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꿈과 약속, 그리고 개개비 우는 소리 (@ 서울식물원)
지구 전체가 절절 끓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날이면 날마다 ‘역사상 가장 더운 날’ 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는데, 정말로 문명의 종말이 머지않았나 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그래, 종말이 온다면 지구 자체의 종말은 아닐 것이다. 숱한 대멸종에도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았다. 굳이 따진다면 우리가 맞이할 건 인류 문명의 종말이겠지.
마치 열대 지역의 스콜처럼, 비가 막 쏟아졌다가 갑자기 햇볕이 쨍하고 들고, 그러다가 갑자기 또 비가 오고. 이렇게 한반도가 찜통이 되어가는 7월이지만, 그럼에도 당장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는 이유는 내가 그냥 하루하루 조그만 나날을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내 삶을 살아가야 하고, 그것은 지구상 그 누구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오늘은 오늘의 꿈이 필요하고, 내일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다. 꿈같은 스토리라인을 함께 칠해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겠지.
둘째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갔던 릴파 단독콘서트의 여운이 빠지기도 전에 온몸을 심한 감기가 잡아먹었다. 목 통증부터 귀가 먹먹한 증세에 두통까지, 아무리 봐도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느낌 그대로라 세 번이나 코를 찔렀지만, 모든 자가진단키트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끝내주는 여름휴가를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집에서 요양한 사람만 되어버렸다. 아니, 잠깐만. 만약 휴가 기간이 그때가 아니었다면 그 몸 상태로 출근을 했어야 했다는 거니까, 럭키비키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겨우 기운을 차린 것은 일요일이자 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던 21일. 며칠 동안 하늘을 덮었던 우중충한 먹구름이 아침부터 걷히며 햇빛이 지상으로 쏟아졌다. 너무 오랫동안 쉬고 있던 카메라를 들고, 그다지 멀지 않은 서울식물원으로 일단 나갔다. 이날의 목적지는 호수와 습지원. 서울식물원의 다른 곳은 전에도 가봤지만, 습지원은 거기로 이어지는 큰 다리 밑 통로를 넘어가 보질 못했다. 한여름이고 하니 여러 물새들과 개개비를 만날 수 있다면 좋고, 또 마침 연꽃과 수련이 예쁠 시기니까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서울식물원은, 주변이 휑했던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온갖 건물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작년에도 잠깐 들르긴 했지만 말 그대로 그냥 ‘잠깐’ 들렀던 거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제야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게 체감이 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방문객은 일요일인데도 그다지 많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날씨 때문일까? 덥고 습한 이런 날에는 일단은 실내에 머물러 있는 게 상책이긴 해. 나는 그 덕분에 개개비들이 높이 자란 부들 숲에서 깩깩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여름의 수풀 사이에서 깨개객… 깨개객… 깨개개객… 하고 우는 소리의 주인공이 개개비다. 목소리는 우렁차지만 몸집은 직박구리 정도로 그다지 크지는 않다. 새소리의 크기는 몸집에 비례하지 않는 편인데, 이를테면 쇠박새는 내 주먹보다도 한참 작은 몸을 지녔지만 숲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한다. 직박구리의 시끄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이 개개비 또한 마찬가지다. 가끔 머리털이 바짝 서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구애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역시 좀 귀엽다.
개개비는 주로 여름에 만날 수 있는 참새목 휘파람새과의 새다. 특히 연꽃 명소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연꽃이 피는 시기와 개개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가 대체로 맞물려서 그런 것도 있고, 연꽃을 보러 간다면 카메라와 망원 렌즈를 챙겨 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만큼 사진에 자주 포착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한여름 연꽃 봉오리 위에 앉아 시끄럽게 울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바로 풀숲에 숨어버리곤 한다.
개개비와 한참 숨바꼭질을 하고, 수련이 동동 떠 있는 물길을 지나 호숫가로 들어선다. 한쪽에는 물놀이장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 한 명이 물총을 들고 뛴다. 다른 물새는 보이지 않았고, 수면에는 아주 커다란 잉어 몇 마리가 입을 벌리며 올라와 있다. 보니까 지나가는 사람이 먹이를 던져줄 거라고 기대하고 모여든 모양이다. 호수를 반 바퀴 돌아, 커다란 다리 아래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빠져나가면 습지원이다.
이쪽에도 연못이 하나 있고, 동편으로는 공항철도가 달려 올라간다. 이쪽으로 가는 길은 공항철도 관리 문제로 막혀 있다. 공기가 조금씩 눅눅하니 무거워진다. 무덥다, 라는 감각이 이제서야 확 와닿는다. 까치 두어 마리가 부리를 벌린 채 헐떡이고 있다. 너도 더운가 보다. 한강 방향으로 달려가는 공항철도 열차를 사진에 담은 뒤, 다시 몸을 돌려 연못 서편으로 돌아 걸어갔다. 민물가마우지 한 마리가 양 날개를 쭉 펼친 채 앉아 있다. 젖은 날개를 말리는 거겠지?
서울식물원 습지원으로 흘러온 물은 수문과 올림픽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강으로 연결된다. 산책로는 올림픽대로를 공중으로 가로지른다. 우중충허니 습기를 잔뜩 머금은, 그러나 미세먼지 같은 것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 누런 한강물이 흐른다. 육교의 한강 쪽 끝은 마치 전망대처럼 자리해 있다. 한강을 바라보는 방향 기준으로 오른쪽에 디지털미디어시티와 마곡나루 사이를 잇는 공항철도 다리(마곡대교)가, 왼쪽으로 붉은 아치형 트러스가 인상적인 방화대교가 누워 있다. 그리고 한강 건너편으로는 탑이 하나 솟아 있는 산이 보이는데, 바로 덕양산과 행주대첩비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면 한강공원으로 연결되는데, 오늘의 목적지는 한강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다시 뒤로 돌아 식물원 방향으로 걸었다. 개개비 소리는 다시 짙어지고, 하늘에는 누가 봐도 맹금인 새가 날아 지나간다. 사진으로 확인해 보니 새호리기다. 새호리기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몇 년 전 불광천변 전봇대에 앉아 있던 녀석을 우연히 만난 이후 한 번도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냥 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보령해저터널 홍보관 앞 CCTV 스트리밍을 켜면 되겠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또 감흥이 완전히 다르니까.
아까 들어올 때에 비해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눅눅해진 몸을 이끌고 건물 사잇길로 들어섰다. 사실 오늘의 진짜 목적지는 온실. 그렇지만 온실 내부로 들어갈 작정은 아니었다. 건물 외벽,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