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밟고 돌아가자: 제주도 걷기 (2)
[1편에 이어]
육당 최남선(일본 제국주의 부역자)은 유명한 시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에서 이렇게 썼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
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태산 갓흔 놉흔 뫼, 딥턔 갓흔 바위ㅅ 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까디 하면서,
따린다, 부슨다, 문허 바린다.
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
어쩐지 “철썩”보다는 “텨얼썩”이라고 쓰고 읽는 쪽이 파도소리를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 드는 건 아닐 터다. 아닌가? 나만 하는 생각인가? 짜장면이 자장면보다 맛있을 것 같고 뿌라스틱이 플라스틱보다 단단할 것 같고 바께쓰가 버킷보다 직관적으로 와닿는 느낌을 알겠습니까? 몰라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좀 겸손할 필요가 있다,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 육당이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는 느낌으로 썼겠지만, 그 흐름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에 그건 거스를 수 있다. <아수라>에서 박성배가 말했듯이, 어차피 사람은 다 죽는다, 때가 되면.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자연이다. 뭔 듣도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출현해서 전 세계의 경제활동을 마비시킨 꼴을 몇 달째 보고 있으려니,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잔잔하면 잔잔한 대로, 격하면 격한 대로, 파도는 그렇게 항상 밀려오고 있다. 인간이 있기 한참 전부터 그래왔고, 인간이 사라진 다음에도 한참 그럴 것이다. 시퍼런 물이 한껏 솟아서 에메랄드빛 속내를 까보였다가, 이내 떨어져 하얗게 부서진다. 그렇게 물방울로 쪼개지면서 닿는 많은 것을 따리고 부스고 문허 바린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아니 앉아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참 쓰레기 같은 고민을 했구나, 싶다. 물론 그 자리를 벗어나면 전과 똑같은 일상이지만. 마약이다, 마약.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올레길 7코스를 서쪽으로 돌면, 마치 정글처럼 숲이 빽빽하게 우거진 구간을 지나 사람 주먹~머리 정도 크기의 동글동글한 돌이 깔린 해안을 걷게 된다. 해안선이, 지도로 대충 보면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는 않는데, 실제 걸을 땐 만과 반도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래는 법환포구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비도 오고 컨디션도 아주 좋진 않고 해서, 중간에 있는,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모 카페에서 여정을 접기로 했다. 바닷가 카페가 다 그렇듯 전망이 참 좋은데, 특히 야외 자리가 사람의 어떤 로망을 막 자극한다.
적당히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다. 이제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갈 시간이다.
이렇게 제주도 땅을 밟고만 간다. 왼발 오른발 다 합해서 약 3만 번이다. 야간의 비행기는 다소 흔들렸다.
아 참, 공항 가는 버스에서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버스 승차를 거부당하는 광경을 봤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비말차단 기능이 있는 마스크를 꼭 쓰도록 하자. [끝]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