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수칙 지켰니? 이제 백신 주사를 맞자
- 특별한 이상반응 없이 접종 부위에만 통증 지속
- 국내 접종자 1300만 돌파…그래도 마스크 필수
노력 없이 뭘 잘 주워 먹는 편이다. 명절 기차표를 딱히 힘들이지 않고 예매한다든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스펙 가지고도 신기하게 경력 공백기 없이 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든가, 딱히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닌 과목에서 뜬금없이 성적을 잘 받는다든가, 하는 식이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경기장 규격이 남들보다 좀 작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약도 마찬가지로 딱히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따져보면 ‘내’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내 법적/지정성별과 나이가 발생시킨, 이 동일집단 차원의 특권에 가깝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100만 명 분량의 얀센 백신 중의 하나를 잡았는데, 특히 얀센 백신은 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이나 화이자 제품과는 달리 한 번 접종으로 끝난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행운’ 내지는 ‘특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무슨 ‘광클’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무실에서 ‘아 참, 오늘부터 백신 신청 받는댔나?’ 하면서 대충 토요일 낮, 최대한 집에서 가까운 의원으로 골라 눌러보니 자리가 있어서 신청했다. 그게 오전 10시 무렵이었는데, 자리가 텅텅 빈 것을 보아 의외로 토요일 낮 시간대 신청자 수가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들 훌륭한 백신휴가가 보장돼서 주중으로 신청한 걸까? 내가 경쟁을 잘 회피한 건가? 솔직히 백신휴가가 잘 보장된다면야 주중에 맞는 게 노동자 입장에선 이익일 것 같긴 하다.
금요일 퇴근길에 약국에 들렀다. 타이레놀을 미리 사놓을 요량이었는데, 내가 타이레놀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약국 직원은 아주 당연한 절차처럼 “여기 적힌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들은 타이레놀과 성분이 같으므로 다 괜찮다”고 설명하고서 ‘백신 접종 관련 투약 시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문과 약을 함께 내줬다. 이 시국에 타이레놀을 찾는 사람은 백신을 맞았거나 맞을 예정인 사람인 것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잠을 잘 못 잤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SBS에서 방영한 ‘컴눈명’에 관한 이야기가 트위터를 휩쓸었고, 그 분위기를 타고 나도 모르게 K팝(근데 이제 2000~2010년대에 대한 향수를 곁들인)을 붙잡고 사이버 오열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사실상 밤을 새운 것인데, 어쩌다 보니 ‘백신 접종 후유증이 나타날 것 같으면 자면 된다’ 같은, 일종의 대비책을 준비해 놓은 것처럼 됐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그것은 현실이 됐다.
접종 신청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토요일 낮의 동네 의원은 붐볐다. 간단한 문항 몇 가지를 읽고 체크했다. 그러고서 한 20분쯤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왼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내야 했으므로, 상의 단추를 몇 개 풀어 내렸다. 의사는 내게 힘을 빼라고 했다.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힘을 빼고 있다가도 주삿바늘이 쿡 들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나? 물론 주사 맞는 게 무서워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그 좀 무서울 수도 있지! 하여간, 그래서 그런 건지, 주사 맞은 곳이 꽤 아팠다. 이때만 해도 주사 맞은 자리의 통증은 금방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왼쪽 어깨가 욱신욱신하다.
이상반응이 오면 금방 조치할 수 있도록 30분 정도는 근처에 있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5분쯤 병원 안 대기 장소에 앉아 있다가, 병원 맞은편 카페로 자리를 옮겨 책을 조금 읽었다. 물론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으면 산책이라도 좀 해볼까 했지만 이미 날이 지나치게 더워진 상태여서 기각. 하루 정도는 씻지 말고 있으라는데, 산책하다 땀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논리로 나를 설득했다. 사실 귀찮고 졸립기도 했다. 이쪽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낮엔 한 네 시간쯤 쭉 잤으니 딱히 증세를 인지할 것도 없었고, 저녁쯤 돼서야 조금씩 뭔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뭔가’라고 해도, 사실 이게 백신 접종 때문에 온 것인지 평소에도 있던 건데 좀 예민해져서 더 크게 느끼는 건지 아니면 잠을 잘 못 자서 그런 것인지, 그런 인과관계는 단정할 수 없다. 우선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약간의 열감-다만 체온을 잰 것은 아니기에 이 느낌이 정확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이 있었고 또 뒷목과 그 주변이 평소보다 뻐근했다. 전날 사다 놓은 진통제를 두 알 먹었다.
늦은 밤부턴 조금씩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무시하고 일단 누웠는데, 나중엔 이불을 완전히 뒤집어써도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릴 정도가 됐다. 결국 새벽에 전기장판을 켰고, 그리고 그 뒤로는 별일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오한도 두통도 사라지고 다만 몸이 약간 뻐근한 느낌, 딱 그 정도만 남았다. 설마 이게 전부일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라지만, 이 정도 선에서 그냥 순탄하게 지나간다면야 나쁠 것이 없겠다. 아무래도 내 몸의 면역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멀쩡했던 모양이다. 백신휴가로 월요일을 쉬면서도 약간의 민망함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여간, 이렇게 일단 한 단계를 넘었다. 15일,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이 1300만 명을 넘어섰다. 정부의 상반기 접종 목표를 보름 앞당겨 달성한 셈이다. 그래도 마스크는 꼭 챙겨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