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09. 서울식물원과 뿌연 렌즈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롱패딩점퍼를 입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물론 후회를 한들 달리 도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깥 기온이 섭씨 영하 오륙 도 정도였으니, 두꺼운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호수며 실개천이며 죄다 꽝꽝 얼어있었으니.
이런 날이었지만, 온실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특히 열대관은 외투를 벗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웠’다. 서울식물원 온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열대관이고, 또 하나는 지중해관이다. 열대관은 여름 날씨에, 지중해관은 가을 날씨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갑작스런 기온 변화에 당황한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카메라 렌즈와 안경이 김이 서려서 제 기능을 하질 못했고, 휴대폰 디스플레이에는 물방울이 맺혀서 제대로 터치가 되지 않았다. 온실 안에서 더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온실에서 나와 건물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기로 했다.
30여 분을 뱅뱅 돌며 기다렸을까? 그럭저럭 렌즈의 김이 걷히고 상이 선명해졌다. 그제서야 온실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따뜻하고 습하고 공기가 맑아서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곳을 찾은 이가 너무 많았어서, 사람에 치이는 신세이기는 했으나.
중간에 수련을 담기 위해 망원렌즈로 갈아 끼웠다. 앗 이런, 가방 속에 있던 망원렌즈는 김이 서린 채로 있었다. 또 꺼내놓고 30분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그냥 사진을 포기하고 말자, 하며 다시 표준렌즈를 끼웠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