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인간의 마음도 털갈이를 한다. @인천 정서진

2020.06.07.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인근에서 여행객들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건네고 있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문화는 언제 생긴 걸까? 뉴스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사는 1990년 매일경제신문 보도인데, 문맥으로 보면 이미 이 시점에도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던 것 같다. 새우깡이 197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까 그 이후이긴 할 것 같은데, ‘사람도 굶는 마당에 갈매기한테 귀한 과자를 준다’는 식으로 일침을 놓는 기사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기 시작한 건 아마 한참 뒤였을 것 같다.

사람들이 하도 갈매기만 보면 새우깡을 건네다 보니까 ‘그래도 되는가’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국제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전문가 사이에서도 “갈매기의 야생성을 해친다”는 의견과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모양이다. 어선이 그물을 걷어 올릴 때마다 온갖 바닷새가 몰려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그럴 듯도 하다가도, 또 야생 생태계에 굳이 유희를 위해 인간이 개입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2020.06.07. 관광객이 던진 새우깡을 잡으려 하는 갈매기.

 

2020.06.07. 갈매기가 새우깡을 부리로 받고 있다.

정동진은 워낙 유명하지만, 그 반대 개념인 정서진은 그 정도로 알려져 있지는 않다. 사실 정서진이 딱 한 군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정서진’이라고 검색하면 대체로 인천 서구 경인아라뱃길 끄트머리의 정서진이 나오지만, 충남 태안군은 ‘서쪽 땅끝’인 만리포 해안을 정서진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천 서구가 사실상 ‘승자’가 된 것에는 아무래도 경인아라뱃길을 띄우려는 이명박 정권의 의도와 수도권 중심주의가 함께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실제로 이명박 씨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기도 하고.

인천 정서진은 서울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바닷가다.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에서 44번 버스를 타면 10분이 조금 더 걸리는 정도다. 공항철도가 워낙 빠르니, 특별히 계획 세우지 않고 마실 나가는 느낌으로 가도 괜찮을 정도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기점이기도 해서, 자전거 라이더에게는 조금 특별하게 와닿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곳에선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는 없으니, 그쪽을 기대한다면 조금 더 가서 을왕리쯤으로 가는 게 좋겠다.

2020.06.05. 경인아라뱃길.

 

2020.06.07. 갈매기가 서해상을 날고 있다.

 

2020.06.07. 갯벌과 영종대교와 갈매기.

정동진이 일출로 유명하다면, 정서진은 일몰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야가 조금 애매해서, 흔히 ‘오메가’라고 불리는, 해가 수평선에 닿는 순간을 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는 가운데 갯벌을 누비는 새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7일에도 삼각대와 망원렌즈를 동반한 탐조객을 다수 볼 수 있었다. 다만 바닷가를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프레임이 울타리 위로 올라가거나 살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거나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요즘 이렇게 새를 좀 찍다 보니 장망원 렌즈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뇌에 힘 팍 주고 참아야겠지.

2020.06.07. 먹이를 찾는 백로.

 

2020.06.07. 검은머리물떼새.

 

2020.06.07. 왜가리가 이륙 중이다.

기분이 싱숭생숭할 땐 역시 물가가 좋다. 수면을 보면, 그게 잔잔하든 거칠든, 어쨌든 조금 시원한 마음이 든다. 바람이 시원하면 더 좋다. 그냥 눈을 감고서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근심이 조금 풍화되는 것이다. 기분이 그렇다는 얘기지, 월요일은 찾아오고 우울의 근본을 도려낼 수도 없다. 그게 뭐 쉽게 되나. 그렇다고 대증요법이라도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으니까. 정령사 샬롯 그레이스가 말했듯, 목숨만 붙어 있으면 뭐가 어떻게든 되긴 되니까.

이날은 수평선 부근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하여간 뿌연 것이 잔뜩 끼어서, 해가 바닥까지 쭉 내려오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날씨란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그래도 애초 보려고 했던, 해 떨어지는 모습을 봤으니까, 됐다. 그냥, 그렇다.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 세트와 닭강정을 샀다.

2020.06.07. 석양이 진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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