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하늘에 띄운 카메라, 제주 바다를 내려다보다 /w DJI Spark

2020.06.20. 제주 애월 구엄포구.

자세히 보아야 예쁜 줄 아는 것이 있고, 멀리서 관조해야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것도 멀리서 보면 희극일 수 있는 것이고. 촬영용 드론이 대중화된 것도 이제 꽤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드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새롭고 신기하다. 지상으로부터 단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저공에서도 그렇다.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여름휴가 명목이다. 장마 때문에 걱정하긴 했지만, 운 좋게도 휴가 기간에는 날씨가 좋은 편이었다. 이번 주에 다시 장마전선이 올라온다고 하니, 정말 딱 적당히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다. 집구석에서 얌전히 잠이나 자고 있던 드론을 꺼내 들었다. 2018년 1월에 중고로 구입한 뒤 2년 넘는 기간에 총 80km(DJI GO 4 앱 비행기록 기준)를 날았지만, 서울에서는 딱히 날릴 기회가 없던 물건이다.

△ 속골: 목소리를 낮추고

이번에도 여정은 속골, 올레길 7코스에서 시작했다. 속골 바닷가는 인공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자리는 새와 파도의 소리가 채운다. 태평양에서 출발했을지 모를 물결이 연안 바위에 부딪히고, 그러면 파도는 마루에서부터 하얗게 무너져내린다. 구름 탓에 빛이 충분히 도달하지 못해도, 드론을 해수면에 바짝 붙여 그 파도의 옆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소소한 재미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질감도 이 각도에서 더 잘 보인다. 기실, ‘수평이 아름다운 곳’이 속골이다. 물 위를 걷는 재주가 없어도 드론이 있으면 된다.

2020.06.19. 서귀포 속골.

이 일대는 돌고래가 종종 출몰한다고 한다. 돌고래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모슬포 인근이라고 하는데, 속골은 모슬포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목격담이 종종 들리는 곳이다. 물론 이날은 돌고래를 만날 수 없었지만, 언젠가 운이 좋으면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지나친 낙관일지 모르겠다. 원래는 제주도 전 지역에 걸쳐서 폭넓게 활동하던 돌고래가 모슬포와 그 주변에서만 집중적으로 보인다는 얘기는 그만큼 활동 반경이 좁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는 지적도 있다. 속골에 나타난 돌고래들은, 정말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셈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돌고래 쪽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 당신은 인간이 당신을 보고 촬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20.06.19. 서귀포 속골. 그렇다고 수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 애월: 사람이 많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속골이 ‘은거지’에 가깝다면, 제주 애월읍 신엄~구엄 바닷가는 ‘도회지’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허’ ‘하’ ‘호’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갓길에 늘어섰고(그래서 자전거길이 막혀 불편하기도 했다), 여행객들은 폰카에서부터 DSLR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카메라를 꺼내 들고 풍경을 기록하고 있었다. 간혹 포구에서 제트스키 같은 수상레저기구들이 출발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르락내리락,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바당길’을 따라 걸으면, 낚시를 즐기는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분명 밀물 때 본 것 같은데 썰물이 되고서도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기도 했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만 ‘암초’ 급의 섬들이 주된 낚시 포인트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리한 곳 여기저기서 쓰레기들, 심지어는 폐낚싯대까지도 보이면 낚시객들이 고운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가져온 것은 남기지 말고 가져가는 것이 여행의 도리 아닐까.

2020.06.20. 제주 애월.

 

2020.06.20. 제주 애월.

한편 이곳은 또 곳곳에 자연환경을 ‘응용’한 시설물들을 품고 있다. 중엄 새물이나 구엄 소금빌레(돌염전)가 그런 경우인데, 말 그대로 ‘극복’이 아니라 ‘응용’에 가까운 지혜가 엿보인다. 특히 소금빌레는 하늘빛을 그대로 반사해서, 마치 그 유명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 선 것 같은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한복이나 웨딩드레스를 차려입고 커플 사진을 찍는 이들이 여럿이었고, 해가 지기 직전에는 한 무리의 사진가들이 나타나 소금빌레 가까이 렌즈를 들이밀었다.

2020.06.20. 구엄포구 인근. 오른쪽의 빛나는 부분이 소금빌레다.

 

2020.06.20. 대충 이런 느낌의 일몰 사진을 찍을 수 있다.(올림푸스 E-m1+40-150 pro)

△ 판포리: 여름 아닌 것 같지만 여름인 어떤 계절

그런가 하면,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끌벅적하지도 않은, 한경면 판포리와 같은 곳도 있다. 제주도의 다른 유명한 해변들보다는 그 이름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판포리는, 해상 풍력발전소와 비양도를 배경으로 끼고 작은 마을이 붙어 있는 곳이다. 모래가 들어찬 포구가 마치 해수욕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 특유의 맑은 바닷물이 모래를 덮으면, 바닷물은 에메랄드빛으로 빛난다. 제주도 기준으로 아직은 덥지 않은 날씨였지만, 바닷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이 꽤 보였다.

드론이 비행 중에 위험 메시지를 띄울 정도의 바람이 간혹 불었다. 지상에서 느끼기엔 그 바닷바람은 꽤 찼다. 가디건을 걸치지 않으면 해변에 서 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아무래도 여긴 여름이 아니라 다른 무슨 내가 모르는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팔과 목의 드러난 부분이 화끈화끈 벌겋게 달아올랐으니, 여름은 여름이고 언제나 방심은 금물인 것이다.

2020.06.19. 제주 한경면 판포리.

 

2020.06.19. 제주 한경면 판포리.

제비가 집을 지은, 아직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카페에 앉아 시원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가까이서는 처음 보는 제비집이 신기해 이리저리 보고 있자, 이것저것 작업 중이던 사장님이 ‘밟고 올라가서 보시라’며 의자를 가리키셨다. 평소엔 암수 한 쌍으로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고 한다.

2020.06.19. 제주 한경면 판포리에서 본 제비집.(올림푸스 E-m1+40-150 pro)

며칠에 걸쳐 잘 보고 잘 쉬다 육지로 돌아왔다. 김포공항에서 내리는 순간 훅 끼쳐오는 더운 느낌이, 달리 말하지 않아도 꼭 서울 같았다. 그것은 일상을, 살림을, 출근을,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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