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도시탐조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도시탐조, 일상 속에서 작은 관심을 나눠보기 @서서울호수공원

따라라라라라닥딱.

소리가 아주 선명하다. 이 소리를 내는 존재가 분명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런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시야 안에는 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번 더, 오타를 골라내듯이, 찬찬히 살핀다.

따라라라라라닥딱.

아까와 같은 방향이고 거리도 비슷하다. 그럼 대충 여긴데… 아! 겨우 찾았다 싶은 그 찰나에 어두운 고동색 바탕에 흰 무늬가 촘촘히 박힌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닭 쫓던 개는 지붕을 쳐다보고, 새 쫓던 나는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 어느 공간만 황망히 쳐다본다. 그건 분명 쇠딱따구리였는데.

2022.01.03. 서서울호수공원에서 만난 쇠딱따구리.

새해 첫 평일, 서서울호수공원에는 꽤 온화한 햇볕이 떨어지고 있었다. 평일, 특히 월요일인데도 방문객이 꽤 있었다. 누군가는 운동하러, 누군가는 산책하러 왔을 터다. 또 누군가는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나들이를 나오기도 했겠지. 나는 새를 보러 왔다. 아직 무슨 ‘탐조’라 할 만한 것을 하는 단계는 못 되고 그냥 ‘이런 새들이 근처에 있구나~’ 하는 정도지만.

그냥, 이런 모습을 보면 즐겁고 좋으니까.(2021.02.13. 경기 고양 서오릉에서 만난 곤줄박이.)

여러 전문가가 탐조 입문자들에게 “우선 도시 속에서 시작해보라”고 이야기한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도시의 텃새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 도시의 일상을 살다 보면 이 공간에 사람이 아닌 동물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그 생각부터 바꾸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늘 ‘그냥 참새겠지’ 했던 것들이 실은 박새였을 수도 있고, 곤줄박이나 딱새였을 수도 있다. 비둘기 말곤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근린공원에도 직박구리나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새가 살고, 도심 하천에는 왜가리나 백로, 해오라기, 민물가마우지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흰뺨검둥오리와 물닭, 논병아리 사이의 차이를 깨닫게 된다.(그리고 ‘일석이조’나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말을 안 쓰게 된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2021.12.25. 서울 불광천. 백할미새 한 마리가 도약하고 있다.)

서서울호수공원은 옛 신월정수장을 고쳐 만든 공원이다. 서울과 경기 부천 사이 경계에 누워 있는데, 동쪽이 서울이고 서쪽이 부천이다. 이름처럼 호수를 하나 갖고 있고, 그 주변으로 몬드리안정원이니 재생정원이니 하는 것들을 배치했다. 옛 정수장의 흔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선유도공원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봄에 가면 이런 느낌.(2021.04.14. 서서울호수공원.)

산새들을 보기 위해 향한 곳은 공원 외곽 능골산 산책로. 입구 근처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쓰다듬고서 시나브로 올라간다. 삐지지지, 뺙뺙, 하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날 가장 많이 본 새는 바로 동고비. 나무를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다가 “삐릿!” 하며 날아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등은 푸른 빛이 도는 회색, 약간 죠스바가 생각나는 그런 빛깔이 돌고, 눈 주변으로 검은 줄이 그어져 있다. 작은 새들이 으레 그렇듯 정말 부산스러웠다. 앉았다가, 날았다가, 땅바닥에서 먹이를 찾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2022.01.03. 혼자 식빵을 굽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애옹~” 하며 달려오던 고양이.
2022.01.03. 나무에 앉아 있는 동고비.
2022.01.03. 박새.
2022.01.03. 박새가 날아오르고 있다.

휘찌휘찌- 삐지직- 하는 소리가 울린다. 이건 박새다. 어디서나 흔히 살아가는, 그러니까 공원도 아니고 도심 빌딩 숲 사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작고 귀여운 새다. 동고비나 참새와 비슷한 몸집인데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우렁찬 노랫소리가 나오는지. 그런데 그 소리를 삐이익- 삐엑- 하는 소리가 덮는다. 직박구리다.

딱딱딱딱. 나무기둥을 쪼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보통 ‘딱따구리’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오색딱따구리 쪽에 가깝지만, 그렇게 화려하고 튀는 외모를 하지 않은 딱따구리도 있다. 이를테면 이날 만난 쇠딱따구리는 멀리서 얼핏 봐선 뭐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수하게 생겼다. 이들이 앉아 있는 나무 기둥과 매우 닮은 색을 가졌고, 몸집은 참새보다 조금 큰 15cm 정도에 불과하다. 머리가 둥글고 부리는 그다지 길지 않다.

2022.01.03. 쇠딱따구리. 작다.

아무래도 쇠딱따구리 사진을 조금 더 선명하게 찍어보고 싶어서 한 자리에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한동안, 마치 옛날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하던 모 통신사 광고처럼, 그렇게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데 낙엽 밟는 ‘바스락’ 소리가 유난히 크다. 까치 두어 마리가 저쪽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여기 사는 새들에게도 이렇게 오래 있으면 실례겠다.

2022.01.03. 서서울호수공원의 호수가 얼어 있다.

공원 남쪽으로 돌아서 나온다. 호수의 물은 꽁꽁 얼어 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더 초점거리 긴 초망원렌즈를 알아보는 나. 작은 관심이 집착으로 돌변하는 건 이렇게 한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게 부족한 것은 장비가 아니라 내 체력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관심에도, 관심이 집착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데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코어근육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모른다.

@Bokth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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