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빙자한 입덕기, 혹은 입덕기를 빙자한 여행기 @수원 화성
아이돌 팬 사이에 ‘생일카페’라는 문화가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실제로 가본 적은 없었다. 애초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행사를 찾아간 적이 거의 없는데, 그건 아마도 내 타고난 귀차니즘과 그다지 좋지 않은 체력, 체력보다 조금 더 안 좋은 정신건강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프라인 행사에는 ‘진짜’들이 모일 텐데 내 어중간한 덕심으로 그들 사이에 있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한몫했고.
그런 모든 문제를 제쳐 두고 꼭 찾아갈 수밖에 없던 아이돌 행사가 있었다. 평소 오프라인에서의 접점이랄 게 없는 버추얼 아이돌의 정말 귀한 오프라인 행사였고, 그간 구할 수 없던 공식 굿즈(당연함. 공식 굿즈를 발매한 적이 없음)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더군다나 아이돌 본인이 본인 생일 기념으로 팬을 위해 사비를 털어 연 행사라니. 이건 가지 않을 수 없잖아. 그게 이세계아이돌 멤버 릴파가 생일(3월 9일)을 맞아 이달 9일부터 12일까지 개최한 생일카페였다. 릴파와 입덕 계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적을 일이 있을 것(아마도)이다.
행사 날짜가 주말에 걸쳐있긴 해도 어마어마하게 붐빌 게 뻔한 터라 금요일(10일)을 택했다. 금요일을 비울 수 있는 직장이 이래서 좋은 것이다. 행사가 열린 곳이 경기 수원시에 있는 별나무카페라는 곳인데, 잘하면 행궁이나 화성을 보고 올 수도 있겠군, 일단 입장 번호표를 받고 둘러보든지 해야겠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출발했다. 조금이라도 체력을 아끼기 위해 전철 대신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사실 기본요금 구간이라 전철과는 요금 차이도 얼마 안 난다.
카페에 도착해 번호표를 받았다. 이 정도 번호까지 순서가 오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대충 오후 5시는 넘겨야 할 거란다. 그때가 11시 40분쯤이었나.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뜨게 된 것인데, 어중간하게 한두 시간 비는 것보단 이쪽이 오히려 낫다. 이참에 화성이나 행궁을 좀 둘러보자고 생각하며 버스를 탔다. 중간에 수원역 근처에서 점심도 먹고.
돌아보자, 화성 반 바퀴
출발은 팔달문이었다. 모름지기 모든 도시의 근본은 남문에 있다, 서울의 숭례문, 전주의 풍남문, 그러면 화성도 팔달문에서 출발해야 맞다, 대충 이런 논리다. 사실 수원 화성의 정문은 남문이 아니라 북문인 장안문이지만, 수원역에서 가장 가까운 게 팔달문이었으므로 팔달문에서 출발하는 게 아무튼 옳다. 반박 시 아무튼 내 말이 맞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못해 넘쳐서 좀 덥다는 느낌마저 드는 날씨였다. 하늘이 아주 맑지는 않았다. 약간의 미세먼지가 아쉬웠지만, 햇볕만큼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매화나 산수유꽃이 일찌감치 피었고, 벌들이 날아다니며 꿀을 따고 있었다. 지붕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도 보였다. 아무리 봐도 3월 둘째 주라고는 보기 어려운, 거의 한 4월 중순쯤은 돼 보이는 날씨 속에서, 반듯하게 서 있는 성벽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선은 성벽 바깥쪽으로 걷다가 적당한 통로가 나오면 그때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일종의 개구멍 같은 게 자주 나오는 한양도성을 생각했던 건데, 결과적으로 이 계산은 완전히 틀렸고 나는 동문인 창룡문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 도달해서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저 멀리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커다랗고 흰 열기구가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좀 심심했을 듯.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 임금이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무덤을 명당인 화산(지금의 화성시와 수원시 경계 지역)으로 옮기고 원래 화산에 있던 수원의 관청들을 이쪽으로 이전하며 지은 조선 후기의 걸작 건축물이다. 당대 조선의 최신 기술이 모두 투입된, 그리고 건축 과정이 모두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조의 아버지인 그 장헌세자가 바로 아버지 영조 임금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세자다. 물론 순전히 ‘효심 때문에’ 그 많은 비용을 투입해 지은 것은 아니고, ‘일국의 왕세자도 모함과 이간질로 죽일 수 있는’ 신권을 제압하고 왕권을 재확립하려는 계획에다 수도 남쪽의 방어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목적까지 있었다고 한다.
