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하는 소리

내 차례가 결국 돌아왔고, 일주일이 지났다 /w 코로나19

언젠가 한 번쯤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냥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딱히 마음의 준비 같은 것도 없이. 솔직히 어디서 옮았는지는 모르겠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폐지된 뒤에도 꼬박꼬박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집과 회사와 산책길 외에는 딱히 어딜 간 적도 없으며, 늘 손을 박박 씻었고… 하여간 질병관리청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그래도 찾아오는 병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3년 차, 나도 확진자가 됐다.

2022.05.21. 선명한 두 줄이 나타난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또 그냥 감기겠거니

‘그것’이 오는 느낌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목이 조금 깔깔했고, 늘 그랬던 것과 같이 두통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게 금요일이었는데, 일을 하는 데에 지장이 생길 정도의 그런 몸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일단 정상적으로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가끔 있는 일이다. 특히 금요일에 하는 업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몸이 안 좋아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제껏 이런 증상이 있을 때마다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봤지만 전부 음성이었다. 자가진단키트의 정확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서 거짓 양성, 거짓 음성이 종종 나온다고 하던데, 그렇다고 그때마다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 하여간, 여느 때와 같은, 그냥 그런 감기 증세겠거니, 하고 버틸까 했다. 그래도 시국이 하도 수상하니까 자가진단키트를 써봤다. 음성이었다. 부스터샷까지 맞은 몸이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2022.05.15. 자가격리 한 주 전,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호수의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비둘기 한 마리가 카메라 앞을 지나가고 있다.

뭔가 이상하긴 한데…

크게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고 주말을 맞았다. 사람이 주중 5일 동안 일을 했으면 주말에는 밀린 빨래도 하고 청소도 좀 하고 밖에 나가서 새끼오리들도 보고 해야 하는데, 꼭 잠에서 덜 깬 것처럼 몽롱-한 상태가 계속되니까 뭔가 이상하긴 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젯밤에 검사한 게 음성이었는데, 뭐, 코로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탁소에 가서 맡긴 옷들을 찾아왔고, 근처에 박지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유세 온다길래 나가서 멀찍이서 잠깐 구경했고, 그리고 광화문에 저녁 약속이 있어서 다녀왔다.

그러고서 집에 왔는데, 그냥 뭔가 이상하게 찜찜해서, 그래서 자가진단키트를 하나 더 꺼냈다. 용액을 키트에 몇 방울 떨어뜨리자마자 상당히 짙은, 맹렬한 빨강이 키트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 빨강은 아래에 한 줄, 위에 한 줄, 이렇게 두 줄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양성이었다. 일단은 아세트아미노펜 약을 한 알 먹고 누웠다. 아침에 보건소 문 열면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음날 아침, 보건소로 나서기 전에 키트를 하나 더 써봤다. ‘혹시 어제 검사한 게 잘못된 거라면?’ 했던 생각을 비웃듯이 이번에도 아주 선명한 양성이었다.

걱정된 것들

사실 두 줄 키트를 처음 본 순간 내 머릿속을 채운 건 내 몸에 대한 걱정 같은 게 아니었다. 토요일 하루 동안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이 내게서 바이러스를 옮아갔으면 어떡하지? 일단 내 동선이 어떻게 됐더라? 나와 가까운 거리에 몇 명이나 들어왔지? KF94 마스크를 쓰고 다니긴 했는데… 오미크론은 더 쉽게 퍼진다고 하지 않았나? 저녁 약속 자리에서 마스크를 벗었었다. 당연함. 식사 자리였음. 그럼 옮겼을 수도 있지 않나? 일단 얘기를 해놔야겠는데…

그리고 그다음에 생각이 난 건 그다음 한 주의 일정이었다. 매월 가장 회사 일이 바쁠 시기이기도 했고(굳이 감염병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노동자가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기도 했다. 회사 일을 어떻게 어떻게 재택근무로 처리한다고 해도 개인 일정은 당연히 어그러질 수밖에. 그러니 ‘사실상 거짓 양성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으면서도 간절하게 ‘음성 나와라’ 염불을 욀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확진 경험이 있는 친구는 ‘격리 들어가기 전에 약과 식량을 많이 쟁여두라’고 전해줬다. 아주 적절한 가르침이었다.

