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보내며-제정신으로 살기가 이렇게 힘들지만
지난해 말미에, 그 해를 돌아보며 ‘거대한 농담 같았던 해’라고 쓴 적이 있다. 2020년은 정말로 ‘농담 같은’ 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문을 열어서 무슨 들어본 적 없는 조합의 한국어로 된 온갖 정치뉴스(무슨 180석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는 얘기라든지, 그랬는데 얼마 안 가 서울과 부산의 시장 자리가 시장의 성범죄로 인해 공석이 됐다든지, 현직 검찰 총수가 대선주자로 이름을 올린다든지 등등)가 나오질 않나, 사상 최장의 장마를 비롯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 규모로 일어나질 않나, 하여간 혼이 비정상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다시 한 해 지나서 보니, 어쩌면, 농담도 진지하게 반복하면 그냥 진담이 되는 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사실상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인 상태를 ‘정상’ 상태로 돌려놓는다는 게 아니고, ‘비정상’인 상태는 두고서 이름표만 ‘정상’으로 바꿔 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뉴 노멀’인 셈. 아무래도 ‘이상한’ 쪽은 세상이 아니라 나인 것 같은데, 물론 그렇게 되고 나면 이젠 무슨 방법이 없다.
올해는 세 번째 퇴사와 네 번째 입사를 했다. 소득은 약간 늘었다. 삶의 질은 그래도 종합적으로 볼 때 조금 나아졌다고 볼 수 있겠다. 자리를 옮기던 딱 그 무렵에 그간 한참 열심히 쓰던 브런치 계정을 개인적인 사유로 지우고 다시 블로그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꼭지, 그러니까 보름에 한 건 발행을 목표로 했지만 계획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5월부터 12월 이 글 발행 직전까지 15건을 썼으니까 연간 평균으로 따지면 목표에 아주 미달하지는 않은 듯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물론 한 해 내내 시국이 엄중했던 탓이다. 가까운 산책 코스는 종종 걸었으니 여행 못 간 게 막 엄청나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벗어나서 기억에 담아 둔 풍경이 몇 장면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책도 많이 읽진 못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직원에게 원하는 책을 일정 한도 내에서 사주는 복지 혜택을 줘서 의무감(?)에라도 읽은 것이 몇 권 된다.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려고 읽는 것이다. 충분히 많은 책을 살 수 있다면 충분히 많은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뜬금없긴 하지만 코딩 공부를 하겠다며 파이썬 입문서를 붙들고 잠깐 명령어를 두드려본 것도 올해의 경험 중 하나다. 하계올림픽을 통해 다시 배구의 재미를 깨닫고 한 주에 두어 경기는 중계방송을 보게 된 것도 있구나.
사진은, 컷수는 늘었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을 남들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느냐, 그런 것이 문제다. 풍경사진의 비중은 줄고 망원렌즈로 동물들을 찍은 사진이 대폭 늘었다. 요즘은 아예 망원렌즈를 기본으로 들고 다닐 정도니 말 다 한 것이다. 특히 그간 보지 못했거나 봤더라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간 동물들을 여럿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 올해 생긴 변화다. 올해는 까치가 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봤고, 매화 꿀을 따먹는 직박구리를 봤고, 전선 위에 앉은 새홀리기를 봤으며, 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를 봤다. 겨울에는 불광천에 쇠오리들이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 한편으로, 올해는, 연말인데 연말 느낌이 나질 않는다. 대체 이 기분은 뭐지, 했는데, 그냥 하루하루 사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어서, 그래서 매일이 똑같은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들려오는 뉴스가 아무리 쇼킹해도, 그런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청산되지 못하는 과거를 발목에 덕지덕지 붙이고서, 그래도 곧 해가 바뀌고 이제 낮의 길이가 길어질 테니까 힘 내보자, 무슨 이런 자기최면을 걸어보는 것도 이제는 사치가 된 것 같다. 다들 “그게 현실이야” 하는데, 동의는 안 되지만, 내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대세에 딱히 영향이 없다. 그래서 2021년 12월 말, 여전히 이 나라에는 차별금지법은 없고, 반면 국정농단과 뇌물수수 등을 저지른 박근혜 씨는 사면 대상이 됐나보다.
아무래도 제정신 유지하며 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 아무튼, 그 고약한 2021년을 보내며, 그래도 올해 이 사진들은 건졌다 할 만한 컷들을 추려 봤다. 사진을 많이 찍은 달도 있고 거의 못 찍은 달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열두 달 모두 기록될 수 있게 안배했다. 이 가운데는 블로그에 올린 사진도 있고 아닌 사진도 있다. 본문에 넣은 사진은 뺐다.
희망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셔터는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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