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다른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다. 앉아 있는 녀석의 옆에 까치 두 마리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도시탐조] 중랑천에서 바람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기 (/w 원앙, 흰꼬리수리)

번식기가 되면 새들은 좀 더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곤 한다.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만나려면 우선 눈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배웠다. 요샛말로 하면 ‘어그로를 끄는’ 그런 행태인데, 동물의 세계에서 보통은 수컷이 화려함을 담당한다. 조류는 특히 성적 이형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그래서 그냥 보면 ‘이 둘이 같은 종이었어?’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암컷은 무채색에 가까운 깃털로 수수한 차림을 한 반면 수컷은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에 더러는 장식깃까지 갖춘 모습을 보면, 자웅이체 동물의 번식이란 무엇이며 자기 유전자를 남긴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아름다운 게 다 좋은 것은 맞지만.

성적 이형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종 중 하나가 원앙이다. 오죽하면 이름을 붙인 고대 사람들도 원(수컷)과 앙(암컷)을 따로 불렀다가 나중에 합쳤을까? 암컷의 모습은 눈 주위에 마치 안경을 쓴 것 같은 흰 무늬가 있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영락없는 ‘그냥 오리’다. 대충 봐서는 불광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흰뺨검둥오리와 딱히 다를 바가 없다. 반면 번식기의 수컷은 평소에 여러 장식품으로 만나본 그 모습 그대로다. 울긋불긋 채도 높은 깃털에 뭔가 기하학적인 의미가 있을 것만 같은 무늬를 가졌고, 부리도 붉은 빛깔이다.

서울에서 원앙을 만나기 가장 쉬운 곳은 창경궁 춘당지다. 가을~겨울에 가보면 연못 가운데 있는 섬에 족히 수십 마리는 되는 집단이 모여 지내는 것을, 그리고 춘당지 한쪽에 대포 렌즈를 물린 카메라를 든 채 때를 기다리는 사진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 안양천이나 중랑천처럼 비교적 규모가 큰 도심 하천에서도 겨울을 나는 원앙을 찾아볼 수 있다.

흰 눈이 살짝 남아있는 천변 풀밭에 원앙 수컷 한 마리가 앉아 있다.
2022.12.16. 안양천변에서 마주친 원앙 수컷.

중랑천 원앙, 가까워졌지만 더 멀어진

최근에 화제가 된 것은 중랑천 원앙 무리다. 중랑천 하류를 가로지르는 용비교 인근에 수백 마리 규모의 원앙 무리가 나타나 화제가 된 것인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다른 월동지에서 준설, 하천 정비 등 여러 가지 공사가 벌어지면서 원앙들이 이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간 잘 쉬다가 갑자기 사람들 눈에 더 잘 띄는 곳으로 왔으니, 거기에다 천변의 풀도 죄다 깎아버렸으니 겨울을 나야 하는 원앙들에게는 주거 환경이 더 나빠진 셈이다.

중랑천 수면 위를 날아가는 원앙 한 마리.
2024.02.02. 원앙 한 마리가 중랑천 수면 위를 날고 있다.

입춘 무렵의 날씨로는 그다지 쌀쌀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2월 첫 주말, 경의중앙선 응봉역에서 시작해 중랑천을 하류 방향으로 걸으며 훑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이날도 물 한가운데 민물가마우지 수십 마리가 모여 가만히 서 있었고, 그 주위로 흰뺨검둥오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한때 오염된 도심 하천의 대명사인 적도 있었다는데(어릴 적 봤던 백과사전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다), 지금은 응봉교 상판에서 내려다봐도 바닥까지 훤히 비친다. 훤히 비치다 못해 헤엄치는 잉어의 그림자까지도 손에 잡힐 듯 보일 정도로 맑다.

분명 오리는 오리인데 뭔가 무늬나 색깔이 낯선, 그런 녀석들도 더러 보인다. 고방오리나 알락오리가 우선 눈에 띈다. 용비교 인도교 밑 보 아래에는 쇠오리가, 또 오리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 무렵에 자주 볼 수 있는 물닭이 떼로 움직이고 있다.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하천 한가운데 바위가 튀어나온 곳에서 고방오리 여럿이 한데 모여 있다.
2024.02.02. 중랑천에서 만난 고방오리 무리.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잡아 끈 것은 역시 원앙 무리였다. 다리 아래 작은 바위섬에 올라앉아 쉬는 무리가 수십,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열댓, 그리고 홰를 치다 돌아다니다 서로 싸우다 하는 활동적인 아이가 또 대여섯 정도 돼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걸음을 늦추고 한참 바라보다 간다. 한 행인이 다가와 “저게 오리예요?” 하고 묻는다. 아, 저건 원앙입니다. 잠깐 들른 편의점에서도 원앙 얘기뿐이다.

