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7.

업사이클 카메라 현상 결과물을 보고 나니까, 괜히 또 필름사진에 꽂혔다. 펜탁스 MX는 친구에게 팔았고, 가진 필름 카메라는 캐논 EOS-1뿐인데, 가지고 나가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이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본체도 무거운 편이지만 가진 렌즈가 28-75mm 줌렌즈 하나뿐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50mm나 40mm 단렌즈가 있었다면 좀 달랐을 수도 있겠다.

하여간 장비는 다양하게 갖춰놓는 게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작고 가벼운 일상용 필름카메라. 역시 그게 필요했다. 조건을 적어보니까 대충 이 정도였다.

  • 일단 작고 가벼울 것. 무게는 600g 전후까지는 OK.
  • 자동초점 기능을 지원하거나, 초점이 맞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 SLR은 지겨우니까 제외.
  • 예산은 10~15만 원 선.
  • 135판일 것.
  • 노출계 웬만하면 있으면 좋음.
  • 디자인이 예쁠 것.

추려놓고 보니까 저기에 들어맞는 모델이 참 드물었다. 제일 맞추기 어려운 게 예산 부분이었는데, 예산이 충분하면야 콘탁스 G2, 콘탁스 T3, 미놀타 TC-1 같은 걸 지르면 그만이었겠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 문제. 하이매틱 시리즈나 야시카 일렉트로 같은 것은 내 기준엔 안 예뻐서 탈락. 그렇게 자꾸 쳐내던 어느날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2019.11.07.

바로 자이스 이콘 Contessa LKE.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종은 아니지만, 일단 생긴 것이 마음에 들고, 성능도 그럭저럭 내 기준에 부합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덜컥 구입.

1960년대(카메라피디아 위키에 따르면 1963~1965년)에 생산되었다고 하는, 레인지 파인더(RF)를 갖춘 카메라다. 렌즈는 50mm f/2.8 ‘테사’가 붙어있다. 셔터속도는 1/15~1/500초를 지원하고, 셀렌 노출계를 갖추고 있다. RF카메라가 다 그렇듯 이중상 합치식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다. 만들어진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동기능이라곤 하나도 없다.

2019.11.07. 자이스 이콘 로고가 선명하다.

RF카메라를 써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이중상 초점 맞추는 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이게 또 정확히 맞는 건지 어쩐지는 필름 현상 뒤에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판매자는 파인더를 교정해놨다고 하는데, 정밀기계는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틀어질 수 있는 법이니까.

2019.11.07. 아래부터 조리개링, 셔터속도/감도 조절링, 초점링.

노출과 초점에 관한 모든 조작은 왼손으로 하게 되어 있다. 조리갯값, 셔터속도, 필름감도, 초점 조절장치가 전부 렌즈 뭉치에 달려 있는데, 이게 익숙해지면 편할 것 같기도 한데 익숙해지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나가서 촬영해보니까 초점 한 번 맞추려고 이 세 가지 링을 다 한 번씩 건드려야 했다. 초점은 스탑마다 딱딱 끊어지는 느낌도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필름감도는 익숙한 ISO값이 아니라 DIN값으로 적혀 있다. ISO 100 상당의 감도는 DIN 21인데, 한 스탑마다 3씩 더하고 빼면 된다고 한다. 나는 ISO 200 필름을 넣었으니 DIN 24에 맞추면 된다.(사실 ISO값은 ASA값과 DIN값을 병기하는 게 원칙이다. 100/21, 200/24 같은 식으로. 보통은 ASA값이 더 익숙하니까 ISO=ASA로 생각하게 되는 것.) 물론 이 카메라는 자동노출 기능이 없으니, 감도 설정은 노출보정과 같은 뜻이 된다.

2019.11.07.

노출을 확인할 수 있는 창이 파인더 안에 하나, 상판에 하나 이렇게 두 개가 있다. 이것도 독특한 부분인데, 아쉽게도 이 노출계가 정확하지 않다. 실제 조도보다 훨씬 밝게 측정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정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 요즘은 스마트폰 노출계 앱이 있으니까 이것 때문에 크게 불편을 겪을 것 같지는 않다.(나에 대한 과대평가일지도)

2019.11.07.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셔터 장전 레버다. 끝까지 젖히면 딸깍 하는 느낌이 오면서 필름 카운터가 한 칸 돌아가는데, 그게 정말 중독성이 있다. 셔터 소리는 렌즈셔터 카메라다운 ‘틱’ 소리가 난다. 한편 필름카운터는 0으로 자동 리셋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필름 넣을 때마다 직접 0을 맞춰줘야 하는 듯. 정확한 것은 구글 선생님이 알려주실 것이다.

2019.11.07.

필름 되감기 버튼과 되감기 노브는 하판에 있다. 오른쪽 되감기 버튼을 누르면 노브가 튀어나오는 구조다. 되감기 노브가 왼쪽 어깨에 붙어 있는 카메라만 써봐서 이런 것은 새롭다.

필름을 넣고 가지고 나가려는데, 한 가지 미처 몰랐던 문제를 발견했다. 본체에 스트랩 고리가 없어서 반드시 케이스를 씌워야 한다는 것. 옛날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은 전부 카메라에 케이스를 씌워 가지고 다니며 썼나? 잘 모르겠다. 콘셉트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가죽 케이스를 씌우니 더 예쁘다.

2019.11.07.

@moragoheya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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