 설 연휴 직후에 처음 만났다. 사실 그게 처음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워낙 오색이와 큰오색이가 서로 닮은 터라, 계속 신경을 쓰고 있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구분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오색딱따구리(이 때는 오색이가 분명했다)를 눈으로 계속 좇고 있다가, 까치둥지 근처까지 올라간 오색이가 까치에게 쫓겨날 때 한 번 놓쳤다. 그러고 나서 그 녀석을 다시 찾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같은 녀석이 아니고 큰오색딱따구리였던 것이다.
청딱따구리
아주 닮은꼴인 오색/큰오색딱따구리와는 달리, 청딱따구리는 비교적 단조로운 회색 톤의 옷을 입고 있다. ‘청’이라는 글자가 주는 뭔가 청량한 그런 느낌에는 약간 못 미치는, 그래도 그런대로 ‘청’이라고 불러줄 수는 있을 것 같은 연둣빛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게 회색 바탕에 연둣빛 층을 겹쳐놓은 느낌이라서, 분명 톤이 훨씬 밝은데도 보기에 따라선 이쪽이 더 우중충해 보이기도 한다. 색이라는 게 참 미묘하다.
새를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오색딱따구리는 인간과의 거리를 비교적 길게 잡으려고 하는 편인 것 같다. 몸집도 작은데 거리도 멀어서 오색딱따구리 사진을 찍으려면 135판 기준 300mm 정도 화각의 렌즈로는 어림도 없고, 그 두 배인 600mm 정도는 챙겨야 적당히 나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큰오색딱따구리 또한 이름과는 달리 그다지 크지는 않아서(물론 오색딱따구리보다는 조금 크다) 비슷하게 600mm 정도 수준의 렌즈를 챙겨야 좀 알아볼 만하게 찍을 수 있다.
그런데 청딱따구리는 또 다르다. 몸집도 오색/큰오색딱따구리보다 확연히 크면서, 경험상 내가 만난 청딱따구리들은 거리도 비교적 가까운 곳까지 허용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135판 기준 300mm 상당의 화각까지 당길 수 있는 40-150 pro 렌즈 정도로도 청딱따구리의 모습을 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지난 12일이 그랬다. 사람들 다니는 길에서 한 5m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나무에 달라붙어 부리로 나무를 두드리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뒤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나 싶었는데, 새로 앉은 나무도 산책로 바로 옆이다. 몸집이 좀 큰 새들은 사람을 덜 경계하는 걸까? 청계천의 쇠백로처럼. 그런 건지 어쩐지는 안 물어봐서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내가 만난 녀석만 성격이 그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딱딱딱딱-‘ 소리는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 소리를 낸 주인공이 딱따구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딱따구리보다 훨씬 작은 몸집을 가졌고, 훨씬 더 자주 보인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