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이었던 곳) 위를 걸어야 믿겠느냐 @전북 임실 옥정호(붕어섬 출렁다리)
도시에 살면 기후에 둔감해진다. 가뭄이 심각하다고 해도 웬만해선 도시 가구에 급수가 끊기지는 않을 테고, 추위나 더위가 극심하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난방이든 냉방이든 적당히 되는 공간에 있을 테니까. 아무리 가물어도 한강물 퍼올려서 흘리는 청계천은 마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수중보로 갇혀 있는 한강도 마찬가지다. 많은 경우 기후의 변화를 느끼기는커녕 평소에 하늘이나 쳐다보고 살면 다행일 것이지만, 도시 사람도 ‘어, 뭔가 이상한데?’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는 진짜로 뭔가가 정말 많이 잘못된 거다. 바로 그게 요즘 몇 년간의 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비슷한 것)를 했다. 요즘 전북에서는 임실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가 화제라는데, 지난 10월께 준공된 뒤 개통 기념으로 한시적 무료 입장 행사를 하고 있단다. 임실군은 바로 근처에 있는 요산공원과 묶어 본격적으로 관광명소화하려는 계획인 모양. 붕어는 겨울을 대표하는 제철생선(그간 전통의 강호로 팥붕어가 강세였으나 최근에는 슈크림붕어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인데, 그런 겨울에 붕어섬에 찾아가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10일, 붕어섬 출렁다리로 들어가는 길은, 그 초입에서부터 이미 많은 차량으로 혼잡한 상태였다. 역시 겨울이면 붕어 생각이 다들 나는 모양이다. 새로 잘 꾸며진 나무 데크를 밟으며, 아마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빛날 벚나무들을 지나며, 출렁다리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물이 없었다. 아니, 있긴 있는데, 이걸 ‘옥정호’라는 하나의 호수의 일부라고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애초 섬진강댐이 없었던 평행세계의 섬진강 줄기를 보고 있는 건지, 인식 체계에 약간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전남 쪽 가뭄이 심각하다고는 들었지만 여기도 물이 부족한 건가? 아, 혹시 다리 공사하느라 물을 일부러 빼놓은 걸까? 드러난 땅에 풀 자란 걸 보면 수면 위에 꽤 오래 있었던 모양인데?라고도 생각했는데, 어쩌면 출렁다리 있는 곳으로 가면 그래도 거긴 물이 꽤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도 같다.
출렁다리는 생각보다 더 출렁거렸고, 그런데 생각보다 불안하거나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몰린 사람 수에 비해 다리 너비가 좁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높이가 꽤 높은 편이라 그런지 다리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히 싸늘했다. 정작 무서웠던 건 눈앞의 풍경이었다.
찾아보니 이날 기준 옥정호의 저수율은 18.9% 수준이었다. 평년엔 38.3%가 차 있었다는데,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 반년 동안 전북지역의 강수량은 평년의 3분의 2에 불과했단다. 이 기사의 모습보다 조금 더 마른 모습이었다. 동복댐, 주암댐의 물이 고갈될 가능성을 걱정하는 광주 상황이 전북에서도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전라북도 측은 이대로 가도 400일 정도 쓸 물은 있다고 하지만, 가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는 일.
어쩌면 내년 봄 농사에도 타격이 갈지 모른다. 안 그래도 겨울이 안 추워서 기생충들이 겨울을 너무 쉽게 나게 된다는 그런 소식도 자주 들리고, 평균 기온이 너무 올라서 휴전선 바로 밑 펀치볼 지역에서 사과가 많이 나고 정작 사과 주산지로 알려져 있던 대구에서는 사과 농사가 잘 안된다는 등 작물 재배의 지도가 확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그런 판국인데. 도시 사람의 입장에서는 식료품값 앙등, 모기와 러브…버그…라든지 대벌레라든지 하는 벌레들의 대량 발생, 이런 정도가 와닿으려나? 사실 잘 모르겠다.
한참 쌀쌀하더니, 붕어섬까지 들어갔다가 나오자 하늘에서 얼음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것이, 꼭 빗방울이 떨어지다가 중간에 얼어붙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건 금방 그쳤지만, 아무튼, 조만간 단비가 내려 해갈이 좀 됐으면 좋겠다, 뭐 그런 소망을 품어봤다.
날이 풀리고 물도 차오르면 다시 찾아가보고 싶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