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흰 몸에 검은 부리를 가진 저어새 한 마리가 갯골에서 부리를 물 속에 넣고 먹이를 찾고 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노는 썰물 때 저어야 한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종점까지 한 정거장, 5번 마을버스는 시가지의 끄트머리를 지나려는 참이었다.

“여기 내려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내게, 기사님은 다시 한번 물었다.

“공원까지 가는 거예요?”

네, 한 음절로 대답하면서 두리번두리번, 버스 안을 살폈다. 승객이 나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챘다. 평일 낮, 그것도 기온이 뚝 떨어진 이런 날에는 역시 그런 편이겠지. 괜히 카메라를 한 번 쥐었다가 놓는다. 얌전히 앉아있는 것 말고는 할 것도 없다. 창밖으로 건물이 사라지고 들판이 나타난다.

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 입구.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트 모양의 조형물이 얹어진 문이 서 있다.
2023.11.14. 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 입구.

아무래도 옷을 잘못 골라 입고 온 것 같다. 종점에서 내리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도시의 정류장에서 맞은 공기와는 또 다르다. 세찬 바람이 그대로 피부에 날아와 부딪힌다. 코트의 단추를 모조리 잠근다. 모처럼 연차를 쓰고 쉬는 평일의 오후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1930년대 조성된 이래 오랫동안 주요 천일염 공급처였던 소래염전 터를 새롭게 가꾼 곳이다. 지금이야 해안선이 서쪽으로 꽤 멀리 나가서 ‘왜 염전이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있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근방이 온통 바다와 갯벌로 표시돼 있는, 옛날 그 송도 신도시도 없고 오이도가 섬이던 시절의 지도를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붉은 지붕을 얹은 목조 소금창고가 서 있고 주변으로 누런 갈대가 깔려 있다.
2023.11.14. 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 내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
낡은 소금창고 앞으로 방문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11.14. 경기 시흥 갯골생태공원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

한반도에서 가장 조석간만의 차가 큰 지역 중 하나고 평탄한 지대면서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니 입지 조건은 아주 좋았다. 바로 근처를 지나가는 수인선 철도를 통해 소금을 실어 나르기도 편했다. 사실 천일제염에는 강수량이 적은 북쪽 광량만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분단 전의 이야기. 신안과 함께 남쪽의 천일염 공급을 책임지는 곳이었다고 하니, 한때의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다만 이후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96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공원은 정확한 개장 일시가 명시돼 있지는 않은데, 2004년에 이곳에 어린이용 풀장을 만들었다는 보도를 봐서는 그 이전에 조성된 듯하다.

염전 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 바닷물을 퍼올려 받아놓고 햇볕에 증발시키는 사각형 구획이 상당한 규모로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일부는 체험 용도로 여전히 쓰이는 모양이다. 노동과 놀이는 한 끗 차이. 증발지 바로 옆, 소금 운반용 열차인 ‘가시렁차’와 그 배경에 서 있는 두 동 남은 소금창고를 함께 보면 그 차이가 더 극적으로 와닿는다.

철도 궤도 위에 올려져 있는 소금운반용 열차인 '가시렁차'를 뒤에서 바라본 모습.
2023.11.14. 갯골생태공원에 전시돼 있는 소금 운반용 열차인 ‘가시렁차’. 궤도는 협궤다.
고무래로 소금을 모으는 염부 모양의 붉은 금속제 조형물. 그 뒤로 네모난 염전이 보인다.
2023.11.14. 염전 앞에 서 있는 염부 모양의 조형물.

인공물의 재생에 가까웠던 폐염전 부지에서 작은 도랑을 하나 건너면 테마는 ‘자연의 보존’으로 바뀐다. 서해 갯벌은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풍경은 또 새롭다. 갈대와 억새가 넘실넘실하는 평원 사이사이, 흙탕물 흐르는 갯골에 온갖 새들이 와서 놀고 있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저어새다. 그 흙탕물에 고개를 처박고 이리저리 부리를 젓고 있다. 결코 노는 시간이 아니다. 언제 왔는지 모를 쇠오리들이 비탈을 바삐 오간다. 그 걸음걸음마다 조그만 발자국이 찍힌다. 그 옆 흰뺨검둥오리와의 체격 차이가 인상적이다. 갯골이 훅 꺾이는 자리, 인공과 자연의 경계쯤에 전망대가 서 있다. 5층 정도의 높이로, 꼭대기에 서면 구불구불 갯골과 주변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흰 몸에 검은 부리를 가진 저어새 한 마리가 갯골에서 부리를 물 속에 넣고 먹이를 찾고 있다.
2023.11.14. 갯골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저어새.
저어새 한 마리가 갯골 가장자리를 향해 걷고 있다. 주변에 몸이 둥그런 오리 두 마리가 보인다.
2023.11.14. 저어새와 오리.
2023.11.14.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전망대.
2023.11.14.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염전.

풍경은 좋았지만, 문제는 타이밍. 여길 이때 올라간 게 실수였다.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 얼마 안 되는 사이에 갯골에 물이 훅 밀려 들어온 것이다. 물살도 제법 세차다. 물 차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밀물이라니, 물때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저어새가 부리를 젓는 것은 썰물. 물이 빠졌을 때 잘 저어야 물이 들어와서도 든든한 것이다. 저어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오리들만 둥둥 떠 있다. 별 수 없다. 걸어야지 뭐.

펄 바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농게 같은 갯벌 생물들이 파놓은 모양이다. 구멍이 너무 숭숭 뚫려있어서 마치 밟으면 푹 꺼질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드는데, 물론 방문객이 밟아도 되는 땅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해 볼 이유는 없다. 펄과 갈대밭 사이사이로 나무 데크로 된 산책로가 깔려 있고, 갯골에 찾아오는 새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탐조대가 몇 군데 설치돼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썰물 때 보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물때를 챙겼어야 했는데, 새삼 이마를 친다.

갯골생태공원 산책로. 땅에는 누런 억새가 가득하고, 버드나무는 아직 푸른 빛이 있다. 배경에 서해선 열차가 지나간다.
2023.11.14. 갯골생태공원 산책로.

삐이- 하는 딱새 소리, 빠지지- 하는 뱁새 소리가 아쉬움을 달랜다. 저 먼 하늘 위로 맹금 한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오니 갯골의 물은 이제 거의 넘칠까 말까 하는 수준이 됐다.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이미 늦은 오후, 하늘은 벌게지기 시작했다. 매점에서 파는 따뜻한 커피 한 캔을 꼭 쥐고, 시간표 상으로 한 10분쯤 남은 버스를 기다린다. 평일, 퇴근시간대, 다시 몇 번의 환승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 생각해 보니 아까 한낮보다 덜 추운 것 같다. 뭐지?

2023.11.14. 억새와 전망대.

@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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