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내란, 그 기록들: 2024년 12월, 시작 (@ 여의도, 광화문)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가 반가워 한참을 떠들고 있었다. 귓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이 중간중간 부웅 부웅 울렸지만, 무슨 “공항 도착했어요~ 라인 아이디 모시깽이인데 연락해줘요~” 이딴 스팸 문자나 되겠거니, 그런 생각으로 그냥 넘기고 있었다. 다른 친구가 긴급하게 전한 그 메시지를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도 이삼십 분 정도 흐른 뒤. 12월 3일, 그게 내 삶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비상계엄이었다. 당연함.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세대임. 회사(언론사임)로 돌아가야 하나? 아닌가? 지금 야근조는 어떻게 하고 있지? 가야 하나?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상황을 좀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유튜브 라이브 채널을 몇 개를 띄워놓고 연합뉴스 속보 창도 같이 띄워놨다. 그 사이에 소위 포고령이라고 하는 문건이 눈에 들어왔다.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언론은 통제되고… 뭘 처단하고… 대충 그런 내용이었는데, 보면서도 그 내용이 도무지 해석이 되질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야? 가짜뉴스 아냐? 2024년인데 이런 게 나온다고?
내가 혼란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어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앞으로 뛰쳐나갔다. 맨몸으로 계엄군을 막아내고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2시간 만에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하도록 만든 그들의 용기와 행동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이 맨몸으로 막아낸 계엄군이 5만 발이 넘는 총탄을 준비했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밝혀지게 된다.
회사에 남아 있던 야근 당번들과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회사로 돌아간 동료들은 새벽 호외판까지 만들고서야 퇴근했다. 나는 그 시간에 그저 집에서 뉴스를 보면서 누가 내게 지시라도 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아직도 이때만 생각하면 부채감에 휩싸이곤 한다. 나는 목숨도 이름도 명예도 그 아무것도 걸지 않고서, 그냥 멍하니 앉아 밤을 꼬박 새우기만 한 것이다. 새벽, 전철이 다시 다니기 시작할 무렵 집을 나섰다. 광화문 주변에 놓인 몇몇 신문사의 호외 몇 부를 소중히 품에 안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2차 계엄이 떨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짙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냥 퇴근 안 할란다,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2024년의 겨울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서 광화문에 갔다. 시민들이 촛불을 하나씩 손에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아직은 응원봉들이 대거 광장에 나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 촛불 하나씩에 의지해서 소리치는 사람들을, 권력자가 공권력을 동원해서 총으로 위협하고 제압하려 했단 말이지. 그것도 매우 위헌, 위법적인 방법으로. 잠깐 대열에서 같이 걷다가 눈물을 못 참겠어서 그냥 나왔다.

기어이 다음 번 호외 때는 회사에 나가 지면을 만들었다. 혹여 조금이라도 짐을 덜까 해서 비상행동에 후원금을 보내고, 여의도 모 카페에 선결제를 달았다. 국회 앞으로, 광화문으로, 한남동으로 응원봉과 마인크래프트 횃불 무드등을 들고 뛰어다녔다. 그러나 나는 남태령에도 없었고, 우주 담요를 두른 이른바 ‘키세스 전사’도 되지 못했다(그러나 ‘키세스 전사’라는 별명은 키세스를 만든 회사의 이력을 생각하면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빈약한 체력을 핑계 삼아 매번 딱 공수처만큼만 광장에 있다 들어오곤 했다. 이 정도로는 12월 3일 밤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동지가 지나면 낮은 점차 길어지기 마련이고, 동지와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늘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이것은 언제까지 길어질지 모를 그 이야기의 첫 번째 장, 2024년 12월의 기록이다.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