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뭘 했다고 또 연말연시(올해의 사진 15선)

그러게, 또 연말이다. 분명 며칠 전에 연초였던 것 같은데, 눈 떠보니 12월 마지막 날인 것이다. 내 시간은 점점 빨리 지나가는데 나는 점점 더 기력이 없어지니, 하루하루의 밀도가 잡을 수 없이 희박해져 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돼 가는데도 올해 또한 여행 한 번 즐긴 게 없고, 직장을 옮긴 것 정도를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무슨 이벤트 같은 것도 딱히 없다. 그건 내 컴퓨터의 사진 폴더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냥 목숨만 부지하고 출퇴근만 계속하는 그런 몸이 된 것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세상은 매일이 스릴 쇼크 서스펜스의 연속이다. 한 해가 너무 길어서 큰일이다. 20세기 후반부를 쥐락펴락했던 고르바초프, 엘리자베스 2세, 장쩌민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났고, 영원히 “전국~ 노래자랑~”을 외칠 것 같았던 송해 선생님도 떠났으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냐 싶은 테러로 아베 또한 떠났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 걷던 노옥희 울산교육감이 갑작스럽게 별세하기도 했다.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됐고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궤도선)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 아르테미스에 오리온이 탑재된 채 달을 돌고 돌아오는 이야기는 상당히 페그오적으로 흥미롭다.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 열렸고, 김연경이 국내 리그에 돌아왔고,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됐고,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했다.

연초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나더니 봄엔 거대한 산불이 원자력발전소 코앞까지 태우고, 여름에는 기존에 경험해 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수해가 일어나더니, 가을엔 이태원에서, 무슨 꽉 막힌 실내도 아니고 그냥 ‘길거리’에서 무려 158명이 ‘압사’를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트라우마와 2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가 여기서 더 늘었다. 아직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데, 책임은커녕 국정조사에 공공연히 훼방을 놓고 있네.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실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 중 ‘스스로 책임을 통감한다’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나올 것이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는 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일어나 또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것도 순간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갖다 판 결과물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었다. 이 두 번의 전국 단위 선거가 일으킨 후폭풍만 해도, 아마 이것만으로도 몇 년 치 사건은 다 일어났다 싶을 정도다. 여기서 파생된 이런저런 사건들은, 내가 이것을 정말 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있을 것인가-압수수색 뭐 그런 문제가 아니고 순전히 물리적으로-, 가/불가부터 논해야 하는 지경이다. 추적단 불꽃의 ‘불’ 박지현 씨의 정치 데뷔와 백래시,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논쟁, 경찰국 문제,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거대한 모럴해저드(라기보단 그냥 모럴에 ‘하자’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뭐 이런 것들은 각각의 주제만으로도 삼일 밤낮을 매달려 키보드를 두드려야 할 성격의 일들일 게다.

아무튼 그렇게 또 한 해가 갔다. 중꺾마라고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마음이 한두 번 꺾이는 건 괜찮다. 먼저 누워버려서 꺾일 일조차 없었던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너무 꺾이지 않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몇 번 꺾여도 갈 방향만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 도망치면 하나, 나아가면 둘이니까. 그렇게 보면 그래도 내 2022년은 맨 첫 단락에 적은 느낌만큼 그렇게 최악이지만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근래 들어 어느 해보다도 굵직한 성취를 많이 해냈다고도 생각한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올해 여실히 드러난 신체적 문제들이 내년에는 더 나빠지지 않고 가능하다면 좋아지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뭐 그런 정도다.

올해도 올해의 사진 몇 컷을 추렸다. 내년엔 무기력을 극복하고, 또는 이 무기력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이른바 갓생… 아니 갓생까지는 아니고 대충 중박쯤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마음먹어볼까 한다. 마음만 먹는 것이다. 벌써 배부르다. 유난히 컷 수가 적었던 해였던 탓에 사진을 월별로 추리는 건 아무래도 무리여서 계절별로만 묶어봤다.

