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일년 가을, 시월을 배웅함 @서울 불광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추분이 벌써 한참 전에 지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찾아보니 이미 추석 즈음에 추분점을 지났다고 한다. 어쩐지 아무리 일찍 퇴근해도 하늘이 어둑어둑하더라니. 저녁이 없는 삶이다.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흰머리를 뽑았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생물학적으론 이미 ‘그럴’ 나이가 된 모양이다. 이렇게 나이 운운하고 있는 걸 보면 이제 확실히 ‘그럴’ 나이가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억울하지만 어쩔 것인가. ‘MZ세대’니 뭐니 마이크 독점하고 떠들어대면서 추하게 굴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을은 ‘돌아온’ 것이 아니다. 시간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다. 2020년의 10월 31일과 2021년의 10월 31일은 비슷하지만 같지 않고, 2020년 10월 31일에 한 생각과 2021년 10월 31일에 하는 생각은 같을 수 없다. 기억이라는 것도 사실은 현재의 내가 임의로 재구성해내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상황에 끼워 맞추고 새로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뭐가 됐든 ‘근거’가 되든지 ‘핑계’가 되든지 할 참이다.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하다는 게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찾은 불광천에서 백할미새를 만났다. 가을은 가을이라, 참새들이 아주 통통하게 살이(털이?) 올랐다. 벚나무 잎은 대부분 누렇고 벌겋게 달아올랐고, 은행잎도 녹색 기운이 거의 빠져간다. 이제 곧 다들 떨어져서 바닥에 깔릴 것이다. 11월이 온다. 밤이 낮보다 훨씬 긴 시절이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