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오륙년 묵은 기억, 전주 우아주공1차아파트.

2018.09.01.

도시는 언제나 일일신우일신.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진다. 내가 딛고 선 이 자리에는 벌써 수천 년, 수만 년, 그 이상의 시간이 겹쳐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변하는 건 강산이 아니다. 풍경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다.

2018.09.01.

사람이 많고 활기가 있는 도시일수록 그런 변화는 더욱 빠르고, 더욱 힘차다. 이제는 흔한 단어가 되어버린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한다. 딱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의미도 아닌, 그냥 ‘현상’으로서의 그것을. 땅은 한정적이고, 세월은 흐르며, 사람도 사람의 생활 양태도 변한다. 건축물은 낡으면 위험해지고, 도로나 철도는 좁고 굽은 채로 두면 제 기능을 못 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재건축이라는 것도 결국 그렇다. 오래된 아파트가 헐리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그 도시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채로 세월만 지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또 없다.

2018.09.01.

전주 우아주공 1차 아파트. 검색하면 1982년에 입주가 시작됐다고 나오는데, 이게 언제냐면 전라선이 전주시 외곽으로 이설되고 새 전주역이 문을 열었을 즈음, 막 ‘6지구’ 개발이 시작될 즈음이다. 이 당시 주변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채 농경지며 과수원이며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백제대로가 뚫리고 여러 공공기관이 자리를 잡으며 지금 같은 번화한 곳이 됐다.

지금 바라보면 위치 조건은 아주 좋다. 빠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닿을 정도로 전주역과 대형마트가 가깝고, 도로 하나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고, 중학교 두 곳이 근처에 있다. 동물원과 대학병원도 멀지 않다.

2018.09.01.

분명 여기 살긴 살았는데, 이 아파트 자체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방의 구조,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던 사람들, 그 시절 갖고 놀던 장난감, 가구 배치, 주변 시장통은 기억나는데. 아주 어릴 적에 살다가 떠난 지가 벌써 이십오륙년 정도 됐으니, 기억이 나는 게 더 이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시 복판에 있는 것을 위치며 길이며 기억할 턱이 없지. 그러니 찾아갈 일도 딱히 없었다.

내가 이제 와서 어떤 감상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다. 주민도 아니고, 철저한 외부자니까. 그러나 굳이 그런저런 이야기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아도, 어떤 사람들의 인생의 한 조각을 차지했던 공간이 다른 형태로 대체되는 걸 아쉬워하는 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18.09.01.

집집마다 ‘출입 금지’ 표찰이 붙었다. 단지 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만난 사람이라곤 고물을 수집하는 이 한 명 정도였다. 공시된 이주 기간이 마감됐으니 아마 거의 빈집일 것이다. 한때 주차공간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을 저 주차장을 대형폐기물 더미들만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구석구석을 보면 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도로에서 가까운 주차장에는 차가 제법 있었다.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도 ‘이전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계속 운영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2018.09.01.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됐을까? 능소화 덩굴이 인상적이다.
2018.09.01. 능소화.

아쉽게도 고양이는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조금 기대했었다.

2018.09.01. 신-구의 대조.
2018.09.01. 놀이터였던 것 같다. 기둥만 남은 이 건축물은 아무래도 놀이터마다 있는 등나무쉼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것에 대한 기억은 없다.
2018.09.01. 축 발전.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이십오륙년 뒤에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전주라는 도시가 죽지 않는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럼 나는 이십오륙년 뒤에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 살아나 있을랑가 모르겄다.

2018.09.01.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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