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생각 없음’을 생각하다 @북악산, 창덕궁

2019.10.20. 북악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처음엔 분명 삼청동 일대를 잠깐 ‘산책’만 하려고 했었다. 그 인근 어디에 올라가면 사람은 별로 없고 전망은 매우 좋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북악산 등산을 하고 있었다. 필름카메라인 캐논 EOS-1을 들고, 여분의 필름은 없이. 이날 나는 한양도성을 따라 산등성이를 걷다가 내려와 성균관대 캠퍼스를 가로질렀고, 다시 창덕궁에 갔다. 나뭇잎들이 울긋불긋했고, 오후 늦은 해가 슬슬 기울어가면서 볕이 노릇노릇해진 것이 퍽 어울렸다.

2019.10.20. 북악산.
2019.10.20. 한양도성.
2019.10.20. 북악산.

어제는 또 이랬다. 나는 분명 손톱을 문지를 버퍼(요즘 손톱 정리하는 재미에 빠졌다) 하나만 사려고 올리브영에 들어갔는데, 보다 보니까 마침 섬유향수도 필요했던 것 같고, 얼굴 톤업크림도 있어야 할 것 같고, 해서 이것저것 골라담다 보니 한 바구니를 들고 나온 것이다. 정작 버퍼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버퍼링에 걸리고 만 것이다.

2019.10.20.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만난 고양이.
2019.10.20. 창덕궁, 기와지붕, 감.

종종 ‘생각 없이’ 뭔가를 하게 된다. 생각이 없어지는 빈도도 늘고, 그 상태에서 하는 일도 많아졌다. 아직은 이것으로 무슨 큰 손해가 난 적은 없다. 가챠도 사실상(?) 끊었고, 술에 빠져 지내는 것도 아니고, 사고가 난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생각 없이’ 말을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닌데… 이건 잘 모르겠다. 그건 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2019.10.20.
2019.10.20. 창덕궁 낙선재.

‘생각 없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또 김연아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생각 없이’ 그렇게 단단하게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그 몸에 밴 습관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기분이나 돌발변수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나만의 삶. 한 분야의 ‘최고’가 되려면 역시 그 정도로는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도 그렇게 단단해지고 싶다. 그러나 그런 단단한 일상을 만들진 못하고, ‘생각만 없’다. 그러니까 곤란해지잖아. 생각을 좀 하자.

2019.10.20. 창덕궁.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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