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저것 장비 열전

3만5000원짜리 카메라 써보기. /w 파나소닉 GF2

파나소닉 GF2와 올림푸스 14-42 EZ 렌즈.

퇴근하면 매일 빼놓지 않고 챙기는 일과가 있다. 바로 온라인 카메라 쇼핑몰과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카메라와 각종 장비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유야 별것 없다. 그냥 카메라가 좋은 것이다. 가끔 예쁜 물건이 나오면 그냥 막 보면서 감탄도 하고, 흔치 않은 매물이 있으면 또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호기심을 채우고, 시세도 보고, 또 그러다 정말 가격이 괜찮은 게 나오면 살까 말까 고민도 하고.

요즘의 고민은, ‘코트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으면서 화질도 괜찮은 카메라’가 내게 없다는 것이었다. 전에 그렇게 쓸 목적으로 파나소닉 GX9을 샀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그립을 제외하면 E-M1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실상 실패했던 기억만 남는다. 머릿속으로 ‘렌즈가 문제야!’를 외치며 세상에서 가장 얇은 표준줌렌즈인 올림푸스 14-42 EZ 렌즈를 자동개폐 렌즈캡까지 얹어서 샀지만, 내가 가진 마이크로 포서드 카메라 중 가장 작은 것이 E-M5mk2 정도라서 어쨌든 주머니에는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폰카보다 확실히 좋다고 할 수 있는, 1인치 이상 크기의 센서를 가진 카메라들은 대체로 비싸고.(내가 과연 30만원 이상을 투자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냥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고 장터를 뒤적이는데, 3만5000원이라는 가격에 올라온 카메라 한 대가 눈에 띄었다. 파나소닉 GF2였다. 2010년 말에 출시됐으니 나온 지 10년쯤 된 물건이다. 이 정도면 오래되긴 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봐도 매력적인 성능은 아니다. 그렇지만 폰카와 비교할 만한 급은 아니다. 지금이야 파나소닉 GM1 같은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물건도 있고, 1인치급 센서를 가진 NX-mini도 있고(펜탁스 Q 시리즈는 논외로 하자) 하니까 잘 와닿지는 않지만, 발매 당시 플래시를 내장한 렌즈 교환식 카메라 중에서 세계 최소형·최경량이었다고 한다. 그야 그땐 미러리스라는 게 별로 없었으니까 그런 것이기도 했겠지만.

파나소닉 GF2와 올림푸스 14-42 EZ 렌즈. 전원을 켰을 때.

마이크로 포서드 판형에 1210만 화소 센서를 갖췄고, 풀HD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요즘 나오는 파나소닉 GF 시리즈는 외장 플래시나 액세서리 장착을 위한 핫슈가 없는데, GF2에는 핫슈가 있다. GF 시리즈와 GX 시리즈가 나뉘기 전이라서 그런 것도 같고. 아니면 ‘렌즈 교환식 카메라=비교적 고급 카메라=당연히 핫슈는 있어야 해’라는 공식이 아직 통하던 시절이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내장 플래시인데, 파나소닉의 벽돌형 모델들이 대체로 그렇듯, 이 모델도 플래시가 한 번 접힌 채로 수납된다. 그래서 플래시를 펼친 뒤 손으로 눕히면 천장 바운스가 된다. 물론 성능은 딱 내장 플래시의 그것이라 외장 플래시를 쓰는 것처럼 원활한 바운스 촬영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되긴 한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급할 땐 ‘이거라도 어디냐’ 하게 되니까.

내장 플래시가 이런 식으로 튀어 나간다.

 

2단으로 접히는 구조라서 이런 식으로 강제로 젖혀주면 빛이 나가는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올림푸스 14-42 EZ 렌즈를 장착하면 코트 주머니에 적당히 들어간다. 마치 원래부터 제 짝이었던 것처럼 딱 어울린다. 무게 때문에 좀 처지고 불룩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가지고 다니다가 뭐 보이면 바로 꺼내 찍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겨울이 끝나면야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건 못하겠지만, 그래도 서류 가방에 어색하지 않게 넣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닐까.(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본다. 어차피 3만5000원밖에 안 들었으니까)

어쨌든 매일같이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로 출근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담고, 또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로 퇴근한다. 산책을 나설 때도, 작정하고 ‘사진 찍겠다’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면 그냥 이것 하나만 들고 나간다. 무게며 부피며 한 손에 들고 촬영하기에 부담이 없고, 적당히 그립감도 있고, 조작계도 그럭저럭 한 손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을 정도(렌즈 줌 조작을 빼고)라서, 간단하게 일상을 기록하는 데 좋다. 14-42 EZ 렌즈의 자동개폐 렌즈캡이 정말 유용한데, 카메라를 말 그대로 ‘렌즈 교환식 똑딱이’의 느낌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최대 개방 조리갯값(f/3.5-5.6)이 좀 아쉽지만, 이 정도 부피에서 더 밝은 값을 바란다면 그건 도둑 심보겠지.

파나소닉 GF2와 올림푸스 14-42 EZ 렌즈.

아직은 적응하는 중. 조작계도 올림푸스 OM-D 시리즈의 그것과는 (당연히) 많이 다르고, 기계적으론 손떨림보정 장치가 내장돼 있지 않은 점이 낯설다(이게 은근히 신경 쓰인다). 후면 디스플레이는 감압식 터치를 지원하는데, 의외로 터치 감도가 나쁘지 않다. 자동초점 기능은 지금 기준에서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 물론 원샷 AF에 한해서만.

화질적으로는 화소 수와 고감도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떨어지는 것은 없다. 다만 화이트밸런스를 잡는 기준이 올림푸스 카메라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전에 파나소닉 GX9도 써봤지만 그것과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것도 적응에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하다.

아래는 카메라를 받아들고 나서 첫 일주일간 찍은 사진들.

2020.02.27.

 

2020.02.27.

 

2020.02.29.

 

2020.02.29.

 

2020.02.29.

 

2020.02.29.

 

2020.03.04.

이게 3만 5000원이라니, 소소하게 횡재한 기분이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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