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연등.

김제 금산사.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매년 이맘때면 꼭 가까운 절 한두 곳은 찾아가게 된다. 화창한 날에 연등을 통과한 햇빛을 보면 경외에 가까운 마음이 드는데, 물론 화창한 날 햇살이 어느 날엔들 좋지 않으랴만, 채도 높은 오방색이 더해진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김제 금산사.

금산사는 창건된 지 14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백제 때부터 있던 것인데, 나중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감금된 곳으로도 역사책에 등장한다. 이때가 창건된 지 300년도 더 된 때다. 지금의 금산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진 뒤 17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그러니까 이때가 창건된 지 1000년쯤 된 때다.

금산사 미륵전.

금산사는 또 미륵신앙의 본산이라고도 한다. 미륵전이라는 이 건물만 봐도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온다. 견훤이 미륵신앙을 이용해서 민심을 잡고 가까운 완산에서 후백제를 창건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견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나중에 이 금산사에 유폐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왕건의 편에서 제 손으로 후백제를 무너뜨리는 운명을 겪게 되지만.

금산사 미륵전.

따지고 보면 금산사뿐 아니라,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과 그 주변이 전부 뭔가 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돌았던 동네다.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고 ‘대동사회’를 꿈꿨다던 곳이 바로 이 근처 금평저수지 일대고, 동학농민혁명 때 농민군의 근거지 중 하나였던 원평이 여기서 서쪽으로 십 리 정도. 강증산이 개벽사상을 설파한 곳이 또 모악산이다. 평등. 구원. 박애. 혁명. 개벽. 모악산의 어떤 힘이 이런 사상들의 기반이 됐을까. 모악산 언저리에 살면서도 참 모르겠다.

김제 금산사.
김제 금산사.
김제 금산사. 작은 돌탑들이 귀엽다.

다음으로는 동쪽으로 완주 송광사에 갔다. 보통 ‘송광사’라고 하면 전남 순천에 있는 그것이 먼저 거론되는 통에 약간 묻히는 감도 있지만, 완주의 송광사도 창건된 지 천 년이 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4월이면 바로 앞 벚꽃터널길이 장관을 이루고 6~7월이면 연꽃이 만개하니, 전북에서는 여행지로서도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완주 송광사.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앞둔 지금은 연등이 이 절의 자랑이다. 이곳은 연등을 탑처럼 쌓아 올리곤 하는데, 오방색 탑이 여럿이 서 있는 그 한가운데에서 염불 외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약간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완주 송광사.
완주 송광사.

다만 오늘은 갑자기 오른 기온과 흐려진 하늘, 꿉꿉해진 공기 때문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도 조금 받았다. 사람이라기보단 한 마리 도롱뇽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완주 송광사.

한 달쯤 뒤에 다시 오면 그땐 연등이 아니라 연꽃이 반길 것이다. 연꽃 철이 지나면 또 저기저기 산에 단풍이 들겠지. 하나하나 다 볼작시면 일 년 내내 쉼이 없겠다.

작년에 완주 송광사 연밭에서 찍었던 사진.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