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된 오래, 유효기간은 n년 /w 소니 QX10
청계천에 백로가 산다. 점심때면 쇠백로 한 마리와 왜가리 한 마리가 물길 시작지점 가까이, 그러니까 소라기둥 있는 광장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곤 한다. 물론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찾아가면 매우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다.
청계천에 사는 큰 새들은 왠지 사람 시선을 즐기는 듯하다. 거의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까지 접근해서는 나 좀 보라는 듯 서서 깃털을 다듬다가, 물살이 사냥 시범을 보이다가, 물가를 따라 걷다가, 뭐 항상 이런 식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나고 자라서 사람이 별로 낯설지 않은 걸까? 그러고 보면 이 새들이 나고 자라는 동안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노는 걸 보면. 잃어버렸던 인류애를 의외의 곳에서 재발견한다.
멋지고 귀여운 새를 보면 사진으로 그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 늘 ‘주머니에 넣어서 갖고 다닐 만한, 적당히 괜찮은 성능의 카메라’를 갈구하지만 아직 궁극의 해답(’42’는 아니다)을 얻지 못한 나는, 집에 많은 카메라를 쌓아둔 채 역시 또 그런 카메라를 찾아 떠돌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청계천 산책은 말 그대로 ‘점심시간 산책’일 뿐인데, 아무래도 그때마다 커다란(물론 옛날-SLR 시절-에 비하면야 많이 작아진 것이긴 하나)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나가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으면서 무겁고 버겁다.
소니 QX10은 지금 봐도 생소한 모습의 카메라다. 왜냐하면 이러한 유형의 카메라가 많지 않기 때문. 소니 QX 시리즈 카메라가 후계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QX10은 1/2.3인치 센서와 25-250mm(135판 환산 기준) 렌즈를 갖췄다. 함께 발매된 QX100은 이보다는 조금 큰 1인치 센서와 28-100mm(135판 환산 기준) 렌즈 구성이고, 이쪽이 조금 더 크고 무겁다. 가격도 이쪽이 조금 더 비싸다. 둘 모두 렌즈 경통과 센서 부분만 한 덩어리로 묶어 포장한 듯한 형태로, 찍은 사진을 확인할 화면은 물론이고 조작계도 줌 레버와 셔터 버튼만 남기고 죄다 생략된,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기종 중에서 QX10을 택한 것은 QX10쪽이 더 작고 가볍기 때문. 또 어차피 ‘폰카의 확장판’ 느낌으로 쓸 요량이라면 화질보다는 고배율 줌이 더 유용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2.3인치 는 이른바 ‘똑딱이’ 카메라, 그 가운데서도 보급형 기종에 자주 쓰인 규격이다. ‘독립된 기기로서의 카메라’에 쓰이는 센서 중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한다. 작다곤 해도 보통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센서보다는 크다. 내가 쓰고 있는 애플 아이폰SE 2세대 후면카메라에 들어가는 센서는 1/3인치 규격이고, ‘폰카’는 일부 기종을 제외하면 대체로 이 정도 수준의 센서를 갖고 있다. 다만 디지털 부품이라는 게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변수로, 2013년에 나온 카메라의 센서가 요즘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낼지는 조금 생각해 볼 부분이긴 했다.
QX10은 무선 인터넷(와이파이) 기능을 통해 휴대폰과 연결된다. 기기 고유의 와이파이 설정을 휴대폰에서 맞춰 연결하고 Imaging Edge Mobile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면 된다. QX10을 켜면 자동으로 와이파이 신호를 생성한다. 무선 연결이므로 휴대폰에 기기를 굳이 장착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무선 연결이라는 부분이 첫 번째 단점이 되고 말았다. 이 무선 연결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도심에는 사람도 많고 휴대전화도 많고 기지국도 많고 와이파이 AP도 많다. 자연히 간섭에 의해 반응속도와 연결 안정성이 떨어진다. 촬영에 필요한 인터페이스의 대부분을 휴대폰 화면으로 처리하는 이 기기의 특성상 반응속도와 연결 안정성 문제는 당연히 치명적이다. 카메라 본체에 줌 레버와 셔터 버튼이 있어서 망정이지, 이것마저 없었으면 정말 쓰기 힘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앱에 있다. 앱 자체가 너무 엉성하고 불편하다. 우선 제어할 수 있는 항목이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노출모드는 자동 또는 프로그램 모드만 사용할 수 있다. 감도 ISO값만 프로그램 모드에서 조절할 수 있고, 조리갯값이나 셔터속도는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줌 기능을 조작하는 부분은 그냥 없다고 생각하고 본체의 레버를 쓰는 게 낫다. 셔터도 마찬가지. 그러니 휴대폰 화면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구도를 보면서 초점 위치를 손가락으로 찍어주는 것 말곤 할 게 없다.