창룡문 근처에서 성 안쪽을 내려다보면 가까이는 연 날리는 사람들이, 그 뒤로는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그보다 좀 더 뒤에는 과녁 몇 개와 옛 군사시설처럼 보이는 건축물이 보인다. 아까 앞쪽 멀리 떠 있던 열기구는 어느새 내 오른쪽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동북쪽으로 언덕배기를 따라 쭉 내달리던 성곽이 동북공심돈에서 꼭짓점을 찍고 서남쪽을 향해 급격히 꺾인다. 나는 내리막길을 타고 국궁 과녁이 여럿 서 있는 곳으로 걸어 내려갔다. 걸음 수는 8000보를 넘었고, 날이 날인지라 얼굴이 땀범벅이 돼 있었다.
140m쯤 되는 거리의 큰 과녁 세 개, 약 30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의 체험용 과녁 세 개가 아직은 누런 잔디밭에 서 있다. 카페가 있는 ‘연무정’ 건물 1층 한 변이 활쏘기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10발 쏘는 데 성인 1인 2000원이고, 체험은 시각표에 따라 진행된다고 한다. 평일 낮인데 사람이 뭐 많이 올까 했는데, 서너 팀이 연거푸 와서 활을 잡았다. 그동안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다시 한 잔을 주문했다. 별나무카페 사장님이 진행하는 공지 방송을 보니 아직 입장 대기 번호가 돌아오려면 몇 시간은 더 있어야 될 듯한 그런 시각이었다.
수원 화성의 특징은 팔달문 주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잘 보존(또는 복원)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심 성곽 유적이 원형을 이 정도로 갖추고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복원도 화성성역의궤 기록에 따라 이뤄졌기 때문에 원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웬만한 성곽은 다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공화국의 수도에 위치해 많은 예산과 관심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복원 사업을 통해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되찾은 한양도성이 비견될 만하다. 풍남문 말고는 전주부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전주 출신이라서 이런 소릴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사실 좀 부럽긴 하다.
화성의 다른 특징으로는 수원의 원도심에 아주 밀착돼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벽 바깥은 물론이고 안쪽에도 카페, 학교,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그냥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라 평범한 도시의 그것처럼 살아서 기능을 하는 것들이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온 것으로 알려진 수원 통닭거리도 성 안에 있다. 성곽 자체도 적당한 거리마다 공심돈이니 대문이니 암문이니 포루니 하는 식으로 구조물이 나타나게 돼 있어, 대략 10분쯤 걷다가 잠깐 쉬었다가 하는 식으로 산책을 할 수 있다. 일부러 미래에 이렇게 활용하라고 노리고 설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장안문에서 내려와서
연무대에서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한 지 몇 분 안 돼서 암문을 하나 건너고 동북포루를 거쳐 살짝 솟아 있는 언덕 지형을 지났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구릉 위, 매화나무 몇 그루가 꽃을 하나둘 피워내고 있었다. 그 꽃송이 너머, 내리막길의 끄트머리에 방화수류정이 걸렸다. 바깥쪽 연못(용연)가에 둘러앉아 금요일 오후의 봄 햇볕을 즐기는 이들도 눈에 들어온다. 물에는 하얀 집오리와 얼룩덜룩한 흰뺨검둥오리가 떠 있고, 연못 가운데 작은 섬에 서 있는 몇 그루 나무 위에는 왜가리와 백로 몇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다. 망원 렌즈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한 유일한 순간이다.
이 방화수류정 바로 아래, 수원천을 가로지르는 건물이 사진가들이 사랑하는 야경 촬영지, 화홍문이다. 일곱 개의 석조 홍예와 그 홍예가 떠받치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누각이 이루는 조화가 아름답다. 조리개를 조여 빛을 뾰족하게 가르고 홍예를 지나오는 물은 장노출로 흘려보내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그건 나중의 한 컷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화홍문을 다리 삼아 물을 건넜다. 여기서 불과 300여 m 떨어진 곳에 북문인 장안문이 자리한다. 화성의 남북을 관통하는 정조로를 교묘하게 타넘은 성벽은 대문에서 갈라져 반원을 한 번 그린 뒤 다시 만난다. 적대라고 하는 군사시설이 장안문을 좌우에서 호위한다. 적대 위에 가만히 놓여 있는 홍이포가 그 위용을 더한다.
