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했다고 또 연말 v.2023 (올해의 사진 13선)
이게 사람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기후 위기를 넘어선 기후 파탄으로 인해 날씨가 지나치게 오락가락해서 그런가, 자꾸 날짜 감각이 없어진다. 옛날에도 삼한사온이라는 게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며칠 전까지는 코트만 입어도 조금만 걸으면 땀이 났는데 갑자기 영하 이십 도를 찍는 한파에 오들오들 떨고, 그렇게 아 겨울이 맞긴 하네 하고 롱패딩을 단단히 여미고 있으면 느닷없이 기온이 또 영상으로 솟고 그러는 게 과연 인간(나)의 계절 인식에 영향을 안 미쳤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12월이 됐네, 하고 잠깐 집-회사 왕복 몇 번 하고 나니까 갑자기 또 연말이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산타도 왔다 갔다고 하고(나는 모르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송년 및 신년 기획 판이 돌아오고, 아 맞다, 어제는 사무실에서 송년 파티 같은 것도 간략하게 치러지고 지나갔다. 그러고서 탁상달력(시작사 달력으로, 사무실에서 파티션 대용으로 쓸 수 있다)을 보니까 2023년판 달력에 더 남은 칸이 없는 것이 아닌가. 진짜로 연말이구나. 해가 바뀌는구나. 2024년판 새 달력을 꺼내면서 비로소 연말연시를 체감했다.
‘남의 노력’을 즐기며 한껏 뿌듯해진 그런 해였다. 그 중심에는 오랜만에 다시 시작된 아이돌 덕질이 있다. 연초에 입덕할 때에도 이미 단단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 그룹이었지만 거기서 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실 나는 한 게 없기 때문에 뿌듯할 입장은 아니긴 하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세돌 덕분에 내 2023년에는 즐거운 경험들이 주요 지점마다 콕콕 박히게 됐다. 처음으로 아이돌 생일카페에도 가보고, 멜론 스트리밍 플레이리스트도 짜보고, 야외에서 치러지는 페스티벌에도 가보고, 몰랐던 좋은 노래도 많이 알게 되고, 그랬던 것이다.
반면 ‘나의 노력’과 ‘나의 성취’는 최근 몇 해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부족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일단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실제로 찍는 컷 수도 급감했거니와, 건지는 사진도 크게 줄었다. 보정 완료본을 기준으로 2021년 1100여 컷, 2022년 700여 컷이 기록된 반면 올해는 500컷도 채 되지 않는 사진만 남은 것이다. 이에 따라 블로그에 올린 글도 2021년에 18건, 2022년엔 16건이었던 데 비해 올해는 12월 29일 현재까지 7건으로 급감했다. 결과물로 평가하자면 올해는 글과 사진 분야에서는 분명 지난 두 해에 비해 덜 생산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겠다.
남긴 사진이 크게 줄어들면서 월별 대표 사진을 고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고르기 어려웠다’는 정도의 얘기가 아니라, 후보에 올릴 사진 자체가 없는 달이 있었다. 새해에는 주변 환경의 커다란 변화가 예정돼 있으니 기회를 잘 살펴야겠다. 관심사가 다소 바뀌었다는 점과 함께 체력적 한계가 더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말에 남는 시간을 자리에서 눈도 못 뜨고 뒹굴며 허비하는 일이 잦았다. 뭐라도 해야지, 배워봐야지, 익혀봐야지, 하는 마음이 마음속에서만 맴돌고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 것도 반성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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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다시 한번 몸과 마음, 취미와 덕질과 일, 소비와 생산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해가 돼야 할 것 같다. 그럴 수 있기를. 그럴 수 있겠지?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