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遲刻, 知覺.
무슨 겨울이 이래, 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2020년 1월은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따뜻한 1월‘로 기록됐다. 어느 날엔가, 제주도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섭씨 20도를 넘기며 철쭉과 유채가 철모르고 피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얼죽코’와 ‘얼죽아’인 사람들이 ‘얼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반도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뭔가 굉장히 이상한 1월이었던 것도 같다. 노르웨이, 그러니까 빙하와 피오르의 나라에서, 1월에, 낮 최고기온이 섭씨 19도에 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라는 것의 거대한 실체를 목도하고 있는 것일까. 올겨울, 서울에는 ‘눈 다운 눈’이 오지 않았다. 눈이 몇 번 오긴 했는데, 여느 겨울에 그런 것처럼 수북이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2월 4일, 정말 오랜만에 서울에 눈이 내렸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저녁에는 얼음비로 변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는 살짝 쌓이기도 했다. 바로 그다음 날 아침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 11도로 떨어졌다. 입김이 짙어졌고, 코트는 다시 롱패딩으로 바뀌었다. 실종됐던 동장군이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와서 고성을 지르는 듯했다.
이상고온이 오래 이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갑자기 추워지면 더 문제라고 한다. 철 모르고 꽃을 피워버린 나무는 어떡하나. 겨울이 이렇게 싱겁게 지나가 버린 줄로만 알고 솜털을 빵빵하게 불려놓지 않은 작은 동물들은 또 어쩌고.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조금 두렵다. 두렵기는 한데 뭘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는 또 없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심보다. 내가 봐도 내가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 세상은 지금 ‘이미 늦었다’고 아우성인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너무 늦었다.
일단 자가용 승용차는 안 모니까 계속 대중교통 이용하고, 웬만한 거리는 걷고, 그리고, 그리고….
어쩌면 올겨울 서울에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잔설을 보며 든 생각.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