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청산’은 무슨: 지방선거 단상

분명히 이 꼴을 4년 3개월 전에 봤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던 시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키이우에 폭격을 가하던 시절, 아직은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관여하기 전이고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재기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무궁화호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리고, TV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그린 채 나타나고, 아무 부연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만 SNS에 게시한, 검찰총장 출신의 그 60대 남성이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얼마나 파괴적 퇴행을 가져올지를 생각하던 때이기도 했다.

2022.03.06. 서울 은평구 응암역 인근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가 유세를 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대통령 당선인’을 배출한 적이 없는, 그러니까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후보’를 선택해본 적이 없는 내 손이 내 마음속 첫 번째 선택지였던 기호 5번을 외면하고 기호 1번을 눌렀다. 이른바 ‘n번방’이라 불리는 조직적 성범죄를 추적해 온 활동가 박지현 씨가 범죄 표적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 얼굴을 드러냈을 때, 이번만큼은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후보’를 찍어 다른 쪽의 그 검사인지 정치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60대 남성 후보자를 저지해야만 한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이 남지 않았다. 마지막 1분을 나와 친구들을 대변해주는 데 쓴 그런 사람을 외면하고 ‘배신 투표’를 결심했다.

출구조사를 보니 내 그런 ‘배신 투표’가 그래도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여서 조금 마음이 놓였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다들 그렇게 미안함과 절박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몰아주기’를 감행했었는데. 그런 보람도 없이 새벽에 기어이 결과가 뒤집혔고, 내 속도 뒤집혔고, 올 뻔했던 잠도 달아났다. 단 한 숨도 못 잔 채 그대로 출근했다.

2026년 6월 3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한때 ‘내란 청산’의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었다. 모 정당의 대표는 “국힘 제로 선거”를 목표로 내걸기까지 했다. 국민의힘 후보들 면면을 보니, 일부는 내란과 관련해 재판을 받는 중이기도 하고, 일부는 내란 우두머리의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에 나가기도 했고, 또 일부는 그런 맥락에서 막말을 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합의제 기구를 무력화시키고 언론 장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당은 내란과 멀어질 생각이 없구나, 이번엔 정말로 내란 옹호 세력을 털어내지 않으면 청산이고 뭐고 도루묵 되겠구나. 슬슬 쌔해지는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몸을 사리는 1번 후보를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배신 투표’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차별금지조례와 생활동반자조례를 언급하는 후보를 외면하고, 확답을 피한 후보에게 표를 줬다. 2번을 지우기 위해서. 혹여라도 2번이 당선될 경우 부당하게 7번에게 화살이 쏟아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불안까지 더해서.

건물 외벽에 수많은 깃발이 걸려 있다. 왼쪽 아래엔 노란 빛을 내는 응원봉을 든 손이 보인다.
2025.06.04. 어떤 승리 선언. 이것은 시작조차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야근을 마치고 새벽 세 시쯤 집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선관위 개표 현황을 띄웠다. 잠깐 보다 잘 생각이었다. 그러다, 그러다, 그러다… 그렇게 이번에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4년 3개월 전에 경험한 적 있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해버리고, ‘미니 총선’으로까지 불린 재보궐선거에서 내란 옹호 정당이 의석을 몇 개 챙기는 것까지도 보고, 그냥 좀 허탈해진 채로 다시 출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게 살해 위협을 가한 이들에게 표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이 광역단체장 2 대 14로 참패(1곳은 무소속)했던 2018년보다도 더 크게 몰락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도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와닿지 않는 것이 많았던 것일까. 내란이 일어난 게 1년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러자고 반 년 동안 주말마다 뛰어다닌 게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이걸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니 그렇지만…, 생각이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기까지로 정리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지도 모른다. 투표용지 수량 예측 실패라는 초유의 선거 관리 부실을 무리하게 ‘부정선거’로 엮어 먹는 예의 그 음모론 집단이 다시 날뛰기 시작하면서, 잠실이 제2의 서부지법이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진다. 그야 투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작은 일이 아니고 당연히 잘잘못을 가려야겠지만, 이게 ‘부정선거’ 주장과 엮일 일은 아니지 않나, 자기 유불리에 따라서 거대 정당의 지도부가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건 또 뭔가… 선거 결과 정도는 문제도 아니게 된 셈이다. ‘내란 청산’은 무슨, 이렇게 또 n번째의 내란이 꿈틀댄다.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이다.

회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혀를 살짝 내민 채 주황색 물고기 인형을 바라보며 왼쪽 앞발을 들고 있다.
2026.06.06. 고양이와 함께 마음을 다스리기.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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