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기계 다루는 이야기

카메라랑 놀기: 셔터속도와 심령사진에 관하여

1960년대에 나온 카메라, 자이스 이콘 콘테사 LKE.

카메라, 그러니까 ‘사진기’는 참 매력적인 기계입니다. ‘기계’라는 것은 사실을 말한 것이고, ‘매력적’이라는 것은 제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진은 카메라와 함께 태어났습니다. ‘사진’이라는 말은 원래 그림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념의 ‘사진’은 1839년 다게레오타입이 나오기 전엔 존재하지 않았죠. ‘카메라’라고 하는 특별한 장치가 없이는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낼 수 없다는 점, 거기서 카메라라는 ‘기계’가 지닌 특별한 속성이 드러난다 하겠습니다.

하여간, 사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사진 찍는 기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이 기계에 대해서 알면 살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죠. 딱히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건 글 쓰는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오늘은 셔터속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사진=시간의 한 조각

흔히 사진을 ‘찰나의 예술’이라고들 표현하는데,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찰나는 1/75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매우 짧지만, 1/75초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 열차가 62.5m 전진하는 시간이고, 심장이 한 번쯤은 뛰는 시간이며,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글러브에 꽂히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시간 자체를 멈출 수는 없죠. 사진에는 바로 그 시간의 흐름이, 그 흐름의 한 조각이 기록됩니다. 1/4000초 정도의 시간이라면 어떨까요? 아니면 한 3초 정도 가만히 있으면 또 어떨까요? 이 시간의 길고 짧음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셔터속도’라는 개념입니다.

 

* 순간포착과 셔터속도의 관계?

‘셔터속도’라는 개념에 있는 ‘속도’라는 단어 때문에, 언뜻 들으면 카메라의 반응속도와 연관된 무언가로 오해되곤 하더라고요(카메라 처음 살 적의 제 이야기입니다 죄송…). 셔터속도는 비록 ‘속도’로 표현되긴 하지만, 실제 의미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출 시간’이나 ‘셔터 개방 시간’ 정도가 됩니다. 물론 ‘순간포착’을 위해서는 셔터속도가 빠르긴 해야 하겠습니다만, 실제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는 초점 잡는 속도, 기계적 반응속도(셔터 릴리즈 타임 랙), 연속촬영속도 등 여러 가지가 함께 고려돼야 합니다. 즉, ‘빠른 셔터속도’를 지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순간포착에 유리한 카메라’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순간포착의 경우. 사진의 셔터속도는 1/800초.

 

△ 노출과 셔터속도

그러면 이제 따라오는 개념이 ‘노출‘입니다. ‘노출’은 ‘빛을 받는 정도’를 말합니다. 빛을 무엇이 받나요? 필름 혹은 센서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필름을 쓰는 카메라가 필름카메라고, 센서를 쓰는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입니다.

노출에서는 보통 세 가지 요소를 이야기합니다. 조리갯값, 감도, 그리고 지금 설명하는 셔터속도죠. 세 가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할게요.

먼저 조리갯값은 렌즈를 통과한 빛을 필름 혹은 센서에 얼마나 쪼여줄 수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비가 내리는 날을 생각해 봅시다. 시간당 100mm가 내리는 날과 10mm가 내리는 날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겠죠? 저수지에 물이 차는 속도도 다를 거고요. 조리갯값은 F값으로 표시하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조리개가 더 크게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감도는 그 빛에 필름 혹은 센서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결정합니다. 비가 내릴 때, 콘크리트 바닥과 풀숲은 빗물이 고이는 정도가 다르겠죠? 비슷한 이치입니다. 카메라나 필름을 볼 때 만날 수 있는 ISO 100이니 200이니 12800이니 하는 숫자들은 그 민감한 정도를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놓은 것인데, 숫자가 크면 클수록 빛에 더 민감하다는 뜻입니다.(ISO는 하나의 ‘규격’인데, 요즘은 대부분 ‘ISO’로 표기하지만 옛날 카메라를 보면 ‘ASA’나 ‘DIN’으로 표기된 경우가 있습니다.)

감도 ISO값이 400인 필름.

