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우리 연이 닿는 데까지 @시흥 연꽃테마파크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랬다. 사실 이육사가 언급한 7월은 음력 7월로, 양력으로는 8월이라고 한다. 양력 7월에는 청포도가 익지 않는다고. 기후가 바뀐 탓인지 품종이 바뀐 탓인지 아니면 시설재배의 영향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저온 저장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 건지 요즘은 양력 7월에도 청포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잘 와닿지는 않는다. 샤인머스캣은 맛있다.
내게 7월은 연꽃이 피는 계절이다. 연꽃은 6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서 7월 하순쯤에 절정을 보이다가 8월에 떨어지는데, 그러니까 대체로 여름방학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전주에 살 적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꼬박꼬박 연꽃 구경을 다녔다. 아무래도 주변에 덕진공원이나 송광사 같은 연꽃 명소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특히 덕진공원은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도심 속 공원이면서도 그 규모와 풍광이 대단해서, 뭐랄까, 약간 ‘전주의 n대 축복’ 같은 그런 존재였다.
모든 게 다 있는 서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몇 가지 중 하나가 연꽃 군락이다. 연꽃 자체만이라면 조계사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는 있지만, 또 이런 것도 그 나름대로의 정취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탁 트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꽃대를 올린 연꽃들을 보는, 푸르고 싱그러운 느낌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게 사실. 이런 풍경은 ‘비교적 가까운 공간’ 중에서 골라본다고 해도 양평 세미원이나 시흥 연꽃테마파크 정도까지는 가야 만날 수 있으니, 그 기분이 전주에 살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몇 년 전부터 가야지 가야지 벼르고만 있던 곳, 시흥 연꽃테마파크에 다녀왔다. 직선거리로는 서울에서 아주 가깝다. 그러나 경의중앙선 광역전철을 이용하면 쉽게 닿을 수 있는 세미원과는 달리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에는 분명 조금 번거로운 편이다. 최근에 개통된 서해선 전철을 이용해도 가장 가까운 역이 걸어서 30여 분 거리. 몇 번의 환승을 감수한다면 방법이야 다 있지만, 이 날씨에 이 몸뚱이로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탄 게 택시. 돈으로 편의를 사겠다는 발상을 감히 할 수 있게 된 요즘이라 가능한 일이다.
연꽃테마파크에 닿으면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왕복 4차선 도로의 양쪽 차선 하나씩 잡고 줄줄이 늘어선 자동차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이 따로 없었구나. 아무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걸까? 만약 내가 차를 몰고 왔다면 있지도 않은 주차장을 찾느라 한참 빙빙 돌았겠지.
전형적인 관공서처럼 생긴 건물 하나를 왼쪽에 끼고, 연밭과 벼논이 교차하는 곳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해오라기 비슷한 어떤 새가 하늘을 가로질러 유유히 날아간다. 날은 벌써 덥고 뜨겁다. 일단 뭘 좀 입에 넣고 시작하기로 했다. 들어가는 길목에 눈에 띈 어느 시설하우스에 들어가 연잎 아이스크림을 샀다. 분명 아이스크림인데, 맛은 쿠키, 그중에서도 녹차맛 쿠키를 먹는 듯한 맛이다. 그런데 질감이 또 쫀득쫀득하다. 막 달지는 않은데, 고소하고 맛있다.
내가 찾아간 7월 9일에는 연꽃이 아직 덜 핀 상태였다. 군데군데 봉오리가 올라와 있는 정도였고, 활짝 핀 꽃은 아직 드물었다. 어쩌면 오후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새벽에 많이 피고 낮이 되면 오므라드는 성질을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도, 온통 녹색 연잎이 바람 따라 넘실대는 가운데 하나둘 올라와 있는 붉은, 또는 흰 꽃이 더없이 싱그러웠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가까운 곳에 있었을 개개비들의 울음소리도 그랬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한 자리에서 우렁차게 소리를 내던 여치 또한 마찬가지.
시흥 연꽃테마파크 주변 땅은 원래는 바다였다고 한다. 18세기에 제방을 쌓아 간척한 뒤 새로 생긴 땅을 농지로 활용했다는데, 그 공사를 주관한 게 호조였기 때문에 ‘호조벌’이라 불린다고. 연꽃테마파크의 시초가 된 관곡지는 그보다 훨씬 전인 세조 때 강희맹이 중국에서 들여온 씨앗으로 연 재배를 시작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7년에 이 주변의 논을 이용해 연꽃테마파크를 세워 지금 같은 관광지가 된 것인데, 시흥시청에 따르면 그 규모가 모두 18ha에 이른다.
특히 이곳은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자리다. 멸종위기 동물인 저어새가 왔다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원 안에도 저어새 모양의 조형물이 이곳저곳에 설치돼 있었는데, 물론 저어새가 전부는 아니어서, 백로나 흰뺨검둥오리, 쇠물닭, 왜가리 같은 물새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원 전체를 자기 목소리로 메우는(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1990년대 노래들 소리와도 정면 대결이 가능할 정도다) 개개비는 말할 것도 없겠다. ‘생태’에 관한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을 공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련이 동동 떠 있는 연못의 수면 위로 실잠자리들이 곡예비행을 한다. 두 마리씩 날아다니는 것이, 짝짓기에 아주 열중인 것 같다. 몸이 통통하고 더 커다란 잠자리들도 눈에 띄었는데, 특히 넓적한 날개를 달고 우아하게 나는 녀석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이 ‘나비잠자리’란다. 아닌 게 아니라, 여느 잠자리와는 다르게 폭이 넓은 데다가 까맣고 파란 묘한 색으로 덮인 뒷날개가 꼭 나비 같은 느낌을 준다. 나비 중에서도 제비나비와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다. 저게 나비여, 잠자리여? 이것은 나비잠자리다.
연꽃 구경은 사실상 더위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피는 계절부터가 그렇고, 또 연꽃이 많이 모여 자라는 곳에는 그늘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몸을 식혔다. 플라스틱처럼 보이는 테이크아웃 용기는 생분해 소재로 만든 것이란다. 아무렴, 저어새가 찾아오는 생태계의 보고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마구 양산하려 하지는 않을 테지. 카페가 있는 건물의 다른 쪽에서는 연꽃과 관련된 전시회도 진행 중이었다. 다만 그것까지 보러 갈 만큼의 기운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아직 성에는 차지 않지만, 다음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연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다시 한번 찾아오기로 하고 호조벌 둑길로 나와 큰길을 향해 걸었다. 구름에 가려져 있던 태양이 살짝 드러났다. 백로 두 마리가 자리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멀어져 간다.
돌아오는 길, 봉지를 뒤집어쓴 포도송이들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옛날엔 이 일대가 전부 포도농장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구나. 양력 7월이어도 노지 포도가 익는구나.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웠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