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너를 봤다, 까치야 @서울 일원
대학생 때, 과제를 할부로 하는 습관이 있었다. 제출해야 하는 날까지 하루에 해야 할 양을 계산해서 매일 조금씩 해나가는 것이다. 영어 원서를 읽고 번역해야 한다면 하루에 몇 페이지씩, 무슨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면 하루에 슬라이드 몇 개, 디자인과 스크립트 넣는 시간은 별도, 뭐 이런 식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나를 천천히 피할 수 없는 마감으로 인도하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사실 그래봤자 학부생 수준. 아무리 까다로운 과제라고 해도 그 양이 일정 수준으로 정해져 있고, 규모도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별것 아니었다. 그땐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했지만, 어떤 틀을 그려놓고 투입해야 할 노력의 총량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이점이었는지. ‘할부로 과제하기’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견적을 내지 못하면 계획을 세울 수 없다.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결국 벼락치기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엔 예측 가능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았고, 많은 사회인은 어디부터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거나 그런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일을 해내야 한다.
최근 까치가 집 짓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다 보니, 일상에서 마주치는 온갖 나무란 나무는 다 쳐다보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생각해보니 그간 온갖 공원에서 통통거리며 돌아다니는 그 많은 까치들을 보면서도 그들의 생태에 대해서 궁금했던 적이 없다. 그냥 원래 거기 있는, 풍경의 일부처럼 인식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그간 그 존재조차 모르고 지냈던 수많은 까치집이, 그 아래에 떨어져 쌓인 나뭇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까치집은 주로 은행나무에 많이 있었는데, 아마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많이 심겨 있어 자연히 눈에 자주 띄기 때문일 것이다. 집의 주재료로는 벚나무의 잔가지를 선호하는 것 같다. 까치가 내는 소리가 그렇게 다양한 줄도 처음 알았다. 평소에 내는 “꺛꺛” 하는 소리 외에도 모터 돌아가는 듯한 소리나 말글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하여간 뭔가 다른 울음소리도 있다.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처음 나뭇가지를 내려놓을 때는 이게 잘 떨어진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지탱해줄 구조물 없이 완전 맨 땅에 머리 박는 셈이니까. 그런데 둥지 자리에 내려놓은 나뭇가지가 어느 정도 쌓이면, 그 나뭇가지 각각이 서로를 단단하게 잡아주게 된단다. 이렇게 되면 건축 공정에 점점 속도가 붙는다.(조승한, “가우디도 놀랄 까치집의 과학”,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329/100403945/1, 2020년 3월 30일 자)
틀이 잡힌다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동시에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내가 얼마나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지, 얼마나 인내해야 하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와 힘이 된다. 반대로 틀이 잡히지 않으면 무슨 노력을 얼마나 했든 결국 의미 있는 성과 없이 제자리만 뱅뱅 돌게 된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나뭇가지를 떨어뜨려도 좌절하지 않으려면 집의 크기와 모양에 대한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까치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동물이다.
지난 6일, 여의도 한복판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는 까치를 봤다. 신호등 기둥 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까치는 다시 도약해 키 큰 소나무 꼭대기로 향했다. 잘 보니 거기에 까치가 짓던 것으로 추정되는 둥지가 하나 있었다. 한강 변에선 까치들이 큰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큰 나무 하나에 둥지 셋, 그 옆옆 나무에 둥지 하나, 다시 그 옆옆옆 나무에 둥지 둘, 이런 식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또 어떤 나무에서는 둥지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다 계획이 있는 걸까?
한편 땅바닥에 떨어진 빵 조각을 물고 가던 어떤 까치는 돌연 뒤돌아서 우리를 향해 위협하는 자세를 취하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다시는 까치에게 깝치지 마라.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