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현재, 삶은 미래. @조계사
이번 코로나19(COVID-19) 확산 과정에서 ‘종교’의 영향을 빼놓을 수는 없다. 2월 하순의 폭발적인 확산세는 신천지 대구교회에서의 예배활동이 결정적이었고, 3월 산발적 집단감염의 이면엔 현장예배를 강행한 일부 개신교회의 문제가 있었다. 이란에서는 무슬림들의 성지 순례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감염병이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세계는 유례없는 종교행사 셧다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없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홀로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모습에서는 숙연함이 느껴졌다. 한국전쟁 중에도 계속됐다던 천주교 미사가 중단됐고, 불교계도 법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다들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기야, 온 국토가 유린당하던 여몽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팔만대장경을 장장 15년에 걸쳐 새겼던 역사도 있으니.
매년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불교계 최대의 기념일인 석가탄신일(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치러진다. 절마다 색색깔의 연등을 공중에 매다는데, 그 아래 서서 햇볕을 등에 짊어진 연등의 빛깔을 보는 게 이 무렵의 낙이었다. 가로수를 기둥 삼아 줄줄이 걸린 연등도 볼 만했고, 청계천에 설치되는 온갖 종류의 등도 이즈음의 호사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월 초파일까진 코로난지 귀로난지 그 몹쓸 바이러스도 잡히겄지,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그건 물론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불교계는 광화문 연등 점등식과 연등회 등을 전부 연기하기로 했다. 석가탄신일에 치러지던 봉축법요식도 한 달 늦춰 5월 30일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올해가 윤년이라 5월 30일이 윤 4월 8일이 된다고 한다. 어쨌든 사월 초파일이긴 한 것이다.
지난 4월 25일 찾은 서울 조계사는 비교적 한산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방문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주문 앞에서부터 ‘마스크 착용’과 ‘발열 확인’ 등 각종 감염병 확산 방지 수칙을 적어놓았으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은 들어서면서도 눈치가 보일 만도 했겠다.
대웅전 앞에서는 관불의식이 진행 중이었고, 조계사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커다란 회화나무 주변에는 의자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돼 있었다. ‘이동 금지’라는 팻말도 보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이라고 했다.
존재는 ‘현재’에 있지만, 삶은 ‘미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이 밝을 예정이라면 참고 견딜 만할 것이고, 오늘이 아무리 행복해도 내일이 암울할 예정이라면 채 그 행복을 맛보기도 전에 불안해질 것이다.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신앙을 찾는 심리는 알 것도 같다. 천국이든 극락이든 뭐든, 어쨌든 ‘지금보다 나은 곳’의 존재가 예약돼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놓일까. 그 희망 하나로 사람이 버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선한 영향력’ 아닐까. 약사여래의 힘을 빌려 코로나19를 퇴치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연등을 통과한 희미한 빛과 연등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바닥에 무늬를 그렸다. 윤회를 믿지 않더라도,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이미 상당히 위안이 된다.
천상과 천하에 我가 있다. ‘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함께 이르는 ‘나’로서.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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