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여름휴가의 위로… 위를 바라보면 ‘더 위’가 있다

2021.07.23. 퇴근길 하늘.

일주일은 길고 한 분기는 짧다. 월요일 아침에서 금요일 저녁까지의 시간은 억겁처럼 지난한데, 오는가 싶던 봄이 금방 가고 여름도 벌써 한복판을 지나는 중이다. 분명 춥다고 옷 껴입고 그러지 않았었나? 정신 차려보니 한여름이 오고 휴가철이 되고 만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꽃이 피고 지고 해가 길어졌다 짧아지고 날이 더워졌다 추워지고,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지나고. 그러다 죽고.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처음 휴가 일정을 짜서 제출하라고 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쌓인 연차유급휴가 일수가 얼마 안 됐고, 그리고, 사실 딱히 할 게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혹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한 2단계 정도만 됐더라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을 텐데, 4차 대유행이 꺾이지 않고 있는 이 엄중한 시국에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간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중심을 잃고 목소리도 잃고 비난 받고 사람들과 멀어질 일이다. 그렇다고 주는 휴가 안 받는 것도 무리. 그래서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쉬기로 했다. 끝.

2021.07.23. 퇴근길에 만난 고양이.

휴가 전 마지막 퇴근 때 회사 앞에 차려져 있던 임시 선별진료소에 들렀다. 똑같이 ‘집콕’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음성 판정을 받고서 집에 있는 쪽이 여러모로 나아 보일 것 같아서였다. 워낙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진료소에는 대기 인원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가자마자 바로 인적사항 적고 길다란 면봉 두 개를 받아들 수 있었다. 지시에 따라 부스에서 대기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면봉을 갖다 줬고, 그는 하나는 목구멍에, 다른 하나는 콧구멍에 찔러 넣었다. 켁켁, 으엑,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에 문자메시지로 ‘음성’임을 통보받았다.

사실 휴가 기간 내내 집에 있기만 한 것은 아니고, 잠깐잠깐 산책도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주(main)는 ‘집콕’이었으니 그렇다고 하면 될 것이다. 바깥은 징그럽게 더웠고, 잠은 끝없이 쏟아지고, 전자기기 화면 너머에선 재미있는 것이 끝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리아 파이탱!!!!!~!~!~!!!! 안산 파이탱~!~!!!~!~!!

2021.07.25. 불광천 오리의 상상도 못한 정체.
2021.07.25. 서울 불광천.

외출이라 할 만한 외출은 지난주 월요일에 있었다. 별 계획 없이 무작정 선유도공원에 찾아간 것인데, 물론 그날도 매우 더웠으므로 호흡은 허버허버, 얼굴은 벌게지고, 땀은 오조오억 방울 흘렸다. 그 날씨에도 마스크를 쓴 채로 공원에서 동행인과 캐치볼을 즐겼으니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참새도 직박구리도 까치도 이 돌아버린 열돔 속에서 부리를 벌리고 헐떡이고 있었는데, 방문객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이스크림 부스러기와 찬물 조금씩 흘려주는 정도뿐이었다. 인간이 지구를 이 따위로 만들어서 미안해.

2021.07.26. 그래도 막 날아다니는 참새

선유도공원에 가면 늘 새롭고 신기한 광경을 하나씩은 보게 된다. 이날은 매미가 단체로 우화하고 남은 허물들이 나무에 단체로 붙어있는 것을 봤다. 이렇게 대규모로 모여있는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허물들 사이에서 성충 매미 한 마리가 기둥을 붙잡고 윔~윔~ 하며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17년을 존버(존중하며 버티기)한 생식활동에의 욕구가 문득 장엄하게 느껴졌다.

이날의 외출(사실 그것도 평일이라는 점만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다만)을 제외하면 딱히 ‘휴가 같은’ 느낌은 없는 그 며칠을 보내고, 목요일엔 다시 출근을 했다. 고도로 발달한 출근길은 여전히 황천길과 구분할 수 없었고,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퇴근에 대한 갈망이, 휴가 첫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환상이 올라왔다. 막상 돌아가면 역시나 할 것 없이 멍 때리며 그 시간을 허비할 것이 확실한데도. 그렇다. 여름이었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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