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인 파리, 매그넘 인 ‘파리’, 그리고 시샘.
단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도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각은 찾아오듯, 인생에서 ‘올 것 같지 않은’ 날도 언젠가는 맞게 된다. 벌써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점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어떤 기대랄까 호기심이랄까 설렘이랄까, 하는 것이 사라져 간다. 해가 가면 가는가보다, 뭐가 바뀌면 바뀌나 보다.
어릴 적에 상상한 2020년의 풍경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보다는 좀 더 다이내믹했던 것 같다. 과학의 달 4월마다 그렸던 상상화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달나라 수학여행 떠나는 우주선이 빠지지 않았다. 가끔은 해저도시와 잠수함, 등에 짊어지는 개인용 제트팩도 있었던 것 같다. 상상력이 부족했던 건지 현실이 암울해진 것인지, 실제로 맞은 2020년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대신 인도 곳곳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공유자전거·공유킥보드가 있고, ‘달나라 수학여행 떠나는 우주선’ 대신 우주 쓰레기가 있다. 어느 나라에서는 행인의 얼굴을 인식해 자동 채증하는 시스템이 가동 중이고, 또 어느 나라에서는 SNS 사찰을 통한 사상검증이 일상이 됐다.
그러다 보면, 과거 어느 시점이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된다. 그것이 진실에 부합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땐 그랬지’의 근거로는 오직 나 자신의 ‘느낌적인 느낌’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리즈 시절’이나 ‘벨 에포크’의 존재는 현실의 어려움을 무시하거나 돌파하는 데 그럭저럭 힘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거기에 중독된다. 내가 왕년엔 말야… 사실 이건 일시적인 침체일 뿐이고… 그렇게 라떼는 말이 되고, 청년은 기성세대가 된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꼰대’가 된다.
새해 첫날,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매그넘 인 파리> 전을 관람했다. <‘매그넘’ 인 파리>를 생각했지만, 실제로 내가 본 것은 <매그넘 인 ‘파리’>였다. 아니, 사진·사진가와 파리를 구분하는 시도라는 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파리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빛을 보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니엡스의 ‘헬리오그라피’보다 발전한, 본격적인 사진술이라 할 만한 ‘다게레오 타입’을 만들어낸 루이-자크 망데 다게르는 이 파리에 있는 탕플 대로의 풍경을 사진 작품으로 남겼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의 주인공이자 매그넘의 창립 멤버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고향도 파리였다.
‘퐁 데 자르’와 ‘에펠 탑’,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이 있었다. 보불전쟁기의 코뮌과 68혁명의 소르본, 그리고 얼마 전에 불타버린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전시 내내, 그 수많은 사진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파리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계속된다. 혁명 직후의 혼란기와 20세기 초 ‘벨 에포크’, ‘주 40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1930년대 노동자 집회의 모습, 물이 넘쳐 오는 센 강가의 벤치에 앉아 키스를 하는 커플, 재개발이 한창인 어느 언덕배기, 프랑스와 파리의 상징과도 같은 에펠탑과 노동자의 모습, 두 차례의 세계대전, 68혁명, 그리고 ‘노란 조끼’로 대표되는 현재 진행형의 ‘뉴 노멀’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사진 그 자체에 대한 일대기인 동시에 서유럽 근현대사의 축약이었다. 그러니 전시에서 본 것이 <매그넘 인 ‘파리’>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향기가 더해진 패션사진 공간과 ‘벨 에포크’ 시대의 살롱을 재현한 공간까지 거치고 나면 확신은 더욱 강해진다.
그냥 둘러보기만 해도 두어 시간은 걸릴, 규모가 대단한 전시였다. 그것은 ‘사진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유럽 근현대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체력적으론 중간에 지칠 수도 있지만, 워낙 시선을 끄는 작품이 많아 대충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지나갈 수는 없다. 다른 전시실에 따로 마련된(그리고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돼 있는)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특별전까지 꼭 놓치지 말고 관람하도록 하자.
그러나, 그러면서도, 파리와 파리지앵에 대한 동경을 마음 가득 품고서도, 살살 배가 아파져 온다. ‘제국주의 열강’이자 ‘식민모국’, 그리고 ‘백인이 주류인 1세계 나라’로서의 배경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탓일 것이다. ‘리즈 시절’이나 ‘벨 에포크’는 그만큼 기회와 자원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경우 ‘빼앗은’ 것이었다. 다게르가 ‘탕플 대로’를 촬영하기 8년 전인 1830년, 프랑스는 알제리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다. 1889년 에펠탑이 지어지고 파리 만국박람회(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이 ‘전시’되기도 했던 그 행사)가 열릴 때 인도차이나반도는 프랑스의 침탈로 신음하고 있었다. 이것은 68혁명의 원인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의 기원이 되기도 했다.
배는 아플지언정, 파리와 매그넘, 매그넘과 파리가 사진이라는 매체의 역사에 남긴, 그리고 남기고 있는 그 위대한 흔적은 결코 부정하거나 폄훼할 수 없다. 실은, 그래서 더 샘이 난다. ‘벨 에포크’와 동시대 사진이라면 서울로 압송되는 전봉준이나 화승총 든 을미의병 모습들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우리에게도 ‘벨 에포크’의 기회가 주어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수탈과 착취라면 지금도 제법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탄소 배출량도 세계적인 ‘기후 악당’ 국가고, 여전히 난민에게 빗장을 꽁꽁 닫아 걸어둔 나라다. 거 참, 계획이 다 있구나.
한편 내용 외적으로는, 맞춤법이나 외국어 표기법 오류가 종종 눈에 띄었다. 전시에서 ‘루이-자크 망데 다게르’를 ‘루이스 자크 망테 다게르’로 적었다거나, 나눠준 작가 프로필에서 이름 오류가 있다거나(Herbert List를 Herbet List로 표기함), 도록에서 ‘신랄한’을 ‘실랄한’으로 적었다거나. 너무 초보적인 실수라서 조금 어안이벙벙하다.
그래도 간만에 예당에 갔으니 뜨끈한 들깨순두부 먹고 몸도 마음도 녹이도록 하자.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