2022.05.23. PCR 검사를 받은 다음날 아침에 날아온 확진 통보 메시지.
2022.05.23. 모바일 역학조사 페이지. 어디어디 갔었는지 그런 걸 묻지 않는다.

증상 1: 목이 매우 쓰리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목이 정말 아팠다. 엄청나게 건조한 곳에서 열 시간쯤 자고 일어났을 때 느낌? 아주 뜨거운 사우나에서 숨을 입으로 한껏 들이마셨을 때 느낌? 어디선가 ‘칼을 삼키는 듯한 통증’이라는 표현을 봤는데, 솔직히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충 뭔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 증상은 초기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대충 3일차쯤부턴 통증은 딱히 없었다.

증상 2: 가래가 많이 낀다

1의 증상이 좀 잠잠해질 때쯤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나오고 가래가 꼈다. 목에서 무슨 액체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전화 통화를 할 일이 많았는데, 목에 뭐가 가득 차 있으니까 목소리가 달라지고 또 자꾸만 기침이 나오니까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하는 반응을 들을 일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무렵엔 그냥 좀 불편할 뿐이지 몸이 딱히 아프거나 한 단계는 지나갔기 때문에 “아 뭐 그렇죠 ㅎㅎ” 하고 말 뿐이었다.

증상 3: 어지럽다

가끔 피곤하면 뇌와 눈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뭔가 몸의 반응이 조금씩 늦는 것 같은? 머리만 공중에 붕 떠있는 것 같은? 그런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증세를 겪곤 한다. 뭉뚱그려서 ‘어지럽다’고 말은 하지만, 뭔가 ‘어지럽다’는 말로는 정확하게 설명이 안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게 코로나19의 증세인지 아니면 내가 몸이 약해지면서 같이 겪은 증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그랬다.

증상 4: 자도 자도 졸립다

근데 이게 코로나19 탓인지 그냥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증상 5: 답답하다

이건 코로나19의 증상이라기보단 자가격리의 영향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집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닌데 여기서 생활과 일을 다 하려니 이게 사는 건가 싶고 나가서 햇볕 좀 보고 싶고 새끼오리들도 보고 싶고 장미는 얼마나 피었을까 궁금하고 이럴 바엔 차라리 출근을 하고 싶다…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답답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더 답답한 것은 쓰레기 처리 문제. 격리 기간에는 쓰레기를 내보낼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넓지도 않은 집 현관을 쓰레기봉투가 잠식해가는 것을 견뎌야 했다. 세상에, 사람 한 명이 그냥 숨만 쉬고 살아가는 데에도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는구나, 내가 과연 ‘없는 것보단 나은’ 존재이긴 할까, 하는 근원적인 고찰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2022.05.27. 격리 해제를 앞두고 자가진단키트로 검사해 봤다. 아래쪽 선이 희미해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할 일이라도 있어서 생활 패턴을 유지(Yuji)할 수 있었는데, 토요일이 문제였다. 그냥 아침부터 밤까지 ‘나는 쓰레기인가’를 여러 버전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잠들었다가 일어났다가 뭘 먹었다가… 사는 게 정말 재미없기도 하지. 불행 중 다행은 6.1 지방선거 사전투표 기간이 딱 여기에 걸쳐 있었다는 점이다. 격리 마지막 날 저녁에 확진자 사전투표를 위해 아주 잠깐 외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록 투표 외에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현관 밖으로 나가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 그리 상쾌하던지.

격리 해제

5월 29일 일요일. 불과 일주일 만에 날씨가 여름의 그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29.7도에 달했다. 22일의 25.8도에 비해 3.9도 높은 수치다. 격리되기 한 주 전에는 완전 아기들이었던 불광천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은 벌써 제법 커다랗게 자라 있었다. 아무튼 지구는 도는 것이다.

2022.05.14. 격리되기 한 주 전에 촬영한 불광천 아기오리들.
2022.05.29. 격리 해제된 뒤 촬영한 불광천 아기오리들. 이젠 ‘아기’보다는 ‘청년’에 가깝다.

오랜만에 햇볕을 쬐니까 좋다. 그렇지만 다시 출근을 해야 한다. 세상이 매정하다.

2022.05.29. 서울 여의도공원 연못에 흰 수련이 피어 있다. 비단잉어 한 마리가 수련 옆을 지나간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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