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정체가 풀릴 시간대’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전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명절 연휴’의 그것이어서, 평소엔 고속버스로 두 시간 사십여 분이면 될 것이 네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편이다. 옛날 같았으면 다섯 시간은 족히 잡았을 터다.

추석 명절을 쇠고 돌아와 보니 여름이 끝나 있었다. 가을 추(秋) 자를 써서 ‘추석’인데 ‘여름의 끝’이라니, 어쩐지 ‘열림교회 닫힘’ 같은 느낌이다. 올 추석이 이례적으로 일렀던 탓이겠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찬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좀 빠르게 걸어도 더는 땀이 나지 않는다. 구름 모양도 한여름의 그것이 아니다.

2019.09.15. 선유도 공원.

‘빨간 날’의 끝은 불안, 초조, 후회, 아쉬움과 기타 등등으로 가득 찬다. 휴일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출근할 날’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부정적 사고의 무게 탓에 월요일만큼이나 버거운 날이 되고 만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다가오는 평일을 미룰 수도 없으니, 내가 정신을 잘 차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정신을 차리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 한다.

2019.09.15. 선유도 공원.

2019.09.15. 선유도 공원 내 콘크리트 기둥.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 공원을 찾았다. ‘선유도’는 ‘신선이 노닐던 섬’이라는 뜻인데, 똑같은 이름을 가진 곳이 전북 군산에도 있다. 옛사람들에게 ‘신선’이라는 존재는 최고의 권위를 주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사람이 놀면 평범하고, 신선 정도는 와서 놀아줘야 ‘아름다운 곳’이 되는 것이다. 신선은 그럼 뭘 하고 놀았을까? 고스톱이라도 쳤을까?

서울의 선유도는 원래는 섬이 아니었다고 한다. 공원 내 안내문에 따르면 옛날엔 육지에 붙은 봉우리로서 ‘선유봉’이라 불린 명소였단다. 그랬지만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이곳의 암석이 치수 사업에 쓰였고, 이때부터 풍광이 훼손됐다고. 그리고 1978년에는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선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게 됐다.

2019.09.15. 선유도 공원.

2019.09.15. 선유도 공원.

지금의 선유도 공원은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에 조성된 것이다. 제 기능을 잃어버린 정수장과 그 주변을 정비한 것인데, 그 규모가 11만4000㎡에 달한다. 서울시민의 식수가 될 물을 담고 있던 침전지는 부레옥잠을 비롯한 각종 수생식물이 자라는 일종의 ‘밭’이 됐고, 철근과 콘크리트로 된 구조물들은 넝쿨이 타고 오른 녹색의 무언가가 됐다. 공원이 되고도 벌써 17년이 지났으니, 선유도로선 이 상태가 하나의 ‘뉴노멀’이기도 하겠다.

2019.09.15. 선유도 공원.

2019.09.15. 선유도 공원에서 만난 연. 꽃잎은 이미 다 떨어졌다.

선유도 공원은 인기 좋은 ‘출사지’이기도 하다. 이날도 DSLR이든 미러리스 카메라든 하나씩 손에 들고 셔터 누르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사진 동호회로 보이는 무리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물론 DSLR이나 미러리스만 카메라인 것은 아니어서, 휴대폰을 들고 서로를 찍어주는 이도 부지기수.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커플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셀피를 찍는 모습도 보였다.

서로를 찍어주는 사람들이 부러워 보일 때도 다 있다. 아니다. 뇌에 힘주자.

2019.09.15. 선유도 공원에 전시된 빗물 방류 밸브.

아무리 지상이 아름다워도, 풍경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하늘이다. (미세먼지 같은 요인을 빼면)그것만은 인간의 손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그것으로 원하는 결과를 전부 손에 넣을 수는 없다. 그러니 오하아사나 무슨 운세 같은 것을 보고, 괜히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하고, 혼자 낙심했다가 또 혼자 가슴을 쓸어내린다.

2019.09.15. 선유교에서 바라본 하늘.

2019.09.15. 양화대교에서 바라본 하늘.

2019.09.15. 선유교에서 바라본 하늘.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역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눈이 성치 않을 것이다. 걷자. 발걸음을 떼자. 그렇게 2019년의 추석 연휴가 끝났다.

@moragoheya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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