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조] 뱁새,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w 붉은머리오목눈이)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다리 찢어진다는 속담은 어려서부터 익히 들었었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얘긴데, 나는 늘 그게 의문이었다. 황새가 뭔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 본 황새의 이미지는 나중에 알게 된 실제 황새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뭐 아무튼. 뱁새 가랑이를 찢어지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보폭이 크고 다리가 긴 새라는 것은 그냥 문자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것은 이거였다. 그러니까 대체 ‘뱁새’라는 게 뭐냐?
한동안 ‘뱁새’라는 것이 실존하는 새 종류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뭐, 그런 말을 들어봤지’ 정도로만 여기고 살았는데, 정말 한참 뒤에야 소셜미디어를 통해 (ㅇ ▲ ㅇ) 이런 표정을 한 아주 작고 동글동글한 새에 붙은 설명을 보고서야 아, 뱁새라는 게 진짜 있는 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무슨 희귀한 새도 아니고 실은 쉽게 만날 수 있는 새라는 사실은 좀 더 뒤에, 내가 봤던 그 새가 실은 ‘뱁새’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보다 더 나중에 알게 된다.
‘뱁새’는 붉은머리오목눈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길을 걷다 수풀이 우거진 곳 주변을 지날 때면 들리는 삑삑, 짹짹, 뺙뺙거리는 새 소리. 늘 그냥 참새라고만 생각했던 누런 새들 중에서 뭔가 조금 더 빵실한 인상의 새를 본 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뱁새다. 참새와 몸 크기도 비슷하고 색깔도 비슷한 편이지만, 참새에 있는 거뭇거뭇한 무늬가 없고 몸통이 훨씬 동글동글하다. 울음소리도 참새가 “째잭!”이라면 뱁새는 “찌지직!”에 가깝다.
그리고 움직임이 좀 더 정신 사납다고 해야 하나?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탓에 사진을 찍기가 정말 쉽지 않다. 카메라의 동체추적 AF 기능을 결코 신뢰해선 안 된다. 타짜의 손이 눈보다 빠르듯, 뱁새는 카메라와 렌즈보다 빠른 것이다. 딱히 철새인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겨울에 더 만나기 쉬운 편이었다. 이유는 별게 아니고, 몸집이 워낙 작고 움직임도 재빠르다 보니 초목이 무성한 여름에는 잘 눈에 띄지 않아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AF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호기롭게 덤벼들었다가 빽빽한 수풀이나 나뭇잎만 실컷 보게 되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오목눈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와는 다른가? ‘오목눈이’ 중에서 머리가 붉은 종류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아니다. ‘전혀 다르다’고까지는 하기 어렵지만 둘은 ‘과’ 단위에서 갈라지는 사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참새목 붉은머리오목눈이과, 오목눈이는 참새목 오목눈이과. 참새목으로 따지자면 곤줄박이, 박새, 딱새, 개개비, 제비 같은 새들도 속한 집단이다. 계통분류상 가까운 녀석들로만 꼽아도 직박구리, 동박새, 휘파람새, 솔새 같은 것들이 나온다. 뭐야? 그럼 이름을 왜 그렇게 지어놨어? 원래 이름이 먼저 생기고 생물학적 계통 분류가 나중에 연구되는 경우가 다 그런 것이다.
대충 참새와 혼동된다 싶으면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와 혼동된다 싶으면 오목눈이라고 생각하면 편한데, 깃털 색깔의 차이 외에도 자세히 보면 생김새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쪽이 부리가 좀 더 큰데, 사람으로 치면 인중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인상이다. 아마 증명사진으로 구분하자고 하면 ‘어 좀 다르네?’ 할지도. 주로 보이는 곳도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주로 갈대나 낮은 덤불 사이라면 오목눈이는 나무 기둥이나 가지 위다.
아쉽게도 둥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두 새가 짓는 둥지의 모양에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나뭇가지를 엮어 바구니처럼 동그랗게 출입구가 열린 둥지를 짓는데, 그래서인지 뻐꾸기 탁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하필 알도 비슷하게 청록색이어서 더욱 그럴 터다. 반면 오목눈이는 이끼와 거미줄을 이용해 거의 밀폐된 형태의 둥지를 짓는 편이다.
아직 수풀이 우거지기는 전인 지난 4월 6일, 매화 꽃잎이 수면에 가득 수놓인 동네 공원 웅덩이에서 목욕하는 뱁새 여럿을 만났다. 작고 까만 눈이 유독 반짝였다. 물에 젖은 깃털, 마치 전동드릴처럼 온몸을 털어내는 동작, 소셜미디어에서 봤던 예의 그 ‘위협하는 자세’까지, 뱁새의 귀여움을 가득 눌러담은 하나의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역시, 뱁새에게는 뱁새의 길이 있는 법이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