겨울

서울 청계광장에 눈이 내리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행인 한 명이 검은 우산을 쓰고 소라기둥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2.01.19. 서울 청계광장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행인이 우산을 쓰고 지나가고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마리가 마른 덤불에 옆으로 매달려 있다. 몸을 비틀어 덤불에 남아 있을 먹이를 찾고 있다.
2022.01.22. 서울 안양천변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마리가 마른 덤불에 옆으로 매달린 채 먹이를 찾고 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전주 삼천에서 백로 한 마리가 날갯짓하고 있다. 눈송이가 매우 크고 많아서 앞이 잘 분간되지 않는다.
2022.02.05. 전주 삼천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노란 산수유꽃이 몇 송이 피었다. 벌 한 마리가 그 중 하나에 거꾸로 매달린 채 꿀을 찾고 있다.
2022.03.27. 노란 산수유꽃에 벌 한 마리가 매달린 채 꿀을 찾고 있다.
서울 창덕궁에서 한 상춘객이 휴대폰 카메라로 홍매화 사진을 찍고 있다. 꽃은 짙은 분홍빛이고, 배경엔 소나무와 벽돌담이 있다.
2022.04.03. 서울 창덕궁에서 한 상춘객이 휴대폰 카메라로 홍매화 사진을 찍고 있다.
벚꽃이 만개했다. 벚나무 가지에 참새가 앉아 꽃 한 송이를 물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벚꽃들에 몸통이 가려진 참새가 엉덩이를 내놓고 있다.
2022.04.09. 서울 불광천변 벚꽃이 만개했다. 벚나무 가지에 참새가 앉아 꽃 한 송이를 물고 있다.
불광천 상류의 물 떨어지는 곳(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으며 계단 같은 형태다)에서 아기 오리 한 마리가 급류(?)를 헤쳐 지나가고 있다.
2022.05.14. 서울 불광천 상류의 물 떨어지는 곳에서 아기 오리 한 마리가 급류(?)를 헤쳐 지나가고 있다.

여름

급경사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림자가 길게 아래쪽으로 떨어져 있다.
2022.06.06. 서울 불광천변의 급경사 콘크리트 구조물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기 오리 한 마리. 뛰어내릴 결심을 하는 것일까?
등이 노랗고 배쪽은 하얀 고양이. 목제 울타리 너머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고 있다. 울타리는 붉은 색이다.
2022.07.15. 서울 창경궁에서 만난 고양이. 목제 울타리 너머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고 있다.

가을

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파묻고 뭔가를 하고 있다. 아직 배경의 나뭇잎들은 푸른 빛이다.
2022.09.17. 서울 비단산에서 마주친 청설모. 나뭇가지 위에서 고개를 파묻고 뭔가를 하고 있다.
한강 서강대교 인근에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스 두 줄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물을 채우는 산림청 헬기.
2022.11.05. 한강 서강대교 인근에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을 채우는 산림청 헬기. 이날 북한산에서 산불이 났었다.
개기월식. 빨갛고 어둡게 변한 달.
2022.11.08. 개기월식. 빨갛고 어둡게 변한 달.
영롱하게 물든 단풍. 위쪽은 노랗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빨갛다. 햇빛이 역광으로 비친다.
2022.11.19. 서울 창경궁의 단풍.

다시 겨울

오른쪽에 출렁다리가 화면 위아래로 놓여 있고, 왼쪽엔 옥정호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
2022.12.10. 오른쪽에 출렁다리가 화면 위아래로 놓여 있고, 왼쪽엔 옥정호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 여긴 전부 호수였던 곳일 터다.
쇠박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말라 비틀어진 노란 꽃(개나리로 보인다)에서 먹이를 찾으려 하고 있다.
2022.12.21. 쇠박새 한 마리가 말라 비틀어진 개나리꽃에서 먹이를 찾으려 하고 있다. 올해는 늦가을~초겨울에 이상고온 현상이 일어나 개나리 꽃이 피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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