다리 교각 아래 바위가 튀어나온 곳에 원앙 여러 마리가 모여 있다.
2024.02.02. 용비교 아래에 모여 있는 원앙들.
누런 수풀 너머 강물에 둥둥 떠 있는 알락오리 한 마리.
2024.02.02. 중랑천 동안에서 만난 알락오리.

하류 쪽으로 발을 옮긴다. 중랑천 동안과 서안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안 쪽으로는 자전거가 많이 달리고, 서안 쪽으로는 꽤 많은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템포로 따지자면 동안보다는 서안 쪽이 더 여유로운 느낌인데, 이건 아무래도 산책로 좌우 둔치가 서안 쪽이 더 넓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돌아온 섬, 돌아온 새

강변북로 다리 아래를 지나, 중랑천은 한강에 완전히 합류한다. 이 지점에 무슨 갯벌 같은 것이 꽤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갯벌? 그럴 리가 없다. 여기가 김포 같은 곳도 아니고 하류 쪽엔 신곡수중보도 있는데. 그렇지만 생긴 게 너무 갯벌처럼 생겼는데. 의문은 곧 풀렸다. 옛날 저자도라는 섬이 있던 자리라는 것이다. 원래는 무려 118제곱미터 넓이의 모래섬이었다고 하는데, 1972년 강남 개발을 위해 모래를 퍼다 쓰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118제곱미터면 30만제곱미터 수준인 밤섬의 네 배 정도 되는 크기인데, 그렇게 사라졌던 섬이 세월이 흐르면서 토사가 쌓여 다시 물 위로 드러났다는 얘기다.

민물가마우지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
2024.02.02. 두모포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민물가마우지들.

그 섬 같기도 하고 섬 아닌 것 같기도 한 땅의 저 먼 끄트머리에 커다란 새 두 마리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로 큰 새를 야생에서 본 적이 없다. 바로 옆에서 까부는 까치 몇 마리가 없었다면, 그냥 ‘가까운 곳의 가마우지 두 마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줌을 당겨보니 상에서 뭔가 맹금류 특유의 그런 느낌이 전해진다. 자세히 보니 꼬리가 허옇다. 떠오르는 이름은 흰꼬리수리. 한강에 흰꼬리수리가 찾아오곤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서울 한복판에도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강변에 앉아 있는 흰꼬리수리 두 마리.
2024.02.02. 저자도 끄트머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흰꼬리수리 두 마리. 앞에 있는 까치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체격이다.
뻘밭에 날아든 흰꼬리수리. 발에 물고기 한 마리가 붙들려 있다.
2024.02.02. 공중을 한 바퀴 돌고 잠시 뒤 나타난 흰꼬리수리의 발에 물고기 한 마리가 붙들려 있다.

한참 앉아 있다가 날아올라 성수대교 주변을 한 바퀴 선회하고 돌아온 흰꼬리수리의 발엔 물고기가 붙잡혀 있다. 그새 또 까치 몇 마리가 쪼르르 와서 살살 건드린다. 먹을 것을 나눠달라는 건지, 심심한 건지, 그냥 건드려보고 싶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압도적인 체구 차이에도 저러고 있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흰꼬리수리들도 딱히 쫓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잠깐 위협하는 듯하더니 곧 신경을 끄고 자기 밥 먹는 데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저거, 새예요?”

산책하던 시민이 다가와 묻는다. 아무래도 커다란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뭔가 알 것 같은’ 인상이었던 모양이다. 이날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된 이가 서너 명이었는데, 다들 흰꼬리수리가 ‘크다’는 말을 한 마디씩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한 시민은 “저 두 마리가 꼭 이 시간대만 되면 와서 앉아 있다”면서, 흰꼬리수리들이 올해뿐 아니라 작년에도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에는 전문가들이 와서 촬영하다 갔다고도 했다.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다른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다. 앉아 있는 녀석의 옆에 까치 두 마리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
2024.02.02. 원근감을 무시하는 몸집.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아쉬운 것은 역시 ‘욕심’이다. 헤럴드경제의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교통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리버 버스’라는 것을 운행하기로 했다는데, 리버 버스 터미널 중 하나가 옥수동에 예정돼 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가까운 저자도와 두모포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선박의 소음도 문제지만, 항로를 확보한다며 준설이라도 한다면 겨우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저자도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자리를 떴다. 아까 들은 말대로면 다음에 다시 와도 흰꼬리수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이틀 뒤, 같은 시각에 다시 찾았다. 저자도에는 재갈매기만 가득했다. 아마 시간대가 좀 어긋난 모양이다.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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