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불명의 복선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릅니다

파란 시내버스가 지나는 앞으로 비상행동 스태프들이 고깔모자를 쓴 채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카메라가 찍어준 사진

겨울, 내란, 그 기록들: 2025년 4월, 대단원···? (@ 광화문, 안국, 석수)

그날은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아니, 찾아왔다기보다는, 그렇지, ‘통보’됐다. 4월 1일, 헌법재판소는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4월 4일 내리겠다고 알렸다. 12월 3일 그 ‘내란’의 밤으로부터 딱 넉 달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마지막 빛의 물결이 몰아쳤다. 이미 3월 중순부터 광화문 앞에는 깃발과 천막이 가득했고, 그곳으로 시민들이 매일같이 나와 응원봉 불을 밝혔다. 2월 말 마지막 변론 이후 선고 일정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로 한 달이 지나면서 분노와 절박함이 임계 수준에 다다른 상황이기도 했다.

광화문 앞 야간 집회. 수많은 인파가 광화문 앞을 메운 채 빛나는 응원봉과 함께 "윤석열을 파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5.04.01. 광화문 앞.

헌재의 선고일 통고가 나온 뒤, 빛의 행렬은 헌재 근처 안국역 쪽으로 모여들었다. 선고까지 사흘, 마지막으로 여론을 재판관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직관’ 경쟁도 치열했다. 단 20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청석의 입장권을 놓고 무려 9만 6370명이 신청, 4818.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길고 길었던 ‘거리의 시간’의 대단원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것이 광장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였을 것이다.

안국역 앞 도로. 중앙분리대에 "파면 기원" 등의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 녹색 리본, 무지개 리본 등이 묶여 있다. 도로에는 시민들이 연좌 중이다.
2025.04.02. 파면을 기원하는 안국역 앞 노숙 농성.
안국역 앞에서 이뤄진 야간 집회 모습. 응원봉 불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수많은 깃발이 함께 나부끼고 있다.
2025.04.03. 파면전야.

4월 4일 오전 11시. 재판관들이 재판정에 들어섰다. 박근혜 씨가 파면될 때의 길고 길었던 “다만”의 굴레를 기억하기 때문에, 초반에 무슨 표현이 등장해도 일단은 동요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볼 용의가 있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고, 사실, 무슨 말이든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맞긴 하니까.

그런데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말이 초반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그동안 윤석열 씨와 그 변호인이 꾸준히 주장해 왔던 ‘경고성 계엄’, ‘공소 사실 변경은 잘못된 것’, ‘아무 일도 없었다’ 같은 것들에 대해 모조리, 정말 단호한 어조로 “피청구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짚고 있지 않았겠는가. 오히려 그래서 더 불안했던 것도 같다. “다만…”의 기억이 남긴 생각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마침내 대한민국에 2024년 12월 4일 아침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광장이 아닌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이 순간을 맞았고, 한동안은 아주 정신이 없었는데, 뒤늦게 밀려오는 안도와 뿌듯함과 벅참이 겹쳐서 몇 번이고 현장 영상을 돌려 보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광장에 몇 번 함께 나갔던 친구에게 대뜸 사랑한다고 했던 것도 같다.

4월 5일은 토요일이었다. 몇 달 동안은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토요일에 다른 일정을 거의 잡지 않았다. 물론 비상행동 집회라는 고정된 일정 때문이었는데, 그런 ‘고정된 일정’으로서의 집회는 5일 이날이 마지막이지 않겠나(마지막이어야 해!) 하는 생각을 하며 광화문에 나갔다. 쏟아지는 봄비. 우비를 입은 집회 봉사자들이 손에 하나씩 비눗방울 총을 들고서 하늘로 ‘축포’를 쏘아댔다. ‘카뱅 심규협 선생’과 사회자 박민주·김형남 씨, 수어통역사, 공동의장단, 수많은 연대단체 활동가와 정치인들, 자원봉사자들, 현장 스태프 등등 집회를 만든 사람들이 차례로 연단에 오르고, 그렇게 ‘윤석열 파면 집회’로서의 마지막 순간을 모두 함께 즐겼다.

파란 시내버스가 지나는 앞으로 비상행동 스태프들이 고깔모자를 쓴 채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2025.04.05. 방울방울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시민 앞에서 한 비상행동 측 스태프가 고깔모자를 쓴 채 비눗방울을 만들고 있다.
2025.04.05. 승리의 비눗방울.
우산을 든 채 자리를 지키는 시민들.
2025.04.05. 비가 쏟아져도, 몸이 젖어도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내려 우산과 우비를 갖춘 시민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무대 위와 무대 아래에 비상행동 측 공연자, 스태프, 연대자 등이 노래와 춤으로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5.04.05. 비를 맞으면서도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집회를 만든 사람들.

하지만 그게 끝이었을까? 마치 ‘최종’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최종222’ ‘진짜최종22222’ ‘최종333333’ 하는 식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과제물 파일명처럼, 조금 쉴 만하면 대한민국은 다시 광장에 시민들을 불러내곤 했다. 바로 다음 주에 권한대행 한덕수가 내란 당시 ‘안가 회동’에 참석했던 이완규를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하겠다고 한 것은 수많은 예 중 하나일 뿐이었다.(그 한덕수는 권한대행 사퇴 후 ‘내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며 ‘단일화’ 난리를 일으켰고, 이후 내란 특검 출범 뒤 팔 붙들린 채 수사 받으러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시민들이 깃발, 응원봉 등을 든 채 광화문 앞 길을 행진하고 있다.
2025.04.11. 일주일 만에 다시 시작된 비상행동 집회라니. 내란은 하루아침에 청산되지 않는 법이었다.
"농민헌법 쟁취!"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붙인 트랙터가 멈춰 서 있다. 그 뒤로 시민들의 깃발이 나부낀다.
2025.05.11. 광화문에서 “쌀 수입 중단” “내란 청산” 등을 내건 집회에 참석하려 했던 트랙터들이 경찰의 제지로 석수역 인근에 멈춰섰다. 경찰이 막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이 광화문에서 행진을 마치고 돌아갔을 터다.

6월 3일 대선을 거쳐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12월 3일 내란의 그날로부터 정확히 반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새 대통령은 첫 번째 법안으로 3대 특검법을 재가했고, 무슨 퇴근 못하고 잔업하는 노동자마냥 특별검사 세 명을 자정 즈음에 임명했고, 그 특검의 수사로 내란의 전모가 다시 밝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10일, 내란으로부터 123일 뒤에 파면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구속취소로부터 124일째 되는 날에 다시 구속됐다.

이렇게 내란 청산의 또 한 고비를 넘었다. 다음 과제는, 아무래도, 광장에서 그 많은 깃발과 빛들이 외쳤듯,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을 만듦으로써 다시는 윤석열처럼 혐오를 동력 삼는 세력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짓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집회는 힘드니까.

건물 외벽에 수많은 깃발이 걸려 있다. 왼쪽 아래엔 노란 빛을 내는 응원봉을 든 손이 보인다.
2025.06.04. 어떤 승리 선언. 서울 식민지역사박물관 외벽을 집회 때 나왔던 수많은 깃발들이 장식하고 있다.
비에 젖은 도로에 비상행동 집회 관련 차량들이 서 있다. 시민들은 모두 돌아가고 광장이 텅 빈 상태다.
2025.04.05. 끝은 있지만 끝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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