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저것 장비 열전

내 손에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 /w 캐논 G9Xmk2

그렇게 됐다. 결국은 돌고 돌아 똑딱이다.

소니 QX10은 쓰기에 따라서는 분명 나쁘지 않은 카메라였지만-특히 줌 구간이 넓다는 점이-, 그 성능이 내 기대에는 많이 못 미쳤다. 주머니에 넣어서 갖고 다닐 요량으로 샀지만 두께 때문에 그것도 좀 어정쩡했고,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써야 하지만 통신 속도가 너무 느렸고, 그리고 1/2.3인치라는 센서 크기와 렌즈의 줌비를 감안하더라도 화질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까지. ‘아무래도 카메라는 카메라여야 한다’는 교훈 하나만 내게 주고서, QX10은 서랍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 난리를 치고서도 또 새로 카메라를 들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였을까.

2021.10.24. 서울 광진교.

△똑딱이 대멸종 시대에 살아남기

전례 없는 ‘똑딱이(콤팩트 카메라) 대멸종’의 시대지만, 어떤 카메라는 살아남아 여전히 많은 사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지금 살아남은 똑딱이들은 옛날의 그 ‘디카’들이 아니다. 폰카보다는 ‘확실히’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므로 1인치급 이상의 센서를 가져야 하고, 스마트폰과의 통신 기능은 기본으로 탑재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휴대에 부담이 되지 않는 크기와 무게를 지녀야 한다. 설계의 난도가 꽤 높아졌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캐논의 보급형 카메라 G9Xmk2는 근래 나온 똑딱이 가운데 성능으로는 ‘하한선’에 해당하는 기종이라고 할 수 있다. 1인치 크기의 센서를 탑재했고, 135판 환산 28-84mm 화각의 3배 줌 렌즈를 달았다(사실 광각단이 24mm라고 잘못 알고 쓰고 있었다. 어쩐지 24mm 치고는 좀 답답하더라니). 평범한 표준계 화각이다. 조리갯값은 광각단에서 최대 F/2.0, 망원단에서 최대 F/4.9다. 망원 쪽 조리갯값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 출시된 기종답게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통한 스마트폰 연결 기능을 갖추고 있다. ISO 감도 설정은 ISO 125~12800 사이에서 설정할 수 있다. ISO 1600 정도로는 노이즈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2021.09.08. 서울 정동길에서 만난 길고양이. ISO 1600.
2021.11.26. 서울 청계천. 감도 ISO 1600으로 촬영.

△극한 뺄셈의 디자인

이 카메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휴대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디자인에 있다. 담뱃갑과 비슷한 크기와 형태를 갖고 있는데, 그 무게가 182g에 불과하다. 가로 길이가 10cm가 채 되지 않아 정면에서 바라보는 크기도 작거니와, 두께 또한 가장 두꺼운 렌즈 부분이 31.3mm에 불과해 전체적으로 상당히 얇다. 물론 이렇게 크기와 무게를 줄이다 보니 뷰파인더도 없고 본체 뒤쪽 화면도 고정식이지만, 이 정도면 그런 것을 바라는 게 좀 양심 없는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캐논 G9Xmk2.
케이스 씌운 아이폰 SE 2세대와 두께 비교. 아무래도 카메라 쪽이 훨씬 두꺼울 수밖에는 없지만.

본체 크기가 이렇게 작으니 조작계를 배치하기가 난감했을 것 같다. G9Xmk2는 대부분의 조작을 렌즈 경통을 감싸는 고리와 터치스크린으로 해결하도록 설계돼 있다. 렌즈 경통 고리로는 노출과 관련된 설정값을 조작할 수 있고, 메뉴나 사진 보기 화면에서 이동을 지시할 수 있다. 수동 필름카메라의 조리개 링을 조작하는 느낌.

단, 경통 고리에 줌 조작 기능을 할당할 수는 없다. 아니, 경통 고리로 줌 조작이 가능하기는 한데, 모드 다이얼을 AUTO로 놓은 상태에서 28-35-50-84mm 화각으로 단계별 선택만 가능하다. 원래 설정이 불가능한 건지, 아니면 내가 설정하는 옵션을 못 찾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주로 쓰는 Av 모드(조리개 우선)에서는 상판에 있는 줌 레버를 써야 한다. 사실 왼손으로 렌즈 경통을 돌려 화각을 조절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자꾸 헷갈린다.

G9Xmk2의 본체 위쪽. 경통 고리가 잘 보이는 각도.

경통 고리만으로 조작이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고, 많은 경우 화면 터치를 병용하게 돼 있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본체 뒷면엔 조작용 다이얼은 고사하고 십자버튼 하나 넣을 공간도 없으니, 그냥 불편한 대로 그러려니 하며 참고 쓰게 되는 것이다. 버튼이 몇 개 있지도 않은데 꽉 찬 느낌이 들 정도니 그냥 ‘물리적 한계’라고 봐야 맞을 것 같다.

