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 애기오리 관찰기 /w 올림푸스 40-150 pro
해마다 4~5월쯤 되면 불광천에 아기오리들이 출현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벚꽃과 함께 불광천의 봄을 알리는 양대 전령사인 셈이다. 어미오리들이 어디에 알을 낳았는지, 새끼들이 어디서 부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둥지가 하천 주변의 풀숲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다.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 좋을 것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호기심은 접기로 했다. 그건 철저히 개압(鴨)정보의 영역일 것이다.
천변엔 야생조류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는데도 가끔 빵쪼가리를 떼어 던져주는 이가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그냥 먼발치에서 구경하다 가곤 한다. 이 청둥오리들은 그냥 그렇게 ‘불광천 풍경의 일부’가 돼 있다. 아마 다른 하천의 오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테지만, 이 오리들은 사람을 특별히 경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람 손을 탄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든 말든 물 밑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먹이를 찾거나, 가만히 서서 쉬거나, 하천 한복판의 분수 시설에 앉아 잠을 자거나 한다. 아마 오리에게도 사람들이 ‘불광천 풍경의 일부’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만 해본다.
올해의 아기오리들을 처음 만난 건 4월 25일이었다. 무슨 참다래(키위)처럼 생긴 동물들이 나와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그 꼬물거리는 것들을 쳐다보고 있었고, 더러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 혹은 동영상을 찍었다. 12-40 pro 표준렌즈로는 아무래도 아쉬워서, 40-150 pro 망원렌즈를 들고 다시 나왔다. 아기들이 가끔 몸을 쭉 뻗고 활개를 칠 때 설마 저게 날개일까, 정말 저게 나중에 양력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작은 무언가가 앞뒤로 흔들렸다. 종종 그 세지도 않은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헤엄쳐 올라오기도 했다. 이들이 언제 세상에 나왔는지는 모른다. 벚꽃 만개했을 때 이후로 한 2주 정도 불광천 산책을 걸렀는데, 아마 그사이에 나오지 않았을까.
응암역~증산역 사이 2km 남짓 구간에서 세 집단의 각기 다른 가족을 목격했고, 집단마다 새끼의 숫자와 성장 속도가 각각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육아는 전적으로 암컷이 담당하며, 수컷은 그냥 한량처럼 쳐놀기만 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아마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도 모를 거야, 얘들은. 아기오리들은 웬만해선 어미 반경 2m 밖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어미는 항상 새끼들을 관찰(내지는 감시)하고 있었다. 가족끼리 장거리를 이동하기도 하는데,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물 위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천변 비탈을 이용해 보를 넘나들기도 했다.
아기오리들이 한참 물 속을 헤집다가 가끔 뭍으로 올라와 솜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기도 하는데, 그게 참 귀여웠다. 아직 방수 기능이 완전하지 않은 듯한 솜털에 물방울이 맺힌 것도 귀엽기가 짝이 없다.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으며, 저렇게 생긴 것이 또 어떻게 제 어미처럼 생기게 될 수가 있는 것일까? 부리는 검고 뺨은 노랗고 얼굴을 가로지르는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것까지 귀엽지 않은 구석이 없다. 그러니 천변을 걷던 사람들이 뭐에 홀린 것처럼 모여들어 구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까 불광천에 산책을 나갈 때마다 기대하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냐면 바로 다음 날이었다.
덕분에 40-150 pro 렌즈를 톡톡히 활용하고 있다. 이 정도 초점거리라면 오리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적당히 얼굴이 보일 만큼 촬영할 수 있고, 한낮에 부서지는 물결이 빛망울로 표현되면서 마치 일부러 특수효과를 넣은 것 같은 이미지가 나온다. 문제는 초점인데, E-m1 본체가 가진 자동초점 기능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참새처럼 3차원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수면에서 2차원으로 움직이는 아기오리들을 촬영하기에는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심도를 적당히 얕게 준 뒤 채도 보정을 조금 거치면 얕은 개울도 급류처럼 포장할 수가 있다.
며칠 뒤에 보니, 이 오리들이 벌써 불쑥 컸다. 그런데 그게 또 집단마다 차이가 있어서, 어느 집단은 벌써 제법 청소년오리의 느낌이 나기 시작한 반면에 또 어떤 집단은 여전히 유년기 그대로였다. 부화 시기에 차이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형제자매의 수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좀 컸다 싶은 집단의 새끼오리는 모두 6마리였고, 그대로다 싶은 집단의 새끼오리는 11마리였다. 찾아보니 부화기가 4월부터 7월까지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새끼가 더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5~8주 정도 지나면 나는 것을 배운다고 하니, 한두 가족이 날아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불광천에 새끼들이 떠다닐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수명인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청둥오리가 무려 30년이나 살 수 있다고 한다. 자라기도 금방 자라면서 수명도 긴 것이다.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YS는 못말려를 기억하는 오리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 야생에서 그 수명을 다 채우기가 어디 쉽겠냐마는. 이 새끼오리들이 다음 주엔 얼마나 자라 있을까? 다 자라고 나면 얼마나 떠나고 얼마나 남을까? 떠난다면 언제 떠날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