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불광천 애기오리 관찰기 네 번째. /w 올림푸스 40-150 pro

2020.06.13. 물을 목으로 넘기는 오리.

서른이 넘어도 ‘새끼’, 환갑이 다 돼도 ‘아가’로 불리는 경우가 있다. 독립 여부와는 관계가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냥 자식이면 언제나 ‘새끼’고 ‘아가’인 모부가 있는 것이다. 반려묘는 성묘가 되고 묘르신이 되어도 언제나 ‘와기고영’이다. 내가 키운 모든 것이 ‘내 새끼’고, 시간이 흘러도 그것은 잘 바뀌지 않는다. 물론 마음이 변하는 경우도 있고 애초에 그다지 애정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여기선 논외로 하자.

올해 불광천의 아기오리를 처음 만난 것이 4월 말이었다. 청둥오리의 번식기를 고려하면, 그들은 올해 불광천에서 부화가 가장 빠른 집단이었을 것이다. 주말에나 잠깐씩 체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확성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5월 초까지 모두 세 개의 집단을 확인했고 각 집단이 주로 지내는 지역과 새끼의 수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새끼들은 저번 주엔 요만했는데 이번 주엔 이만했고, 그 다음 주에 와보면 또 한참 커 있었다. 그사이에 어떤 집단은 또 새로 부화했을 것이고, 어떤 집단은 불광천을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2020.06.13.

아마 최근에 마주친, 그러니까 이전 글(불광천 애기오리 관찰기 세 번째)에서 본 집단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13일과 14일, 이틀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솜털은 찾아볼 수 없고, 외견상으론 어미와 새끼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다만 행동양식으로 봤을 때, 가령 다른 집단이 접근할 때 매섭게 쫓아낸다거나, 다들 먹이를 찾고 있을 때 혼자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주위를 경계한다거나, 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 쟤가 어미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참, 덩치가 아무리 커졌어도 자식은 자식이고 어미는 어미인 모양이다.

2020.06.14. 스포트라이트?

한편 최근에 부화한 듯한 새로운 집단도 만났다. 하루는 이쪽에서, 하루는 저쪽에서. 같은 집단인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불광천 어디서는 산란과 부화가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2020.06.13.

14일엔 위의 다 큰 집단이 노는 곳 바로 근처에 아기들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민들이 앉아서 모이를 던져주는 징검다리 근처에는 다가오지 못했다. 다 큰 새들의 위세에 눌린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가올라치면 어미오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쫓아내곤 하니, 그냥 멀찍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떠내려가는 모이가 많아, 적당히 낙수효과를 누리긴 한 모양이다. (사실 이들이 야생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사람이 먹이를 주면 안 되는 게 맞다.)

2020.06.14.

이들이 올해 불광천의 마지막 새끼오리들일까? 아니면 더 나타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솜털이 깃털로 바뀌고, 몸집도 커질 것이다. 이 중엔 영영 불광천을 떠날 아이도 있을 것이고, 내년에 다시 볼 수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제 어미가 했듯이, 새끼오리들을 데리고 나타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눈썰미와 관찰 이력이 부족해 하나하나 구분을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름이라도 붙여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2020.06.14.

 

2020.06.14.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가 여길 떠나지 말아야겠구나.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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