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솔, 일요일의 시 @서울 창경궁
직장을 옮기면서 생활 패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가장 큰 변화는 금요일 휴무와 일요일 출근. 고정된 것은 아니고, 2주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고, 2주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쉬는 식으로 돌아간다. 금토 휴무는 첫 직장에서도 그랬으니 처음 겪는 건 아닌데, 월~금 근무와 일~목 근무가 혼합된 형태는 처음이다. 그렇지만 뭐,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는 게 좋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좀 더 엄밀하게 하자면 ‘남들 일할 때 쉬고 남들 쉴 때도 쉬는’ 게 최상이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니까 빼고(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존재이므로 지금 불가능한 것도 꿈은 꿀 수 있는 것이다).
남들 쉴 때 일하면 서럽다는 말도 종종 들었는데, 나는 그렇게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쪽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로는 역시 출퇴근길이 상대적으로 쾌적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도로 발달한 출근길이 황천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이유는 딱 그 시간대에 모두가 똑같이 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다들 9시에 출근하는데 나만 10시에 출근한다? 출근길 시내버스에서 빈자리를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출근한다? 광화문 같은 주요 집회 장소를 지나지 않는 한, 평일보다 덜 힘든 출근길을 경험할 수 있다.
남들 일할 때 쉬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이 경우엔 병원에 가는 것을 포함해 나와 내 가정(1인 가구임)을 돌보는 일을 하기 쉽다. 내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상대방이 노동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만 진행되는 어떤 행사에 참석하기 쉬워진다. 그리고 주말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장소일수록 그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서울 창경궁이 그렇다.
이직 후 첫 금요 휴일이었던 7월 어느 날, 창경궁을 찾았다. 정말 더운, 아니, 덥다기보단 뜨거운 날이었다. 금요일 낮의 창경궁은 매우 한산했다. 나와 내 일행 한 명, 이렇게 둘뿐인 세상 같았다. 사실은 개방되지 않은 건데 잘못 들어온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금요일이어서 그랬을지도, 한낮이어서 그랬을지도, 날이 너무 뜨거워서 그랬을지도,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들어서자마자 금빛 털을 가진 고양이 두 마리가 잔디밭 그늘에서 서로 몸을 기대고 누워서 눈을 꿈벅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날씨에 그 털과 그 체온으로 덥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으나, 그들은 그런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어도 누운 채로 시선만 돌리는 것이 어떤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연못 한가운데, 소나무의 굵은 가지 몇 개가 수면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 가지를 밟고 왜가리 한 마리가 마치 학과 같은 고고한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창경궁에 가면 늘 춘당지를 찾는다. 아예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듯한 원앙 무리를 보기 위해서다. 수컷의 번식깃이 화려해지는 늦가을에 가보면 삼각대 위에 카메라 얹어놓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람이 많다. 쌍안경 들고 서성이는 사람도 많고. 그렇지만 화려한 깃털을 볼 수 없는 여름이고, 평일이고, 더웠던 이날은 춘당지 주변 전체를 통틀어서 사람을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날도 다 있구나.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원앙들이 단체로 뭍으로 올라와서 풀숲을 헤치고 있었다. 풀을 뜯어 먹는 걸까? 뭔가 먹을 것을 찾는 듯한 느낌이었다. 살면서 원앙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일이 없다. 상당히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딱히 경계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물가 몇 미터 안으로는 접근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이 정도로 마음을 푹 놓고 있다니, 무슨 불광천의 흰뺨검둥오리들처럼. 사람이 적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하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긴 하다.
느긋하게 연못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여느 때보다 고양이, 그것도 햇볕에 스스로 구워지고 있는 듯한 고양이가 많이 보였다. 아무 데나 그냥 누워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만 살짝 들어서 쳐다보다가 일어나서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하고 다시 누울 자리를 찾는 식이다. 한때 이 땅 사람들 가운데 최고 권력자들이 지내던, 또 한때 유원지였던, 그리고 쉬는 날이면 복작복작해지는 쉼터로서의 공간인 이곳은 동물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평일이 휴일이고 휴일이 평일인 걸까? 그렇다면 내 금요일과 통하는 데가 있는 셈이다.
이날, 날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더위를 먹고 계획된 일정을 다 마치지 못했다. 억울한 일이다.
그래도 금요 휴일은 돌아온다. 보름 뒤에는 월드컵공원을 걸었고, 그다음 주엔 본가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갈 동안 글을 한 꼭지도 쓰지 않았다. 더위도 먹고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그런 가운데 게으름만 더해지는 나날이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