그렇다면 결과물은 어떨까? 앞서 세 가지 사실을 언급했다. 첫째는 센서가 1/2.3인치 크기에 불과하다는 사실. 둘째는 2013년에 만들어진, 비교적 오래된 기종이라는 사실. 그리고 셋째는 렌즈가 광학 10배 줌, 그러니까 이른바 ‘슈퍼 줌’에 해당하는 렌즈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애초 화질에 큰 기대를 걸면 안 되는 기종이다. 이미지 센서 설계 기술이나 소프트웨어적 보정 기술 같은 것들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즘이라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가정일 뿐이고.
일단 해상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약 1800만 화소 정도로 기록할 수 있으니 화소수가 부족한 편은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광학계 자체에서 비롯된 한계겠지만, 어쩌면 JPG 파일 압축률의 문제일 가능성도 있겠다. 압축률 문제라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 QX10을 조작할 수 있는 앱에서는 오직 화소수와 종횡비(4:3 또는 16:9) 설정만 가능하고 화질 설정을 바꿀 수 없다. 펌웨어를 건드린다거나 하는 식의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일반적인 사용자가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로, 고감도 성능이 부실하다. 프로그램 모드에서 사용자가 설정할 수 있는 ISO값이 1600까지인데, 이게 F/3.3-5.9의 평이한 조리갯값, 손떨림보정 기능의 부재와 맞물려 조금이라도 어두운 곳에서는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기가 어렵다. F/3.3, ISO 1600에 두고 손떨림보정 없이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어두운 카페나 식당 안에서는 쓰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밝은 날 야외에서는 그런 단점이 부각되지 않으므로 쓸 만하다.(그렇지만… 밝은 날 야외에서도 쓰기 어려운 카메라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단점’만’ 있을 리는 없다.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렌즈의 화각대. 요즘 나오는 휴대폰 중 고급형 모델은 광각 및 망원 각각의 화각에 대응하는 카메라 모듈을 따로 달고 나오지만, 구형 휴대폰이나 아이폰SE2 같은 보급형 모델은 135판 환산 기준 30~40mm 수준의 표준 또는 준광각 화각의 렌즈 하나만 쓸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하면, 135판 환산 기준 25mm부터 시작하는 화각은 폰카보다 훨씬 넓게 찍을 수 있으니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250mm 화각의 망원 대역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망원 영역은 ‘항상 갖고다니기엔 거추장스럽지만 손에 없으면 꼭 쓸 일이 한 번쯤 생기는’ 그런 화각대기 때문에, 갖고 다니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서 ‘일단 찍히기는 하는’ 망원 대응 카메라가 있다는 건 확실히 장점일 수밖에 없다.
AF 기능이나 반응속도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할 수준은 못 된다. 특히 연속촬영은 그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촬영 결과물을 바로 휴대폰 화면으로 확인하는 기능을 꺼놓으면 약간 나아진다. DJI의 ‘오큐싱크’ 같은 고속 무선통신 체계가 있다면 또 모를까, 그냥 와이파이 신호만 가지고는 원활한 통신이 어렵다. 이 부분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조금은 나을 듯도 하다. 이를테면, 유선 연결을 지원해 준다거나.
요약하면 ‘당시로선 최선에 가까웠던’ 기종이었음엔 틀림없다. 다만 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휴대폰 카메라가 지나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을 뿐이다. 시대의 흐름이 그런 것을 어쩔 도리가 있나. ‘디카’를 들고 다니기 버거웠던 사람이 QX10이라고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괴작’이었을지라도, 아무 후계자도 만들지 못하고 맥이 끊겨버린 것은 대단히 아쉽다. ‘대 폰카 시대’라고 해서 폰카가 최고인 것은 아니다. 반드시 제대로 된 카메라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 때 ‘아무리 모자라도 일단 카메라는 카메라’인, 갖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는, 그런 카메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6월 23일에도 청계천 청계광장 바로 아래엔 쇠백로가 찾아왔다. 이날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천변 산책로 출입이 제한된 날. 그런 가운데, 쇠백로는 사람 없는 청계천을 독무대처럼 누비며 놀았다. 출퇴근용 가방 속에 마침 QX10이 있었다. 이걸로라도 담아 본다. 화질이 어떻든, 이 장면을 ‘찍지 않으면’ 나는 어떤 결과물도 남기지 못하는 거니까. QX10은 취재용 수첩이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