그리고 셔터속도는 이런 기준으로 빛을 ‘얼마나 오랫동안 쬐는가’를 의미합니다. <사진학 강의>를 비롯한 많은 사진 입문서들은 ‘양동이에 물 받기’에 비유합니다. 같은 수도꼭지에서 같은 호스로 물을 받을 경우, 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물이 많이 차기 마련입니다. 같은 이치로, 빛을 오랫동안 쬐면 그만큼 사진은 밝아지게 됩니다.

 

△ 내 사진이 ‘심령사진’이 되는 이유

앞에서 사진은 ‘시간의 한 조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을 나타내는 것이 셔터속도라고 했죠. 그런데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에 세상이 멈춰 있지 않습니다. ‘찰나’라고 하는 1/75초면 아주 짧은 시간 같지만, 그동안에도 KTX는 62.5m를 전진합니다. 만약 카메라의 셔터속도를 1/75초로 설정해 뒀는데 그 앞으로 KTX가 지나간다면? 지나가는 ‘흔적‘이 기록되겠지요.

셔터속도 1/6초로 촬영해 자동차들이 궤적으로 표현됐다.
셔터속도 1/800초로 촬영한 사진. 가마우지(로 추정되는 새)의 날개와 수면의 물방울이 분명한 형태로 표현됐다.

셔터가 열려 있는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는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됩니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심령사진’이라고들 하는, 상이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든 사진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나타납니다. 주로 실내와 같은 비교적 어두운 환경에서 잘 생기죠.

앞에서 ‘노출’의 세 가지 요소를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감도는 (물론 비싸고 크고 좋은 카메라는 범위가 넓긴 하지만)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높이면 화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조리갯값 역시 조절에 한계가 있습니다. 감도와 조리갯값을 조절하는 것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어두운 환경이라면, 셔터속도를 늦추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위 ‘심령사진’이 되는 것입니다. 셔터속도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자동 또는 반자동모드에서 이런 일이 쉽게 생깁니다.

아이폰7로 촬영한 심령사진. 셔터속도 1/4초.
3색 얼룩 고양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놀이 중인 고양이는 1/100초에서도 잔상을 남깁니다.

또 한 가지. 바로 ‘손떨림’입니다. 카메라의 셔터가 열려 있는 동안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실 조금씩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숨을 참는다고 해도 미세하게 몸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죠. 최근 나오는 카메라들은 손떨림 보정 장치를 내장하고 있지만, 노출 시간이 길어지면 이것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를테면, 야경 촬영 같은 경우 말이죠.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고 싶다면, 1. 촬영 대상(피사체)의 움직임, 2. 촬영자의 움직임, 이렇게 두 가지 요소를 꼭 염두에 두도록 합시다. ‘피사체의 움직임’은 상황에 따라 다르며 대개 촬영자가 제어할 수 없겠습니다만, ‘촬영자의 움직임’, 그 가운데 ‘손떨림’ 문제는 대개 1/(렌즈 초점거리)초 정도의 셔터속도를 주면 해결됩니다. 50mm 렌즈로 촬영한다면 1/50초 정도면 손떨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사진을 촬영할 때는 움직이지 말고 안정된 자세를 취해야 하겠죠.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쥐었다면 왼손으론 본체를 받쳐주고, 양팔을 몸통에 딱 붙이면 좋습니다. 안경을 쓰지 않는 경우라면 뷰파인더를 눈에 완전히 밀착하면 더 좋겠죠.

정석적인 촬영 자세. 사진=pixabay.
앉은 자세로 촬영할 수도 있습니다. 렌즈가 크고 무겁다면 렌즈를 받쳐주는 것이 무게중심을 잡는 데 효과적이겠죠. 이미지=pixabay.
본체와 렌즈가 작아서 왼손 손바닥으로 받쳐 들기가 난감할 때. 사진=pixabay.
렌즈를 이렇게 옆으로 잡는 방식은 흔들림을 줄이기엔 불리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pixabay.

