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낯선 길, 생각보다 가까운 길, 탕춘대성을 찾아서 @서울 홍지문, 탕춘대성
나만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보통 네 글자로 된 한자어가 있으면 둘+둘로 끊어 읽는 것이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다. 사자성어에 익숙해져 있다면 대체로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사면초가’는 사면+초가로 구성된 말이니까 둘+둘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조삼모사’나 ‘삼한사온’ 같은 말도 비슷한 구조다. ‘전전긍긍’은 아예 생긴 것부터가 같은 글자 두 개씩이니까 굳이 언급할 것도 아니다.
국어 시간에 ‘제망매가’를 처음 접했을 때, 그래서 약간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제망+매가’가 아니라 ‘제+망매+가’라니. 가만 생각해 보니 국사 시간에 배운 ‘조의제문’도 똑같은 것이다. ‘조의+제문’이 아니라 ‘조+의제+문’이라고.
서울의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도 비슷하다. ‘탕춘+대성’이 아니라 ‘탕춘대+성’이다. 탕춘대라는 건물이 있던 자리에 지은 성이라는 뜻이다. 유래가 된 탕춘대는 원래 연산군이 밤낮으로 놀던 곳이라고 하는데, ‘탕’은 ‘방탕하다’ 할 때 그 ‘탕’이고, ‘춘’은 봄을 의미한다. 봄 경치가 좋아서 그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성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방탕하게 노는 곳’이라는 뜻이 되는데, 물론 군주가 이런 것을 좋아할 리는 없을 터. 이인좌의 난 이후 탕춘대성을 본격적으로 지은 영조는 탕춘대의 이름을 ‘연융대’로 바꾸게 된다. ‘연’은 ‘훈련’ 할 때 그 ‘련’이고, ‘융’은 병장기를 의미한다. 어쩌면 영조 때 이 부근으로 옮겨 온 ‘총융청’에서 따왔을 지도. 아무래도 도성과 북한산성 사이를 연결하는 방어 거점을 새로 짓는데 그 거점의 이름이 뭔가 군기가 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안 될 테니까. 하여간 그랬는데 지금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된 이름은 ‘탕춘대성’이니 조금은 허무한 느낌도 든다.
탕춘대성 가는 길은 홍지문에서 시작된다. 탕춘대성을 출입하는 문으로, ‘한북문’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서쪽으로 흘러 내려가는 홍제천 물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이 홍지문이고, 물을 가로질러 오간수교가 놓여 있다. 청계천 옆 흥인지문과 오간수문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 풍경은 어쩌면 수원의 화홍문과 더 비슷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찾은 4월 26일엔 홍지문과 오간수교에서 정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여기서부터 성벽을 따라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도성처럼 성벽과 나란히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일단은 홍제천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상명대 캠퍼스를 통해 접근하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언덕 같은 게 있을 자리도 없는 학교를 나와서 그런지 이렇게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하는 캠퍼스에서 또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졸업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몇 년 다닌 학교의 기억이 이렇게 머릿속 기준으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성벽으로 접근하는 길은 공학관 뒤로 돌아가면 나온다. 아마 반대쪽으로 가면 더 쉽게 접근하는 경로가 있을 테지만, 홍지문에서 가까운 지점을 찾다 보니 나오는 게 이런 길이었다. 단지 건물 하나를 끼고 돌았을 뿐인데도 봄날 평일 오후 대학 캠퍼스의 시끌벅적함이 벌써 한참은 멀어진 것 같다. 금호타이어에서 지원해 줬다는 팻말이 서 있는 작은 정원을 지나면, 어떤 유예도 없이 곧장 석조 구조물이 나온다.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도성과는 달리 탕춘대성 성벽은 뭐랄까, 그냥 덤덤하게, 따로 자신을 꾸미지도 않고 무슨 풍파를 피하려 한 것도 아닌, 적당히 방치돼 있고 적당히 삐뚤빼뚤한, 그러면서도 형태를 잃어버리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 드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침 시민 한 명이 성벽 바깥쪽, 그러니까 북쪽 사면을 통해 올라오고 있었다. 시민이 올라온 방향으로 쭉 가면 아마 나무덱으로 된 산책길이 나올 것이다. 거긴 내려갈 때 보기로 하고, 우선 성벽을 따라 홍지문 방향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4월 말, 북한산은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을 정도로 녹색 이파리가 가득 덮었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는 아카시아의 것일 터다. 어쩌면 어딘가의 라일락, 그게 아니면 이팝나무 꽃일 수도 있겠다. 어디선가는 또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도 풍겨왔다. 대체 이게 무슨 냄새지? 어떤 나무 가까이 가니까 냄새가 짙어졌는데, 그때의 나는 냄새를 피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잘 보이지 않아서 애를 태웠던 벌들이 꽃 사이를 분주히 날아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뭔가 좀 건드리면 안 될 것처럼 생긴 녀석도 섞여 있어서, 조심히, 행여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그렇게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다지 긴 거리는 아니었다. 높지 않은 돌담을 옆에 낀, 분명 길이긴 한데 사람이 자주 다니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걸었다. 웬 망가진 벤치가 있는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었나 보다. 잠깐 성벽이 안 보이는가 싶더니, 눈앞에 나타난 것은 뭔가 낯익은 풍경. 불과 몇십 분 전에 봤던, 아까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둥글게 고리처럼 말려 있는 구간이었던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오히려 잘 됐다. 어차피 북쪽으로도 걸어갈 생각이었으니까. 완전 럭키비키잖앙.
성벽은 큰 바위 몇 개를 타 넘어가면서까지 북쪽으로 쭉쭉 이어진다. 흐트러짐은 있어도 중단은 없다. 인왕산 정상의 바위를 끼고도 꼿꼿하게 서 있던 도성 성벽이 떠올랐다. 대체 이 산 위까지 누가 무슨 수로 쳐들어온다고 방벽을 쌓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꼼꼼하게도 지어져 있던 그 성벽. 그러나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길까지 쭉쭉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싱겁게도, 상명대 캠퍼스 북쪽 끄트머리에서 얼마 멀어지지도 못한 채로 ‘출입 금지’ 팻말을 맞닥뜨린 것이다. 붕괴 우려 때문이라는데, 별 수 있나.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성벽 바깥쪽 산책로로 내려왔다. 도심에서 정말 가깝다는 것이 새삼 와닿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고층 아파트 꼭대기가 나란히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건물 하나 끼고 돌았더니 갑자기 한적해졌던 것처럼. 그렇지, ‘수도’였지. 사람이 잠깐 수풀 사이를 걸었다고 위치를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옥천암에 들렀다. 부처님 오시기 3주쯤 전이었고, 연등이 암자 주변을 가득 수놓았으며, 하늘은 파랬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