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지각, 遲刻, 知覺.

2020.02.05. 아침의 잔설.

무슨 겨울이 이래, 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2020년 1월은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따뜻한 1월‘로 기록됐다. 어느 날엔가, 제주도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섭씨 20도를 넘기며 철쭉과 유채가 철모르고 피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얼죽코’와 ‘얼죽아’인 사람들이 ‘얼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반도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뭔가 굉장히 이상한 1월이었던 것도 같다. 노르웨이, 그러니까 빙하와 피오르의 나라에서, 1월에, 낮 최고기온이 섭씨 19도에 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후변화, 아니, 기후위기라는 것의 거대한 실체를 목도하고 있는 것일까. 올겨울, 서울에는 ‘눈 다운 눈’이 오지 않았다. 눈이 몇 번 오긴 했는데, 여느 겨울에 그런 것처럼 수북이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2018.01.09. 전주 전북대학교 운동장에 눈이 쌓여 있다.
2020.01.12. 서울 경의선 숲길.

2월 4일, 정말 오랜만에 서울에 눈이 내렸다.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저녁에는 얼음비로 변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는 살짝 쌓이기도 했다. 바로 그다음 날 아침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 11도로 떨어졌다. 입김이 짙어졌고, 코트는 다시 롱패딩으로 바뀌었다. 실종됐던 동장군이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와서 고성을 지르는 듯했다.

2020.02.04. 염화칼슘은 한가했다.
2020.02.04. 얼음비 쏟아지는 서울.
2020.02.04. 서울 농업박물관 앞.
2020.02.04. 서울 농업박물관 앞에 있는 작은 논에 눈이 아주 살짝 쌓였다.

이상고온이 오래 이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갑자기 추워지면 더 문제라고 한다. 철 모르고 꽃을 피워버린 나무는 어떡하나. 겨울이 이렇게 싱겁게 지나가 버린 줄로만 알고 솜털을 빵빵하게 불려놓지 않은 작은 동물들은 또 어쩌고.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조금 두렵다. 두렵기는 한데 뭘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지는 또 없다.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심보다. 내가 봐도 내가 이기적이기 짝이 없다. 세상은 지금 ‘이미 늦었다’고 아우성인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너무 늦었다.

일단 자가용 승용차는 안 모니까 계속 대중교통 이용하고, 웬만한 거리는 걷고, 그리고, 그리고….

2020.02.05. 잔설.

어쩌면 올겨울 서울에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잔설을 보며 든 생각.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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