여기서 서쪽으로 계속 가면 화서문, 그리고 팔달산 구간이 나온다. 행궁으로 가려면 여기서 정조로를 따라 남쪽으로 쭉 가야 한다. 한 바퀴 완주는 다음 기회에 작정하고 해보기로 하고, 성벽에서 내려와 대로변에 발을 얹었다. 한옥기술전시관을 지나 쭉 걸어가면 시립미술관이 나오고, 그 앞으로는 드넓은 광장이 자리한다. 마치 수원이라는 도시의 중심이 바로 여기다, 라고 선언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가 눈에 들어온다. ‘정문’인데 이름이 ‘문’이 아니라 ‘루’라는 게 약간 생소하다. ‘문’이 아니라 문 위에 놓인 ‘루’를 강조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무료로 개방된 화성의 다른 유적과 달리 행궁은 입장료가 있다. 어디까지나 ‘행궁’이기 때문에 경복궁과 같은 궁궐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평소에는 수원 유수가 기거하는 지방 관청의 역할을 했다는데, 그렇지만 엄연히 정조가 행차하며 이용했던 곳이니, 다른 지방 관아와는 애초 격이 다르다고 하겠다. 봉수당 앞에 놓인 어도, 봉수당에 쓰인 ‘수(壽)’라는 글자 등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온전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화성과 대조적으로, 행궁은 일제강점기 때 심하게 훼손된 뒤 우화관과 별주 등 일부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이세계로 ‘나비’당하기
그림자가 슬슬 길어진다. 수원에 온 진짜 목적을 떠올릴 때다. 지리가 익숙지 않아서 이동 소요시간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대기 순번은 아직 좀 남았다. 이왕 지금까지 걸었는데 조금 더 걸어볼까? 뚜루따뚜루, 머릿속으로 박자를 쪼개며 직진한다. 아직 3월, 이때는 춘분이 되기 전이라 해 떨어지는 속도가 여전히 빠르다. 번호가 하나둘 넘어가면서, 방송 공지를 확인하는 주기가 짧아진다. 생각보다는 여유가 있는 듯하고, 또 생각보다는 그렇게 오래 남지는 않은 듯하다.
카페 앞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대기열에 들었다. 서서 기다리며 쉽&쉽(수백 판을 했지만 한 번도 깨지 못했다)을 하다가, 스태프들의 통제에 따라 드디어 카페에 들어섰다. 이세돌 멤버 주르르가 보낸 화환이 서 있고, 여기저기에 이세돌과 우왁굳 및 왁타버스 관련 물건이 전시돼 있었다. 방금 차원의 벽을 하나 넘은 것 같은, 약간은 비현실적인 듯한 기분이 나를 감싼다. 아주 평범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한정 메뉴는 이미 한참 전에 매진된 상태였다)를 주문하고, 스태프들이 챙겨주는 굿즈 세트를 받았다.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다시 한번 차원의 벽을 넘어선 듯하다. 메타버스라는 게 실존하는 거였구나! 생일케이크, 릴파의 서명, 등신대와 포토존, 축하 메시지를 붙이도록 된 자리, 포스터, 릴파가 행사 시작 전날 직접 꾸몄다는 이런 공간에서 평범하게 아이돌 멤버의 생일카페를 즐기는 사람들. 낮에 진행했다는 실시간 영상 인터뷰 장면도 실제로 봤다면 어땠을까? 릴파의 오랜 팬들은 과연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릴파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갑자기 굉장히 많은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참 전에 아이돌 덕질을 하던 그 느낌이 다시 올라온다.
지금 닿을 수는 없는 거리일지라도 꼭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드는, 마치 꿈같았던 20여 분. 그 꺼지지 않는 여운을 안고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에 올랐다. 한 손에는 스티커와 포스터 같은 굿즈가 든 종이가방을 든 채로다. 다시, 차원의 벽을 넘어 현실로 돌아올 때다.
@Bokth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