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2021년을 보내며-제정신으로 살기가 이렇게 힘들지만

2021.12.18. 눈 내리는 서울 불광천.

지난해 말미에, 그 해를 돌아보며 ‘거대한 농담 같았던 해’라고 쓴 적이 있다. 2020년은 정말로 ‘농담 같은’ 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문을 열어서 무슨 들어본 적 없는 조합의 한국어로 된 온갖 정치뉴스(무슨 180석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는 얘기라든지, 그랬는데 얼마 안 가 서울과 부산의 시장 자리가 시장의 성범죄로 인해 공석이 됐다든지, 현직 검찰 총수가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린다든지 등등)가 나오질 않나, 사상 최장의 장마를 비롯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 규모로 일어나질 않나, 하여간 혼이 비정상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다시 한 해 지나서 보니, 어쩌면, 농담도 진지하게 반복하면 그냥 진담이 되는 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상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인 상태를 ‘정상’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게 아니고, ‘비정상’인 상태는 두고서 이름표만 ‘정상’으로 바꿔 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뉴 노멀’인 셈. 아무래도 ‘이상한’ 쪽은 세상이 아니라 나인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되고 나면 이젠 무슨 방법이 없다.

2021.12.07. 서울 불광천에서 해오라기 유조가 미꾸라지로 추정되는 물살이를 잡아먹고 있다.

올해는 세 번째 퇴사와 네 번째 입사를 했다. 소득은 약간 늘었다. 삶의 질은 그래도 종합적으로 볼 때 조금 나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자리를 옮기던 딱 그 무렵에 그간 한참 열심히 쓰던 브런치 계정을 개인적인 사유로 지우고 다시 블로그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꼭지, 그러니까 보름에 한 건 발행을 목표로 했지만 계획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5월부터 12월 이 글 발행 직전까지 15건을 썼으니까 연간 평균으로 따지면 목표에 아주 미달하지는 않은 듯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물론 한 해 내내 시국이 엄중했던 탓이다. 가까운 산책 코스는 종종 걸었으니 여행 못 간 게 막 엄청나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벗어나서 기억에 담아 둔 풍경이 몇 장면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책도 많이 읽진 못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직원에게 원하는 책을 일정 한도 내에서 사주는 복지 혜택을 줘서 의무감(?)에라도 읽은 것이 몇 권 된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려고 읽는 것이다. 충분히 많은 책을 살 수 있다면 충분히 많은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뜬금없긴 하지만 코딩 공부를 하겠다며 파이썬 입문서를 붙들고 잠깐 명령어를 두드려본 것도 올해의 경험 중 하나다. 하계올림픽을 통해 다시 배구의 재미를 깨닫고 한 주에 두어 경기는 중계방송을 보게 된 것도 있구나.

2021.10.12. 이런 나들이(?)로 여행을 대신했다.

사진은, 컷수는 늘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을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느냐, 그런 것이 문제다. 풍경사진의 비중은 줄고 망원렌즈로 동물들을 찍은 사진이 대폭 늘었다. 요즘은 아예 망원렌즈를 기본으로 들고 다닐 정도니 말 다 한 것이다. 특히 그간 보지 못했거나 봤더라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간 동물들을 여럿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 올해 생긴 변화다. 올해는 까치가 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봤고, 매화 꿀을 따먹는 직박구리를 봤고, 전선 위에 앉은 새홀리기를 봤으며, 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봤다. 겨울에는 불광천에 쇠오리들이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2021.02.06.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까치.
2021.04.14. 서서울호수공원에서 만난 어치.
2021.06.05. 서울 불광천변에서 만난 새홀리기.
2021.10.12. 인천 정서진에서 본 저어새.
2021.12.07. 서울 불광천에서 만난 쇠오리.
2021.12.25. 서울 불광천의 백할미새.

그런 한편으로, 올해는, 연말인데 연말 느낌이 나질 않는다. 대체 이 기분은 뭐지, 했는데, 그냥 하루하루 사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그래서 매일이 똑같은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들려오는 뉴스가 아무리 쇼킹해도, 그런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청산되지 못하는 과거를 발목에 덕지덕지 붙이고서, 그래도 곧 해가 바뀌고 이제 낮의 길이가 길어질 테니까 힘 내보자, 무슨 이런 자기최면을 걸어보는 것도 이제는 사치가 된 것 같다. 다들 “그게 현실이야” 하는데, 동의는 안 되지만, 내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대세에 딱히 영향이 없다. 그래서 2021년 12월 말, 여전히 이 나라에는 차별금지법은 없고, 반면 국정농단과 뇌물수수 등을 저지른 박근혜 씨는 사면 대상이 됐나보다.

2021.09.15. 서울 광화문 앞.

아무래도 제정신 유지하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 아무튼, 그 고약한 2021년을 보내며, 그래도 올해 이 사진들은 건졌다 할 만한 컷들을 추려 봤다. 사진을 많이 찍은 달도 있고 거의 못 찍은 달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두 달 모두 기록될 수 있게 안배했다. 이 가운데는 블로그에 올린 사진도 있고 아닌 사진도 있다. 본문에 넣은 사진은 뺐다.

희망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셔터는 움직인다.

1월

2021.01.07. 눈이 내린 서울, 돈의문 인근 공원에서 만난 고양이들.
2021.01.09. 서울 불광천이 한파로 얼어붙은 가운데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다.

2월

2021.02.11. “응봉마운틴 까치 점핑”
2021.02.13. 경기 고양 서오릉에서 곤줄박이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3월

2021.03.21. 서울 청계천 매화거리에서 직박구리 한 마리가 매화 꿀을 따고 있다.

4월

2021.04.05. 봄꽃이 만개한 서울 남산.
2021.04.25. 직박구리 두 마리의 직칼코마니.

5월

2021.05.13. 서울 청계천에서 사냥 중인 왜가리.
2021.05.14. 우정국 앞 연등 터널에 달린 미얀마 민주화 항쟁 응원 메시지.

6월

2021.06.20. 서울 불광천 오리 가족. 올해는 새끼 오리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7월

2021.07.16. 퇴근길 하늘.
2021.07.17. 소나기.
2021.07.26. 너무 더워서 숨을 헐떡이는 어린 직박구리들.

8월

2021.08.14. 경기 과천 서울동물원. 사슴들에게 시비를 거는 까마귀.
2021.08.16. 무궁화와 호박벌 궁둥이.

9월

2021.09.10. 서울 광화문 네거리.

10월

2021.10.17. 서울 창경궁 춘당지에서 원앙 한 마리가 날갯짓하고 있다.

11월

2021.11.06. 서울 종묘.
2021.11.12. 서울 광화문 인근.
2021.11.20. 서울 창경궁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감을 입에 문 채 나무를 타고 있다.

12월

2021.12.18. 눈 내리는 서울 불광천에서 오리 한 쌍이 궁둥이를 하늘로 향한 채 수면 아래 먹이를 찾고 있다.
2021.12.25. 서울 불광천. 백할미새 한 마리가 도약하고 있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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