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올라타 있다.

먼가 작고 귀여운 청설모 보여줄게, 산책로면 충분하니까 (@서울 인왕산)

천 년 만 년 갈 것 같았던, 불지옥 한복판에 들어온 것만 같았던 그런 날씨도 어느 순간 갑자기 맥없이 꺾였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숨이 막히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땀이 나지 않는다. 이른 아침 바람은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고양이가 아침마다 가슴~배 위에 올라와 그릉그릉할 정도의 서늘함이다. 물 분자가 가득해 무겁던 공기도 어느새 가볍고 상쾌해지고, 하늘은 또 새파랗게 열렸다. 한 해에 이런 날이 며칠 없다. 곧 미세먼지가 머물기 시작할 테고, 그리고는 곧 귀가 땡땡 얼어 나다닐 수 없는 계절이 오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라는, 다소의 강박이 섞인 걸음으로 매일매일 시간을 내 걷고 있다. 마침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왕산 산책로가 있어 점심시간마다 시나브로 밟았다 내려오곤 하는데, 물론 아주 ‘산’으로까지 가는 것은 아니고 딱 그냥 말 그대로 산책 정도 하는 수준이어서, 필요한 시간은 딱 한 시간 정도다. 이 정도로도 9말10초의 가을 공기를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돌로 쌓은 성곽이 S자로 뻗어 있는 가운데 멀리 남산과 서울타워가 보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2026.09.15. 서울 인왕산의 한양도성. 서울타워(남산타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은 청설모를 눈앞에서 마주친 그 다음날부터였다. 그렇지, 청설모가 부지런히 먹으러 돌아다니는 기간이 딱 이 기간이지. 이른바 ‘새우튀김’의 계절이라 이 친구들이 요새 정말 바쁘다. 산책하다가 무슨 사사사삭 소리가 나서 딱 보면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무슨 치간칫솔 달린 털뭉치가 보이는데, 사람을 딱히 피하거나 경계하는 느낌도 없이 엎어지면 코까진 아니고 한 이마 정도 닿을 거리에서 그렇게 자기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주황색으로 익은 감을 안은 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청설모 한 마리.
2021.11.20. 서울 창경궁에서 만난 청설모.

올가을에는 새우튀김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새우튀김 생산자들은 하루 걸러 하루씩 마주쳐 그 얼굴을 찍었다. 물론 망원렌즈를 달고 나간 김에 겸사겸사 산책로에서 마주친 새 모습도 기록해뒀다. 대체로 올해 새로 들인 소니 a9과 탐론 150-500 렌즈가 함께했고, 가끔 올림푸스 E-m1mk3와 40-150pro 렌즈 조합을 쓰기도 했다. 후자는 그럭저럭 가지고 다닐 만했는데 전자는 어깨가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는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기둥 중간에 앉은 채 주위를 살피고 있다. 사진은 뒷모습이다.
2026.09.22. 서울 인왕산 올라가는 산책로에서 만난 청설모. 올림푸스 E-m1mk3 카메라와 40-150 pro 렌즈를 썼다.
나뭇가지 위를 달리고 있는 청설모.
2026.09.22. 서울 인왕산 산책로에서 만난 청설모. 나뭇가지 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다. 올림푸스 E-m1mk3 카메라와 40-150 pro 렌즈를 썼다.

올림푸스 조합으로 갖고 다닐 땐 무게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판형이 작은 만큼 휴대성은 좋을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마이크로포서즈 시스템의 존재 의의니까. 하지만 그놈의 AF 문제가 속을 썩였다. 피사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헤매기를 여러 차례. 이를테면 피사체와의 사이에 나뭇가지 하나만 지나가도, 아니면 나뭇잎 하나가 근처에 걸려 있어도, 도무지 피사체를 제대로 잡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놓친 장면이 한두 컷이 아니다. 작은 판형으로 인한 고감도 노이즈 문제라든지 하는 다른 문제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장비가 좋아야 피사체를 덜 괴롭힌다. 초점거리가 더 긴 망원렌즈가 있어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찰할 수 있고, AF가 빠르고 정확해야 주변을 덜 서성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A9 + 탐론 150-500 조합이 좋은 것이 맞다. 소니 카메라 특유의 그 둔한 초기 반응속도와 가끔 나타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동작 같은 것만 견딘다면. 아, 하나 더 있다. 대체 왜 센서 먼지가 찍히는 거지? 올림푸스 카메라 쓰면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나무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 청설모. 앞다리가 공중에 떠 있다.
2026.09.29. 서울 인왕산 산책로에서 만난 청설모. 나무를 수직으로 타고 내려오고 있다. 소니 A9 카메라와 탐론 150-500 렌즈를 썼다.
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올라타 있다.
2026.09.29. 서울 인왕산 산책로에서 만난 청설모. 소니 A9 카메라와 탐론 150-500 렌즈를 썼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만 감수한다면)비록 나온 지 10년 된 비교적 구식 기종(E-m1mk3보다도 4년이나 일찍 나왔다)이긴 해도, 지금 써도 충분히 괜찮다. 동체추적 AF는 ‘완벽’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걸 쓰다가 E-m1mk3 쪽을 쓰면 아, A9이 선녀구나, 하게 된다. 기계식 셔터가 초당 5연사까지밖에 안 되지만 전자식 셔터가 충분히 쓸만하다. 사실 전자셔터에 대한 불신이 컸는데, 센서가 읽는 속도가 1/160s 정도, 그러니까 웬만한 보급형 카메라 기계셔터 움직이는 속도 정도 된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는 그냥 전자셔터로 설정해서 쓰고 있다. 플래시를 쓸 일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10월 상순이 지나가면서 이제 슬슬 날씨가 ‘쌀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낮 기온은 20도를 웃돌고 있지만, 이것도 곧 떨어지겠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느낀다. 더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 생각해 보니 청설모가 이 시기에 ‘새우튀김’을 만들어대는 것도 비슷한 이치구나. 그래,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분홍색 코스모스 뒤로 서울타워가 흐릿하게 보인다. 하늘은 맑다.
2026.10.01. 인왕산 산책로에서 서울타워 쪽을 바라본 모습. 그 앞으로 분홍색 코스모스가 선명하다. 올림푸스 E-m1mk3 카메라와 40-150 pro 렌즈를 썼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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