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아마도. @서울 선유도
‘심판의 날’이 곧 찾아온다면, 그 전조는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서울 선유도에 들렀다. 대체 한강 물이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평소엔 고여있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이날은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폭은 한참 넓어졌다. 둔치를 전부 집어삼킨 탓이다. 한강공원의 나무들은 머리만 물 위로 겨우 내놓고 있었다. 중부권에서 빗발이 약해져 물이 조금 빠졌다는 상태가 이 정도였다. 한강도 하상계수가 큰 강이니 둔치쯤은 물이 불면 잠길 수 있는 지대라고 쳐도, 강변의 주요 도로가 통제와 통행 재개를 반복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7월 17일부터 8월 11일까지 서울에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12일이 되어서야 겨우 파란 하늘 한 조각을 봤다.
다른 지역이야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이 가장 먼저 피해를 봤고, 이어 대전과 충청도가 물폭탄을 뒤집어썼으며, 수도권과 강원도가 물방망이를 얻어맞았다가, 이번엔 전라도가 난리를 겪었다. 세상에, 온갖 자연재해가 지나가도 큰 피해 없이 버티던, 그래서 농담 삼아 ‘온전한(全) 곳을 완전한(完) 곳이 감싸서 재해가 없다’고들 하던 전주의 그런 몰골은 난생처음 봤다. 설마 잠기겠어, 하던 곳들이 죄다 누런 흙탕물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남원에서는 섬진강 제방이 무너졌다지, 화개장터가 아수라장이 됐다지. 8월 11일까지 사망·실종자 42명, 이재민은 7500여명이 나왔다.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흔한 말로 ‘머리로만 이해하는’ 꼴이었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가 녹아도, 남극의 빙산이 쪼개져도 나한테 무슨 직접적인 영향이 오는 건 아니니까. 러시안 룰렛을 돌리면, 실탄이 나올 때까지는 어쨌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한 번은 실탄이 걸리게 마련이고, 그게 지금이다. 기후변화의 임계점에 이미 다다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더 시간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간절함이 정책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또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도 힘든데, 이미 배출된 탄소는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올해 유독 기후위기에 따른 이상현상이 집중되는 느낌이다. 1~2월은 눈도 오는 둥 마는 둥 했던,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게 전조였다.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을 겪으며 죽었어야 할 외래 병해충들이 너무 많이 살아남아 난리를 일으켰다. 그 무렵 남반구 호주에서는 역대급 산불이 타올랐다. 5월엔 러시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대량의 경유가 유출됐다. 아프리카 동부부터 서남아시아, 남아시아까지 덮친 사막메뚜기떼 대발생도 기후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한다. 아직 8월이다. 9월, 10월, 11월, 12월이 남았다. 내년은 또 어떨지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여전히 날뛰고 있다. 아직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데,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보고되지 않은 변종이 3가지 발견됐다. 마스크를 언제 벗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이 온통 불확실성이다.
세상에는 알고도 못 막는 것이 많다. 배가 아플 것을 알면서도 마라샹궈를 먹고, 몸이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누워만 있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질 것을 알면서도 밤늦게까지 인리 수복을 위한 대장정이나 갈루스 제국의 야욕을 꺾기 위한 전진을 그만두지 못하고, 나중에 바쁘고 정신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일을 미룬다. 기후위기에 따른 파멸은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든 탄소발자국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일관된 실천을 지속하는 것은 어렵다. 쇠고기와 블랙타이거새우를 가능한 한 먹지 않는 것도 작은 실천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 고양이가 사는 유일한 행성인데, 더 망가뜨리지는 말아야지.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실천’이라는 게 개개인 수준에만 머문다면 큰 변화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결국은 정치고 정책이다. 큰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삶의 구조, 사회의 구조도 크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기후 악당‘ 한국의 대전환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시 매미가 운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