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만 준비하시고, 쏘세요. /w Zeiss Ikon Contessa LKE
노출계가 없다고 해서 사진을 못 찍는 건 아니지만, 분명 적정노출을 잡는 데 실패하는 비율이 높아지기는 할 것이다. 자이스 이콘 콘테사 LKE 카메라는 셀레늄식 내장 노출계를 갖춘 모델이지만, 내가 산 물건은 노출계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처음엔 어느 정도 보정해서 쓸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게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은 빛을 세심하게 제어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외장 노출계를 따로 살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스마트폰용 노출계 어플리케이션이 있으니까. 어떤 앱이 좋냐면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일단 내가 쓰는 것은 pocket light meter라는 앱(iOS용)이다. 대체로 기능이며 디자인은 대동소이한 것 같다.
휴대폰을 꺼내 노출을 재는 일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걸 컷마다 할 필요는 없다. 낮에 야외에서라면 전체적인 밝기가 변화무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번 노출을 잰 뒤, 그다음은 프레임 안의 상황에 따라 적당히 셔터속도나 조리개를 조절해 보정하는 식으로 쓸 수 있었다. 네거티브 필름의 관용도를 믿어보는 것도 좋다. 한 스탑 정도의 오차라면 현상소에서 보정해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한 번 척 보면 척 노출을 계산해 내는 ‘뇌출계’의 고수가 된다면야 훨씬 편하겠지만, 그게 뭐 쉽게 되나.
거리계 연동식 파인더를 갖추고 있어 초점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이중상을 맞추는 일이 쉽지는 않다. 파인더 안의 이중상이 잘 안 보일뿐더러, 초점링·셔터속도 조절링·조리개 조절링·감도 조절 레버가 죄다 렌즈 경통에 붙어 있는 구조 때문에 컷마다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역시 팬포커스가 답이다. 어차피 최고 셔터속도 1/500초 수준이면, 낮에 야외에서는 조리개를 열래야 열 수가 없다. 웬만해선 f/8이나 그 이상으로 조이게 되는데, 그럼 가까이 들이대는 경우가 아니라면 화면 전 영역에 초점이 고르게 맞게 된다. 보통은 무한대나 그 직전 정도 위치에 초점을 맞춰 놓고 팬포커스로 찍어대다가, 특별히 가까운 것을 찍어야 할 경우에만 초점을 다시 맞춰주는 정도면 된다.
이러면 두 가지 고민, 노출과 초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남는 것은 화면을 어떻게 짤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런 고민 정도가 되겠다. ‘그러면 목측식 파인더 달린 똑딱이 쓰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솔직히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음… 갬성…?
결과물은, 크게 인화해본 것이 아니라서 해상력이니 뭐니 하는 것을 따질 계제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일단 처음 두 롤을 현상·스캔해본 뒤 살펴 본 전반적인 느낌은 괜찮다. 초점이 맞지 않은 부분이 흐려지는 패턴이 거칠지 않아서 좋고, 초점이 맞은 부분은 분명하게 맞은 느낌이 나서 좋다. 사용법에 조금 익숙해지기만 하면 산책용 카메라로 적당하겠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본체에 스트랩 고리가 없어서 가죽 케이스를 씌워야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데, 케이스를 씌우면 필름을 교체하기가 정말 번거롭다. 본체에 바로 스트랩을 연결할 방법이 없을까 하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다.
아래는 샘플 사진. 코닥 컬러플러스 200 필름을 이용했고, 현상·스캔은 모두 필름로그(filmlog)에서 받았다. 간단한 보정을 거쳤다.
그럼 이만.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