터치스크린. 화면을 직접 찍어 초점을 잡거나 셔터를 작동시킬 수 있고, 화면 속 오른쪽에 나열된 메뉴버튼들을 터치해 기능을 만질 수 있다.
G9Xmk2의 조작계.

사진 보기 기능과 스마트폰 연결 기능이 따로 버튼으로 나와 있는 것은 상당히 편리했다.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싶을 때나 스마트폰으로 옮기고 싶을 때, 전원을 켜지 않고(=렌즈가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지 않고) 간단하게 해당 기능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 특히 스마트폰으로 연결하는 기능은 지금까지 써본 모든 카메라를 통틀어서 가장 편했다.

△작정하지 않은 기록

외투를 걸치는 계절.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란 역시 ‘주머니’가 넉넉해질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할 일이 많지 않던 가을 어느날 점심시간, G9Xmk2를 외투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덕수궁 마실을 나섰다. 막 11월로 넘어와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늘 붐비는 덕수궁이지만, 이날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단계적 일상회복’과 아주 좋은 날씨, 그리고 울긋불긋해진 단풍의 삼박자가 맞은 영향일 터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놓고 누가 봐도 사진 찍으러 온 사람처럼 보이는 이는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아마 큰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면 그 사이에서 꺼내 찍기 민망했을지도 모르겠다.

2021.11.02. 서울 덕수궁 정관헌.

한 화면 안에서 밝기 차이가 많이 날 때는 대개 밝은 곳을 살리든 어두운 곳을 살리든 둘 중 하나만 택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 센서가 사람의 눈처럼 명암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보정 처리 덕분이다. G9Xmk2는 ‘자동 밝기 최적화’라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큰 상황에서도 어느정도 부드럽게 처리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기능이 만능은 아니고, 또 의도와는 다른 이미지를 생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역시 쓰는 사람이 잘 써야 되겠다.

2021.11.02. 서울 덕수궁에서.
2021.11.02. 서울 덕수궁.

잠깐의 덕수궁 마실로는 성이 차지 않아, 며칠 뒤에는 운현궁으로 향했다. 물론 이것도 점심시간을 이용한 마실이었다.

2021.11.05. 서울 운현궁.
2021.11.05. 서울 운현궁.

또 며칠 뒤에는 경복궁 향원정도 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표준계 3배 줌 렌즈만 달려 있어 망원 영역이 아쉽기는 해도(디지털 줌 기능이 있지만, 디지털 줌 기능을 쓸 바에는 그냥 찍고 나서 트리밍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많지 않다.

2021.11.10. 서울 경복궁 향원정.
2021.11.10. 서울 경복궁 향원정.

그래도 덕수궁이나 운현궁, 경복궁 향원정은 어느 정도 ‘작정하고’ 나선 축에 속한다. 그게 아니라 그냥 커피 한 잔 사 들고 길을 걷다가, 혹은 출근길에, 아니면 퇴근길에 셔터를 누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아니 자주 있었다.

2021.09.09. 서울 청계천의 쇠백로.
2021.09.10. 서울 광화문 네거리.
2021.11.12. 서울 광화문 인근.
2021.11.24. 서울 청계천. 빛초롱축제를 앞두고 등을 설치하는 모습.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다 보니, 나중엔 작정하고 사진 찍으러 나갈 때에도 표준렌즈(12-40 pro)를 따로 챙기지 않는 경우도 왕왕 생겼다. 보통 E-m1mk2에 40-150 pro 렌즈를 달아서 주 카메라로 쓰는데, 광각~표준 화각이 아쉬울 때 렌즈를 갈아 끼우지 않고 그냥 G9Xmk2로 해결하는 것. 첫째는 렌즈를 바꾸는 게 귀찮아서고, 둘째는 그 약간의 부피와 무게라도 줄이고 싶어서다.

물론 1인치 센서와 포서드 센서의 차이, AF 성능과 조작성의 문제 등등 많은 부분을 생각해야 하지만, 대낮에 정적인 대상을 촬영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그리고 실제 결과물도, 주로 모니터로 감상하게 되는 디지털 파일로서는 충분했다.

2021.09.12. 경기 고양 행주산성.
2021.09.12. 경기 고양 행주산성.
2021.11.06. 서울 종묘.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내가 필요할 때 내 손에 없으면 소용이 없는 법. 그렇다고 내 손에 아무-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낼 수 없는- 카메라나 쥘 수는 또 없는 것이 이치다. 폰카는 아쉽다. 주머니에 들어가지 못하는 카메라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캐논 G9Xmk2가 내 출퇴근 친구인 것이다.

당분간은.

어 그러니까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캐논 패밀리? 왼쪽의 카메라(?)들은 뽑기로 뽑은 장난감이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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