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노을을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w E-m1mk2)
어영부영이라는 단어도 너무 식상하다. 하여간 또 올해도 벌써 4/4분기, 이제는 확실히 ‘가을’이라고 할 만한 계절인데, 해마다 이 시기쯤 되면 연례행사처럼 ‘대체 뭘 했다고…’ 하는 반성인지 후회인지 고해성사인지 모를 그런 생각이 머리 꼭대기에 들어앉는다. 실체화된 무기력이다. 시간은 가역성은 없고 가연성은 있다. 잘못하면 인생도 정신건강도 홀랑 다 태워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평생 나이 생각 안 하고 살 줄 알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안 나오는 나이(주: 최근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만 34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걸리기 시작했다)가 되면서, 그러니까 어디 가서 ‘청년’이니 ‘요즘 세대’니 하는 말에 낄 수 없게 되면서 나이를 의식하는 경우가 늘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서로 다른 정체성들의 경계선에 걸쳐 있으면 의식을 안 하고 싶어도 하게 된다.
올해는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사진 폴더에 저장된 컷수는 전년 동기(1월~10월 상순) 10%가량 증가했으나, 회사 행사 때나 이세계페스티벌 때를 제외하면 실제 촬영 장소와 대상의 다양성은 위축됐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아직 한 해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추세는 명확하다. 외출의 절대적 빈도가 줄어든 것이 1차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육신의 노쇠화로 인한 체력적 한계(특: 그러면서도 운동은 결코 안 함)와 바닥 수준에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정신건강 상태를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얘긴데, 이와 관련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상의 즐거움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웬만한 풍경이나 피사체를 봐도 ‘우와~’ 하는 마음이 덜해서 셔터를 누르기까지 망설임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람이 풍요롭게 살려면 적당한 호들갑도 필요한데 최근 그런 태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계절성으로 치부하기에는 올해 내내 이런 추세가 지속됐다는 점도 부담이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늦여름부터 시작해서 미세먼지 짙어지는 11월 전까지, 저녁 서쪽 하늘이 제철이다. 날씨가 좋다면야 해 질 녘 하늘 아름다운 것이 다른 계절이라고 덜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래도 맑고 청명한 하늘에다 비스듬한 햇빛을 받아주면서 적당히 얇고 높은 구름들이 특징인 가을이야말로 그런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계절이 아닐까. 여름에 두꺼운 구름 틈새로 쏟아지는 빛내림이 좋고 겨울에 아주 시린 파란색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렌즈 플레어가 아름다운 것과 같다.
해 뜨고 나서 한 시간, 해 지기 전 한 시간 정도의 시간대를 ‘매직 아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햇빛이 너무 강한 데다 머리 바로 위에서 꽂히는 한낮과 비교해 일몰 직전에는 햇빛이 그다지 강하지 않으면서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데다 적당히 따뜻한 느낌의 색온도를 보이기 때문에, 인물 사진 촬영에 이 시간대가 유리하다는 의미다. 인물 사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또 아닌 것이, 햇빛의 각도와 색온도가 금방금방 휙휙 달라지는 것이 더 극적인 장면을 건지기에 좋은 면도 있다.
이 시간대에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화이트밸런스인데, 눈으로 보는 노을의 느낌을 좀 더 잘 살리려면 색온도 캘빈(K)값을 임의로 높여주는 것도 좋다. 낮에 5400~5700K 정도를 쓴다면 석양엔 7000K 정도로 두는 식이다. 핵심은 화이트밸런스를 ‘정확하게 맞추는’ 게 아니라, 일부러 비틀어서 노랗고 붉은 느낌을 더해주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밝기를 감안해 노출에도 신경 쓰면 좋다.
하늘을 보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더 많이 나가서 더 많이 걸어야 하는 것이다. 가까운 것이라고 해서 늘 가까이 있지는 않은데, 박새 소리도 귀를 기울여야 들리고, 청설모가 만든 새우튀김도 주변을 잘 봐야 보이는 것과 같다. ‘식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그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다 사람이 하는 것이라서 그런 건가 보다. 최대정지마찰력을 이겨내고 일단 일어나면 그다음은 뭐라도 되긴 될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대체로 레드 먹고 집 갔다가 늑대 먹고 집 갔다가 유령 먹고 집 갔다가 블루 먹고 집 갔다가 하지는 않으니까.
9월 하순에서 10월 초까지, 처음 만나는 이세계 페스티벌에서 명절, 연휴에 이르기까지, 마치 둥둥 떠다니는 듯했던 그 며칠 동안의 하늘이 좋았다. 이런 짧고 빛나는 순간이 며칠의 동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날씨가 좋다니까, 또 한 번 나가서 돌아다녀 봐야겠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