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응원봉 불빛이 회전하는 듯한 이미지.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겨울, 내란, 그 기록들: 2025년 2월, 위기 (@ 광화문)

시민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그 사이에서 초대형 깃발이 나부끼는 해질녘의 광장.
2025.02.01. 광화문 앞.

서부지법 난동 이후, 광장 주변에서 느껴지는 ‘역진’의 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미디어 상의 보도뿐 아니라 체감되는 것 또한 그랬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에 놀라 조금이라도 주춤하는 모양새가 있어야 했겠지만(그리고 내 상식으로는 ‘그럴 거다’라고 예상했지만) 극우는 달리 극우인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폭력적 분위기가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설 연휴가 지나고 첫 토요일이 2월 1일이었다. 이전에도 광화문 앞 비상행동 집회 주변을 오가며 시비 거는 윤 지지자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처럼 떼로 몰려와 집회를 방해하는 모습을 내가 보게 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족히 백여 명은 될 듯한 군중은 모두 성조기를 들고 있었고, 입을 모아 “천안문!”을 외치고 있었다.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을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뭐 그런 그들만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구호였겠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와 집회를 방해하는 모습.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2025.02.01. 광화문 앞으로 몰려온 윤 지지자들. 실제 현장에서는 꽤나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무리에는 젊은 남성으로 보이는 이가 상당히 많이 끼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탄핵 촉구 시민들의 얼굴을 촬영하거나 조롱하고 있었고, 물론 나도 그들의 타깃 중 하나였으며, 놀랍게도, 집회를 관리해야 할 경찰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서부지법 사태가 불과 보름 전이었는데도. 거칠게 항의하고 나서야 경찰들은 조금씩 움직여 양측 사이를 벌려 놓기 시작했고, 그렇게 되고서야 행진하는 기수들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2025년의 입춘은 그런 상황에서 맞아야 했다. 탄핵 심판 변론은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열렸다. 구속 기소된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괴상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국민의힘과 극우 인사들은 그 발언에 뻔뻔함을 한 스푼 더 보태 확대 재생산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이 그 스피커가 됐다. 그런 가운데 헌재에 테러를 일으키자는 주장을 하는 작자도 여럿 나왔다. 대체로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 진앙이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아무튼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다. 2월 25일. 박근혜 탄핵 전까지는 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이었던 그날, 윤석열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 기일이 진행됐다. 그 자리에서 그는 ‘간첩’만 25번 언급하고 서부지법 난동의 폭도들에게만 사과 비슷한 말을 했으며 물론 당연하게도(?) 위헌·불법 비상계엄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시민에게는 사과, 유감, 뭐 그런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이때만 해도 이것이 마지막 고비일 거라고 생각했었기에, 에휴, 그래, 어차피 곧 파면될 건데 마지막으로 떠들어봐라 어디, 약간 이런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열흘쯤 뒤, 그것이 큰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절기상으론 봄이되, 결코 봄이라고 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를 견뎌내고 3월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무명의 ‘동지’들 덕분이었다. 2월 15일, 명동 세종호텔 앞에서 외쳤던 “고진수 힘내라!” 함성은, 우리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깃발과 손팻말이 보이는 가운데 모여 행진하는 시민들.
2025.02.01.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광화문 동편을 바라보고 행진하는 시민들.
깃발을 들고 달려오는 시민들.
2025.02.08. ‘말벌동지’들이 들고 나온 다양한 깃발은 광장의 성질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했다.
흐릿한 빛망울들 사이에서 반대편 지지자가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모습.
2025.02.08. 가끔 행진하다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상대편 지지자들을 보면 다소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 "시민여러분이 직접 뽑아주세요~"라고 적힌 패널에 시민들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25.02.15. 내란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인물을 뽑는 투표가 진행된 광장.
수많은 응원봉 불빛이 회전하는 듯한 이미지.
2025.02.15. 행진하던 도중 셔터속도를 낮추고 카메라를 돌려 촬영했다. 그래도 지구는 도는 것이다.
어두운 밤, 응원봉 불빛을 밝힌 시민들이 "윤석열 파면!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고공농성장 아래 모여 있다.
2025.02.15. 윤석열 파면이라는 과제를 고리로 수많은 약자들과의 연대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날 시민들은 세종호텔이 있는 명동까지 행진해 “고진수 힘내라!”를 외쳤다.
"연대투쟁호"라고 적힌 배 모양의 구조물 주변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한 시민은 배에 걸터앉아 플루트를 불고 있다.
2025.02.22. 광장에서는 누구나 ‘동지’였다. ‘연대투쟁’은 그렇게 경계를 허물고 뻗어가고 있었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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