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2월 중순, 새해는 이제 시작이다 @서울 응봉산

신년호, 그러니까 1월 1일 자 신문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게 새해 지지에 해당하는 동물과 그 동물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올해는 신축년이고 ‘축’에 해당하는 동물은 소니까 자연 소에 관한 기사가 비중있게 다뤄졌다. 소라는 동물이 어떤 동물인가 설명하는 기사부터 해서 특별한 소 이야기, 소와 관련된 지명, 소띠 운세, 소띠 사람들의 새해 각오, 뭐 이런 것들.

천간지지는 음력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실제 신축년이 온 것은 음력 1월 1일, 양력으로 2월 12일이었다. 그러니 신년호 기획기사들은 엄밀히는 지나치게 이른 기사다. 소 관련 기획기사들은 신년호 특집이 아니라 설 특집으로 들어갔어야 적확한 것이 된다. 물론 이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한 해의 정의와 해가 바뀌는 기점은 어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한 약속에 따른 것이고, 그 약속도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니까.

경자년 마지막 날, 그러니까 ‘까치설날‘에 응봉산에 올랐다. 봄이면 개나리가 만개해 온갖 카메라의 렌즈가 향하는 곳. 카카오TV에서 방영한 <밤을 걷는 밤>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것이 생각나 대충 찾아갔다. 높이(해발 약 81m)로 따지면 ‘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곳이지만, 오르는 길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그냥 ‘산책’하는 마음으로 찾아가면 당황하게 된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2021.02.11. 서울 응봉산 오르는 길.

왼쪽으로는 쭉 중랑천과 함께 절벽 아래 경의중앙선 철길 모습이 보인다. 그 반대편엔 나무와 덤불이 번갈아 나타난다. 그 속에서 박새나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들이 쉴 새 없이 떠든다. 다만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덤불 어딘가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며 기다릴 만큼의 인내심은 없으니 그냥 전진한다.

2021.02.11. 붉은머리오목눈이. 사진에 잡힌 모습이 흐릿하지만, 그 자리에서 이 이상을 포착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2021.02.11. 박새.

팔각정까지 오르면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남쪽과 동쪽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아니다. 사실 한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경치가 워낙 탁 트여서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180도는 돌려야 겨우 그 모습을 다 담을 수 있다. 이날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2021.02.11.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서울 동부.

 

2021.02.11. 서울 응봉산에서.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희미하게 보인다.

 

2021.02.11.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서울 서부.

 

2021.02.11. 서울 응봉산 서쪽.

미세먼지가 만들어낸 그 안개 비슷한 것을 뚫고 동쪽으론 롯데월드타워와 잠실 주경기장이 보였다. 원래 롯데월드타워에서 불꽃축제를 하면 이곳 응봉산이 관람 명소 중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서쪽으론 멀리 여의도와 남산이, 그 앞으로 아파트들이 이룬 숲이, 그 앞엔 아직 건설 중인 까치둥지가 보였다. 그리고 팔각정 옆 숲에선 온갖 새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원경부터 근경까지 버릴 것 하나 없다.

2021.02.11. 서울 응봉산 팔각정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박새.

 

2021.02.11.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꺾으며 뭐라 뭐라 하던 직박구리.

어렸을 땐 해가 바뀔 때마다 ‘새해 다짐’ 비슷한 것을 했던 기억이 난다. 순전한 내 의지는 아니고, 방학 숙제로 일기를 쓸 때(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는 건 엄연한 인권침해로, 이미 2005년에 국가인권위가 이 같은 판단을 내놨다) 별 생각 없이 그런 것을 적었던 것 같다. 한참 지난 일이라 기억은 안 나지만, 어쩌면 글감을 아껴놓으려고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땐 일기장 한 페이지씩 채워나가려고 ‘일기’도 아닌 것을 써재끼곤 했으니까 그럴 만하다.

2021.02.11. 서울 응봉산 팔각정.

그땐 해는 맨날 뜨고 지는데 뭐 특별할 게 있냐던 어른들의 말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그 어른들 나이에 근접한 지금 보면 맞는 말이다. 그냥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계절이 반복되는 주기를 계산해 해를 나누고, 그렇게 정해진 임의의 숫자가 바뀌는 것이다. 왜 굳이 한겨울에 해가 바뀌는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기준은 사람들이 만들어가기 나름이니까. 그렇게 생각은 한다.

머리에 든 생각이야 그렇다 해도 굳이굳이 양력 음력 1월 1일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21년’과 ‘신축년’은 더욱더 그렇다. 그냥, 지긋지긋한 나날이었으니까. ‘비정상’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시절이었으니까. 뭐 하나 잘된 것도 이룬 것도 없이 실망과 좌절만 거듭했던 그런 해였으니까.

2021.02.11. 둥지를 지으며 나뭇가지 사이를 통통 뛰어다니던 까치.

내려오면서 지는 해와 까치둥지가 겹쳐지는 것을 봤다. 섣달그믐, ‘까치설날’을 끝으로 묵은해를 완전히 떠내려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하산했다. 한국인의 ‘새해’는 설날 연휴까지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러니까 한 달 넘는 시간이 대충 지나갔어도 이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면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렇다고 없던 새해 계획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뭐가 갑자기 확 바뀌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고, 그냥, 뭐라도 되긴 됐으면… 하는, 그런 느낌.

그리고 다음 날 닭 육수로 떡국을 끓였다. 나이는 그만 먹고 싶지만.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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