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의 위로… 위를 바라보면 ‘더 위’가 있다
일주일은 길고 한 분기는 짧다. 월요일 아침에서 금요일 저녁까지의 시간은 억겁처럼 지난한데, 오는가 싶던 봄이 금방 가고 여름도 벌써 한복판을 지나는 중이다. 분명 춥다고 옷 껴입고 그러지 않았었나? 정신 차려보니 한여름이 오고 휴가철이 되고 만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꽃이 피고 지고 해가 길어졌다 짧아지고 날이 더워졌다 추워지고,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지나고. 그러다 죽고.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처음 휴가 일정을 짜서 제출하라고 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쌓인 연차유급휴가 일수가 얼마 안 됐고, 그리고, 사실 딱히 할 게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 아니었다면, 혹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한 2단계 정도만 됐더라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했을 텐데, 4차 대유행이 꺾이지 않고 있는 이 엄중한 시국에 다른 지역으로 놀러 간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중심을 잃고 목소리도 잃고 비난 받고 사람들과 멀어질 일이다. 그렇다고 주는 휴가 안 받는 것도 무리. 그래서 그냥… 집에 틀어박혀서 쉬기로 했다. 끝.
휴가 전 마지막 퇴근 때 회사 앞에 차려져 있던 임시 선별진료소에 들렀다. 똑같이 ‘집콕’을 하더라도 확실하게 음성 판정을 받고서 집에 있는 쪽이 여러모로 나아 보일 것 같아서였다. 워낙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진료소에는 대기 인원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가자마자 바로 인적사항 적고 길다란 면봉 두 개를 받아들 수 있었다. 지시에 따라 부스에서 대기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면봉을 갖다 줬고, 그는 하나는 목구멍에, 다른 하나는 콧구멍에 찔러 넣었다. 켁켁, 으엑,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에 문자메시지로 ‘음성’임을 통보받았다.
사실 휴가 기간 내내 집에 있기만 한 것은 아니고, 잠깐잠깐 산책도 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주(main)는 ‘집콕’이었으니 그렇다고 하면 될 것이다. 바깥은 징그럽게 더웠고, 잠은 끝없이 쏟아지고, 전자기기 화면 너머에선 재미있는 것이 끝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리아 파이탱!!!!!~!~!~!!!! 안산 파이탱~!~!!!~!~!!
외출이라 할 만한 외출은 지난주 월요일에 있었다. 별 계획 없이 무작정 선유도공원에 찾아간 것인데, 물론 그날도 매우 더웠으므로 호흡은 허버허버, 얼굴은 벌게지고, 땀은 오조오억 방울 흘렸다. 그 날씨에도 마스크를 쓴 채로 공원에서 동행인과 캐치볼을 즐겼으니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참새도 직박구리도 까치도 이 돌아버린 열돔 속에서 부리를 벌리고 헐떡이고 있었는데, 방문객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이스크림 부스러기와 찬물 조금씩 흘려주는 정도뿐이었다. 인간이 지구를 이 따위로 만들어서 미안해.
2021.07.26. 더워 죽겠는 2021.07.26. 직박구리와
선유도공원에 가면 늘 새롭고 신기한 광경을 하나씩은 보게 된다. 이날은 매미가 단체로 우화하고 남은 허물들이 나무에 단체로 붙어있는 것을 봤다. 이렇게 대규모로 모여있는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허물들 사이에서 성충 매미 한 마리가 기둥을 붙잡고 윔~윔~ 하며 우렁차게 울고 있었다. 17년을 존버(존중하며 버티기)한 생식활동에의 욕구가 문득 장엄하게 느껴졌다.
2021.07.26. 허물 밖은 2021.07.26. 위험해
이날의 외출(사실 그것도 평일이라는 점만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다만)을 제외하면 딱히 ‘휴가 같은’ 느낌은 없는 그 며칠을 보내고, 목요일엔 다시 출근을 했다. 고도로 발달한 출근길은 여전히 황천길과 구분할 수 없었고,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퇴근에 대한 갈망이, 휴가 첫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환상이 올라왔다. 막상 돌아가면 역시나 할 것 없이 멍 때리며 그 시간을 허비할 것이 확실한데도. 그렇다.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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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