그런데 일부러 이런 효과를 일으켜서 사진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포를 촬영할 때,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올려놓고 15초 동안 셔터를 열어 놓으면 물이 잔잔하고 몽환적으로 표현됩니다. 밤하늘의 별을 찍을 때, 셔터속도를 한두 시간 단위로 길게 해 놓으면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궤적이 표현됩니다. 행인들이 움직인 흔적을 표현할 수도 있죠. ‘패닝 샷’이나 ‘주밍 샷’과 같은 방식으로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삼각대를 사용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물체에 올려놓고 촬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정도는 카메라에 내장된 손떨림 보정 기능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물결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셔터속도를 1.6초까지 늦췄다.
‘촬영자의 흔들림’을 억제하려면 삼각대를 사용하면 좋습니다. 사진=pixabay.

 

△ 셔터속도 가지고 놀기

셔터속도의 효과를 알았으니, 이제 셔터속도를 조절해 가며 가지고 놀아볼까요?

먼저 가지고 계신 카메라에서 셔터속도를 설정하는 기능을 찾아보세요. SLR이나 미러리스 같은 카메라라면 톱니 다이얼로 조절이 가능할 것이고, 컴팩트 카메라(이른바 ‘똑딱이’)라면 메뉴 안에 설정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단, 어떤 기종은 조절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올림푸스 OM시리즈 필름카메라처럼 렌즈 마운트 부분에 셔터속도 조절 기능이 있는 경우도 있겠군요. 폰카의 경우는, 스마트폰을 쓰신다면 수동으로 설정값을 넣을 수 있는 앱을 쓰시면 됩니다.

전자 다이얼을 이용해 셔터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올림푸스 E-m1과 파나소닉 GX9.
본체 뒷면의 큰 다이얼로 셔터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캐논 EOS-1.
상판 다이얼을 이용해 셔터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인 펜탁스 MX.
셔터속도를 조절하는 부분이 렌즈 경통에 있는 콘테사 LKE.

고급 기종은 1/8000초부터(전자셔터 기능을 지원하는 일부 기종은 1/32000초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보급 기종은 1/4000초나 1/2000초 정도에서 시작할 텐데요. 여기부터 시작해서 시간을 두 배씩 늘려봅시다. 어느 선부터 손떨림이 발생하기 시작하는지, 어느 선부터 피사체의 잔상이 남기 시작하는지를 기억하세요.

  • 1/8000초
  • 1/4000초
  • 1/2000초
  • 1/1000초 ← 스포츠 사진을 선명하게 찍으려면 이 정도가 마지노선. 아이돌 가수의 무대도 대개 이 정도의 셔터속도를 요구합니다.
  • 1/500초 ← 이 정도면 일상에선 딱히 흔들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됨.
  • 1/250초
  • 1/125초
  • 1/60초 ← 플래시를 이용한 실내 촬영에서 쓰이는 이른바 ‘국민세팅’ 셔터속도.
  • 1/30초 ← 이 부근부터는 걸어가는 사람을 찍으면 잔상이 남습니다.
  • 1/15초
  • 1/8초 ← 카메라에 손떨림보정 기능이 있더라도 보통 여기부턴 삼각대 없이 촬영하기 어렵습니다.
  • 1/4초
  • 1/2초
  • 1초 ← 시냇물의 흐름이 잔잔하게 담기는 속도.
  • 2초
  • 4초 ← 불꽃놀이 사진을 찍기 적당한 속도.
  • 8초
  • 15초 ← 밤하늘 별의 궤적을 찍으려면 이 이상의 장노출을 줘야 합니다.

무엇이 달라지나요? 이제 이 느낌을 잘 기억하시면, 남은 과제는 ‘다양한 설정값으로 많이 찍어보는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시간에 계속 …….

@Boktheseon

2 COMMENTS

  1. 카메라와 관련한 내용이 상세하고 논리가있어 좋았습니다.
    사진을 잘아시는것같아서 여쭤봅니다
    올해1월1일 부산일광해수욕장에서 찍은일출사진입니다
    사진속에 나타난둥글고밝은물체는 왜찍혔는가요?

    • 안녕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어떤 것인지는 사진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ㅜㅜ 댓글로는 사진 첨부가 불가능하니 다른 곳에 업로드 후 링크를 걸어 주시거나 메일(milpislove@gmail.com)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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