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카메라를 또 샀어? /w 올림푸스 스타일러스 SH-1
그렇게 됐다. 어쩌다 보니 카메라를 또 샀다. 이번엔 고배율 줌 똑딱이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똑딱이 카메라 캐논 G9xmk2를 쓰면서 틈날 때 걷는 맛과 그러면서 사진 찍는 재미를 알게 돼버린 것이 원인이다. 거기에 요즘 조류에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산책을 할 때도 눈과 귀가 새를 쫓고 있고, 그러면 사진으로 담고 싶고, 그런데 그러기엔 정직하게 딱 표준계 범위인 G9xmk2의 렌즈로는 제대로 담기가 어렵고, 그러면 또 아쉽고, 그런다고 E-m1mk2와 40-150 pro 렌즈와 2배 망원 컨버터를 들고서 출근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고작 8만 원이라는 가격에 중고 매물로 올라온 올림푸스 SH-1을 덥석 잡았다. 원래는 이정도 가격에 나올 물건은 아닌데, 일부 사소한 문제(내가 신경 쓰는 부분은 아닌)가 있어 값을 낮춰 책정한 듯하다. 하여간, 이쯤 되면 그냥 내가 일종의 ‘카메라 호더’ 같은 게 아닐까도 싶어지지만, 어쩌겠는가, 사는 게 다 그런 것이다. ‘살다’와 ‘사다’ 모두를 아우르는 중의적 표현이다.
올림푸스 SH-1은 2014년에 출시된 고배율 줌 카메라로, 1/2.3인치 센서와 24배 줌(135판 기준 25mm~600mm 상당 화각) 렌즈를 갖췄다. 이보다 약간 먼저 출시된 마이크로포서드 미러리스 카메라 PEN E-p5를 닮은 외관이 발매 당시에도 소소하게 화제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24배 줌 렌즈가 달려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작은 크기에 금속 재질로 된 외장 마감이 인상적인 디자인이다.
실물을 만져보면, 예쁘긴 예쁜데, 이런 유형의 카메라가 다 그렇듯이 전원을 넣는 순간 약간 실망하게 된다. 길게 뽑혀 나오는 3단 경통 때문이다. 렌즈의 개방 조리갯값은 광각단에서 F/3.0, 망원단에서 F/6.9다. 그렇다고 올림푸스와 SH-1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해서라도 24배 줌 렌즈를 집어넣은 집념에 손뼉을 쳐줘야 마땅하겠다. 생긴 것이 예뻐서 그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마는 게 문제인 것이다.
캐논 G9xmk2보단 확실히 크다. 특히 렌즈 부분의 돌출된 정도가 확연히 차이난다. 당연함. 줌 배율이 24배 대 3배임. 와이파이를 이용한 무선 연결 기능을 갖췄고, 이런 고배율 줌 카메라에는 더없이 소중한 기능인 5축 손떨림보정을 탑재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노출 모드를 프로그램 모드(P모드)와 수동 모드(M모드)만 지원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자동 초점(AF) 기능이나 셔터 타임 랙 등 기동성 측면에서도 부족한 면이 있다. 불편한 조작계, 1/2.3인치 센서와 고배율 줌 렌즈 조합의 어쩔 수 없는 화질 문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카메라를 들고 종묘와 청계천을 걸었다. 사실 135판 기준 600mm 상당 화각 정도가 되면 AF 이전에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넣는 것부터가 문젠데, 뷰파인더가 없어서 그런지 이것부터가 쉽지 않다. 종묘 앞 광장에서 매 종류로 보이는 맹금류가 비둘기들을 쫓아내는 모습을 봤는데, 프레임에 한 번 넣어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다. 뒷면 디스플레이를 뷰파인더처럼 만들어주는 액세서리를 알아봐야 할까?
다음 문제는 AF. ‘동체추적’ 기능을 제공하기는 하는데, 그냥 원샷 AF를 쓰는 게 낫다. 방해물이 있으면 피사체를 인식하는 것부터가 어렵다. 곤줄박이가 견과류를 나무에 내려치며 깨 먹는 모습을 담고 싶었는데, 초점이 자꾸 빗나가서 제대로 담지 못했다. 그다음엔 역시 화질의 문제. 해상력 문제도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어두운 조리개 때문에 감도를 어쩔 수 없이 높여야 한다는 점, 그러다 보면 센서 수광면적의 한계로 인한 심한 노이즈, 그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날카로움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이미지 프로세싱의 굴레다.
그렇지만 별 생각 없이 패딩점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그 때 그 때 보이는 모습을 담기에는 이 정도가 최적의 타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를 촬영하려면, 새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때를 기다려서 찍으면 그만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젠 한없이 내려간 중고 가격, 그것 하나로 모두 참작할 수 있다. 성정석 가챠 몇 번 참으면 된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